배구판 라스트 댄스, 독무인가 군무인가
‘라스트 댄스’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여자배구 흥국생명과 도로공사가 마지막 5차전에서 우승을 놓고 겨룬다.
도로공사는 4일 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여자부 챔피언결정전(5전 3승제) 4차전에서 세트 스코어 3-1로 흥국생명을 이겼다. V리그 챔프전 사상 1·2차전을 모두 내준 뒤 3·4차전을 이긴 건 도로공사가 최초다. 최종전은 6일 오후 7시 열린다.
2연승으로 쉽게 우승하는 듯했던 흥국생명은 적지에서 2패를 당하고 씁쓸하게 돌아섰다. 1·2차전에서 맹활약했던 옐레나 므라노제비치의 공격성공률이 떨어졌고, 다른 선수들도 흔들렸다. 햄스트링 부상을 안고 있는 이원정도 지친 기색이다. 4차전 4세트에선 21-16으로 앞서다 23-25로 역전패했다.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우승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도 했다.
그런데도 흥국생명이 믿는 건 김연경이다. 4차전을 내주긴 했지만, 에이스 김연경은 고군분투했다. 블로킹 4개를 포함 24득점을 올렸다. 특히 고비 때마다 흐름을 끊는 득점을 올렸다. 서브 리시브와 수비도 철벽같았다.
5차전은 배구 선수 김연경의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다. 김연경은 이번 시즌을 마치면 FA(자유계약선수)가 된다. 이미 선수로서 모든 걸 이룬 터라 코트를 떠난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시즌 첫 선두로 올라선 뒤 은퇴설이 돌자 “은퇴 생각이 없다면 거짓말”이라고 답했다. 배구계 관계자는 “‘9대1’ 정도로 은퇴 쪽으로 쏠린 시기가 있었지만, 최근엔 (김연경의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고 귀띔했다.
최소한 흥국생명에서 치르는 마지막 시즌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05년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에 입단한 김연경은 2010년부터 일본·터키·중국 등 해외에서 주로 뛰었다. 그러나 국내에선 핑크색 유니폼만 입었다. 해외리그 진출 가능성은 작지만, FA가 되는 김연경에 관심을 가지는 팀이 여럿 있다.
김연경은 열정적인 홈 팬들 앞에서 고별전을 치르게 됐다. 흥국생명은 20차례의 홈 경기 중 6번이나 만원 관중을 기록했다. 삼산월드체육관이 남녀부 통틀어 가장 큰 경기장인 걸 고려하면 대단한 일이다. 챔프전 2차전에서도 6108명이 입장했다. 도로공사 박정아는 “삼산체육관에 가면 주눅이 든다”고 할 정도다.
1, 2차전을 내준 뒤 3~5차전을 모두 휩쓰는 ‘리버스 스윕’에 도전하는 도로공사는 말 그대로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라스트 댄스’의 배경이 된 1996~97 시즌 미국프로농구 시카고 불스와 비슷한 상황이다. 당시 불스는 필 잭슨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다. 5회 우승을 일군 마이클 조던과 스카티 피펜, 그리고 그들을 도운 데니스 로드맨이 팀을 떠날 예정이었다. 잭슨 감독은 시즌 전 선수들에게 나눠준 핸드북에 ‘라스트 댄스’란 문구를 새겼다.
도로공사는 올 시즌 뒤 정대영·배유나·박정아·문정원·전새얀이 FA 자격을 얻는다. 김종민 감독은 ‘라스트 댄스’와 상황이 비슷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난 아직 계약이 1년 남았다”며 웃었다.
배구 팬들의 관심도 뜨겁다. 4일 열린 4차전 시청률은 2개 채널을 합쳐 2.35%(가구시청률)를 기록했다. 이날 열린 프로야구 4경기 시청률을 더한 수치(2.42%)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김천=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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