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159일 맞은 이태원 유가족의 믿음 "정치인들, 다 나쁘지는 않겠지"

조혜지 2023. 4. 5.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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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비 맞으며 대통령실 앞 행진... 특별법 발의 받아든 의원들 "이제 곧 발의"

[조혜지, 권우성 기자]

 '159개의 우주가 사라진 159번의 밤과 낮 - 10.29 이태원 참사 발생 159일 시민추모대회'가 열리는 5일 오후 서울시청앞 합동분향소에서 10.29진실버스 해단식이 열리고 있다.
ⓒ 권우성
 
"혹자는 대통령이 아무나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존재냐며 유가족들을 나무랍니다. 네, 국민이라면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국민에는 자애롭고, 관료와는 치열히 논의하고, 밖으로는 엄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거꾸로 하십니까. 우리도 국민입니다. 더구나 슬프고 비통하고 상처 입은 국민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자유와 공정, 왜 우리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까. 

민주주의에서 자유와 공정은 권력있는 자에게는 엄격하게, 약자에겐 사각지대 없이 촘촘히 적용돼야 합니다. 이태원참사 특별법을 만들지 않으면, 또 다른 국민이 사각지대가 됩니다. 우리처럼 자식을 장례식장에서 만나게되는 무서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억울함을 호소하기 보다, 이 땅에 남은 세대들의 미래를 돌려주기 위해 이 길에 섰습니다."

버스를 타고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10일간 전국을 돌며 이태원참사 특별법 국민동의청원을 호소하고 돌아온 고 박가영씨의 어머니 최선미씨가 5일 다시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 섰다. 마이크를 쥔 최씨의 앞에는 빗속에서 우비를 입고 "성역 없는 진상규명" 등의 손팻말을 든 유가족 100여 명이 행진을 위해 줄지어 서 있었다. 

"국민께 감사합니다"... 특별법 '첫 발' 감사 전한 유가족들  
 
 '159개의 우주가 사라진 159번의 밤과 낮 - 10.29 이태원 참사 발생 159일 시민추모대회'가 열리는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앞 참사현장에서 분향소가 설치된 서울시청앞까지 유가족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행진이 시작됐다.
ⓒ 권우성
 
 10·29 진실버스’ 전국 순회를 마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회원들이 5일 오후 이태원 참사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참사 현장에서 서울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159명의 생명을 앗아간 참사가 일어난 지 159일째 되는 날, 유가족들은 대통령실 앞을 지나는 행진을 다시 시작했다. 11월과 2월에 이어 벌써 3번째 행진이다. 대통령실이 가까워 오자 형광색 우의를 입은 경력들의 수도 차츰 늘어났다. 

이태원역 1번출구에서 서울시청 광장 시민분향소까지 2시간 가량 행진하면서, 유가족들은 다양한 시민들을 만났다. 경적을 울리며 소리치는 운전자도 있는 반면, 숙명여대역 인근에선 행진 대열을 보며 눈물짓는 친구의 어깨를 토닥인 시민도 있었고, 시청역 앞에선 유가족들을 향해 손 인사를 건네며 눈물짓는 시민도 있었다.  

대통령실을 마주한 자리에선 자식을 잃은 엄마들의 오열이 시작됐다. 최선미씨는 이 자리에서 "사회적 참사 희생자들은 국민들에게 자신들을 기억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대통령과 정부, 여야가 기억해서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뼈와 머리에 새겨서, 한 치도 안일하게 일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와주시겠지. 믿어야지. 나랏일 하는 사람들, 다 나쁜 사람만 있다고 생각 안해요. 정치적 신념이 있겠죠. 다 사리사욕으로 직장생활 하듯이 정치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닐 것 아냐..."

이날 행진과 추모식에 참여한 고 이남훈씨의 어머니 박영수씨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태원참사 특별법을 받아 든 국회에 간절한 기대를 보냈다. 열흘 만에 국민동의청원을 성원시킨 "국민께 감사하다"고도 했다.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 역시 "유족들에게 공감과 연대를 보내주신 모든 국민께 인사드리자"고 제안하면서 "감사합니다"를 소리높여 외쳤다. 

최씨와 마찬가지로 전국을 돌며 국민동의청원을 요청한 고 송채림씨의 아버지 송진영씨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지킬 아이가 없다.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아이들, 친구, 형제, 가족을 지키기 위해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씨는 이어 "우리는 트라우마를 겪는데, 전문가들이 진단하길 트라우마 치료 방법은 오직 하나라고 한다"면서 "바로 우리가 믿는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그래야 치유가 시작된다고 한다. 유가족뿐 아니라 생존자, 아이를 키우기 두려워 진 전국의 부모들, 참사로 충격받은 모든 국민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할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강조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골목길에서 유가족들이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작심하고 나설 것" 단체 '진실' 티셔츠 맞춰 입은 국회의원들

독립적조사기구를 통한 진상규명을 담고 있는 국민동의청원 5만 명은 열흘 만에 완성됐다. 입법을 위한 국회 상임위원회 논의 테이블에 곧 상정될 예정이다. 정치권도 행동을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기본소득당 등 야3당도 당론 발의로 입법을 예고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야3당 의원 20여 명이 참석해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을 다시 한 번 약속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 "유가족과 법률 대리인이 만들어주신 문구를 법제실을 통해 검토하는 작업을 끝냈고 이제 곧 발의하려 한다. 정의당과 기본소득당과도 이야기를 마쳤다."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 : "국민의힘도 특별법을 함께 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한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상임대표] : "빠른 시일 내 본회의에서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국회 생명안전포럼 우원식 대표와 소속 의원들이 5일 오후 서울시청앞에서 열린 '159개의 우주가 사라진 159번의 밤과 낮 - 10.29 이태원 참사 발생 159일 시민추모대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 권우성
 
특히 국회 생명안전포럼 소속 의원 14명은 이태원참사 진상규명을 상징하는 별이 그려진 단체 티셔츠를 입고 현장에 참석했다. 우원식 포럼 대표의원은 "국회 안에서 작심하고 나설 사람이 있어야 (제정도) 되는 것 아닌가 해서, 옷도 만들어 함께 입고 나왔다"고 밝혔다. 
차창 밖 봄꽃에 오열한 엄마 "봄에 이렇게 많이 울긴 처음"
 
 시민추모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159개의 우주가 사라진 159번의 밤과 낮 - 10.29 이태원 참사 발생 159일 시민추모대회'가 5일 오후 서울시청앞에서 유가족과 야당 국회의원,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 권우성
  "분향소에 왔다가 버스 차창 밖을 보는데, (아들이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이쁘게 다녔을까 싶어서...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 쳐다보도록 얼마나 울었는지..."

모처럼 비가 내린 날,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은 유가족들은 꽃이 피어나는 이 계절을 더욱 아파했다. 박영수씨는 "봄에 이렇게 많이 울어보긴 처음"이라고 했다. 

전남 목포에서 상경한 고 이해린씨의 아버지 이종민씨는 이날 딸에게 쓴 편지에서 "광주에서 지나는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전하는데 30분 동안 10장을 전달하지 못했단다. 한쪽에서 한참을 울었다. 벌써 그날의 죽음들이 잊혀간다고 생각하니 서러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토로 했다. 

이씨는 이어 "지금까지도 어디서도 진실을 이야기하지않는다"면서 "어처구니 없는 이런 참사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게 여러 유가족들과 힘을 모으려 한다. 시간이 오래걸리고 지칠지라도, 부모는 강하다"고 말했다.
 
 '159개의 우주가 사라진 159번의 밤과 낮 - 10.29 이태원 참사 발생 159일 시민추모대회'가 열리는 5일 오후 서울시청앞 합동분향소에서 한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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