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없는 ‘기적의 중학교’…그 뒤엔 학폭 이겨낸 선생님

신혜연 2023. 4. 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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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식 교사는 “아이들은 끊임없이 소통하고 관심을 줘야 바뀐다”고 말했다. [사진 임민식]

“‘나는 상처 주는 카톡이나 뒷담화는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맞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앞에 나와주세요.”

임민식 교사(41·대구 산격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 수십 명이 우르르 무대로 뛰쳐나왔다. 지난달 31일 대구 학남중학교 강당에서 1학년 신입생 250명과 함께한 ‘공감 프로젝트’ 현장이다. 임 교사가 직접 개발한 학교폭력 예방 교육 프로그램이다.

1학년 김강은(13) 학생은 “친구들이 재밌어하는 걸 보니 즐거웠고, 사이버 폭력이 대면 폭력으로 이어져 일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유익했다”고 말했다.

대구 산격중학교 생활안전부장 겸 학교폭력 책임교사(옛 학생주임)인 임 교사는 올해 대구교육청 지원을 받아 10개 학교를 돌며 ‘공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신입생 때 자연스럽게 ‘서로 다르지만 친하게 지낼 수 있다’는 점을 익히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

‘학생주임’이 어쩌다 전 시내를 돌며 학교폭력 예방 교육에 나섰을까. 이른바 ‘산격중의 기적’이 입소문을 탄 결과다.

임 교사가 11년 전 처음 산격중에 발령받았을 때 전교생 250여 명에 불과한 학교에서 학교폭력 심의가 한해 27건에 달했다. 지인들도 ‘큰일’이라고 걱정해줬다.

임 교사는 몇몇 동료 교사와 뜻을 모아 분위기를 조금씩 바꿔갔다. 부적응 학생을 모아 극단 ‘반창고’를 꾸려 주말마다 뮤지컬 연습을 했다. 그렇게 2017년 11월 첫 작품 ‘후 엠 아이’가 무대에 올랐다.

임 교사의 노력으로 집으로 돌아온 가출 청소년도 여럿이다. 몇 해 전 딸의 가출에 가슴앓이하던 어머니가 찾아왔다. 어렵사리 학생을 만난 임 교사가 건넨 말은 “돌아와라”가 아니었다. “너도 많이 힘들지. 네 맘 충분히 이해하니 강제로 들어오라고는 안 할게.” 그리곤 밥을 사 먹이고 먹을 것도 손에 쥐여주고 돌아섰다. 몇 번의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된 뒤에 마침내 학교로 돌아왔다.

“관심과 사랑을 주면 결국 알아주더라고요. 억지로 학교에 앉혀 놓는 게 다가 아니거든요. ‘이 선생님은 나를 믿어준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행동이 따라 바뀐다는 걸 여러 차례 목격했습니다.”

산격중의 폭력은 서서히 줄었고, 2020년 이후로는 학교폭력 관련 심의가 단 한 건도 없었다. 산격중은 2019년부터 3년 연속 교육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남들이 꺼리는 학교폭력 예방책임을 맡은 데는 임 교사의 ‘과거’도 작용했다. 그도 피해자였다. “어릴 때는 몸이 왜소했거든요. 학생들이 처음에는 잘해주다가 나중에는 이것저것 지시하며 못된 짓을 많이 했죠.” 힘센 아이들 숙제를 대신 해주거나 신발 주머니를 드는 역할도 떠맡았다.

임 교사는 그때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준 좋은 친구와 선생님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사실 저는 다른 선생님들처럼 착실하게 공부한 모범생은 전혀 아니었어요. 그래서 더 아이들을 잘 이해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올해부터는 영남대에서 교육행정 관련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나처럼 학교 폭력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그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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