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자동차 잡으러 왔소이다…‘가성비 신차’ 타고 중견 완성차 3인방 ‘부릉’
현대차, 기아와 수입차 업체 공세에 밀려 힘을 못 쓰던 르노코리아자동차, KG모빌리티(옛 쌍용자동차), 한국GM 등 중견 완성차 업체 3인방 분위기가 되살아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가성비 높은 신차가 인기를 끌면서 옛 영광을 회복할지 완성차업계 관심이 뜨겁다.
한국GM 트랙스 CUV 인기
사전 예약 4일 만에 1만대 돌파
한국GM 직원들은 요즘 신형 ‘트랙스 크로스오버(CUV)’ 판매 흥행에 고무된 모습이다. 트랙스 크로스오버는 지난 3월 22일 사전 계약을 진행한 지 4일(영업일 기준) 만에 계약 건수 1만대를 돌파했다. 국내 시장에 출시한 신차 사전 계약 중 역대 최고 기록이다. 전국 쉐보레 대리점에는 트랙스 크로스오버 관련 문의가 쏟아지는가 하면 실물을 보러 방문한 소비자들도 줄을 잇고 있다는 후문이다.
CUV는 세단보다 약간 높은 전고에 스포티한 스타일을 갖추면서도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의 공간 활용성을 더한 ‘폼팩터(특정 차 형태)’다. 세단과 SUV 장점을 두루 갖춘 덕분에 준중형 세단, SUV와 경쟁을 벌인다.
CUV 계열에서는 지난해 르노코리아자동차의 XM3 E-테크 하이브리드가 사전 계약 6일 만에 4000대를 돌파한 적이 있지만 트랙스 크로스오버는 이를 일찌감치 넘어섰다. 로베르토 렘펠 한국GM 사장은 “트랙스 크로스오버를 계기로 GM의 새로운 목표 차급(세그먼트)인 크로스오버 시장을 위한 중요한 발판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트랙스 크로스오버가 인기를 끄는 것은 공격적인 가격 정책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국내 판매 가격(개별소비세 인하 기준)은 트림별로 LS 2052만원, LT 2366만원, ACTIV 2681만원, RS 2739만원으로 책정됐다. 최저 2000만원대부터 시작돼 경쟁 모델 대비 가성비가 높다는 평가다. LS 트림의 경우 현대차 소형 SUV ‘디 올 뉴 코나’보다 485만원, 준중형 SUV ‘투싼’보다 532만원 저렴하다. 현대차 경형 SUV ‘캐스퍼’ 풀옵션 가격(2057만원)보다도 낮다.
특히 LS 트림은 미국 시장 판매 가격(2만1495달러, 약 2810만원)에도 한참 못 미치는 점이 눈길을 끈다. 미국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 간 경쟁이 워낙 치열해 자동차 판매 가격이 다른 나라보다 낮지만 오히려 한국 판매 가격이 더 저렴한 셈이다.
가격대가 낮음에도 품질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파워트레인으로 1.2ℓ E-터보 엔진을 탑재했다. 최고 출력 139마력, 최대 토크 22.4㎏.m에 ℓ당 12.7㎞의 복합 연비를 구현했다.
전장은 4540㎜로 현대차 투싼보다 짧고 코나보다 길지만, 전고는 1560㎜로 세단에 가깝게 낮다. 경쟁 모델 대비 긴 2700㎜의 휠베이스와 근육질 형태의 보디라인, 낮게 떨어지는 루프 라인 등 특유의 역동성을 표현했다. 짧은 리어 오버행(뒷바퀴부터 차 후방 끝까지 거리)을 통해 넓은 2열 레그룸을 실현했다. 뒷좌석 폴딩 시트는 적재 공간을 더욱 확장해 짐을 싣거나 차박 캠핑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에 적용할 수 있다.
트랙스 크로스오버 차체 구조는 GM의 최신 설계 프로세스인 ‘스마트 엔지니어링’을 통해 설계됐다. 스마트 엔지니어링은 다양한 주행 환경을 컴퓨터 가상 상황으로 구현해 하중이 실리는 부분을 파악, 보강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무게를 덜어내는 설계 방식이다. 국내 시장에 판매되는 쉐보레 모델 중 최초로 오토홀드 기능이 적용돼 차량 정차 시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제어, 운전자의 편리한 주행을 돕는다.
특히 트랙스 크로스오버는 한국GM 창원공장에서 글로벌 시장에 판매될 모든 물량을 생산하는 만큼 한국GM 경영 정상화를 좌우할 핵심 차종이다. 앞서 GM은 이 모델을 생산하기 위해 스파크, 다마스 등 경차를 생산하던 창원공장을 최신 시설로 개조했다. 이를 통해 시간당 60대, 연 최대 28만대 규모 생산 역량을 확보했다.
티볼리처럼 효자 노릇 톡톡
KG모빌리티로 사명을 바꾼 쌍용차 분위기도 여느 때보다 좋다. 지난해 선보인 야심작 중형 SUV ‘토레스’가 꾸준히 인기를 끄는 덕분이다. 토레스는 첫해에만 2만2484대 팔리며 상품성을 인정받았다. 판매 가격이 경쟁 모델보다 저렴한 2690만원대로 시작하는 데다 넉넉한 공간에 ℓ당 10.2㎞의 수준급 연비를 갖춘 덕분이다.
토레스 인기 덕분에 KG모빌리티는 지난해 내수 6만8666대, 수출 4만5294대로 총 11만3960대를 판매했다. 2021년 대비 34.9% 증가한 수치다.
올 들어서도 분위기가 괜찮다. 1~2월 내수 시장에서 토레스는 1만257대 팔렸다. KG모빌리티 전체 내수 판매량(1만3915대)의 74% 수준이다. 올해 국내에서 팔린 KG모빌리티 차량 10대 중 7대가 토레스인 셈이다. 티볼리, 코란도, 렉스턴 판매가 주춤한 사이 토레스 경쟁력이 빛을 발했다. 2월 기준으로는 현대차 그랜저, 기아 카니발, 현대차 아반떼에 이어 월간 판매 4위에 올랐다.
르노코리아자동차 역시 스테디셀러 모델인 중형 SUV ‘QM6’가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QM6는 2016년 출시 이후 지난해까지 7년간 총 23만4614대 팔렸다. 2000만원대 중형 SUV라는 ‘가성비’를 앞세워 르노코리아 주력 모델로 롱런하고 있다.
여세를 몰아 최근 QM6의 부분변경 모델 ‘더 뉴 QM6’를 선보였다. 라디에이터 그릴, LED(발광다이오드) 주간 주행등, 타이어 휠 등 외관에 변화를 주고 친환경 올리브그린 나파 가죽 시트를 추가했다. 9.3인치 디스플레이를 통해 실시간 티맵 내비게이션, 인공지능(AI) 기반 음성인식 누구(NUGU)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편의 기능도 향상시켰다. 고효율 필터를 통해 초미세먼지 99%를 정화할 수 있는 공기 청정 순환 모드도 눈길을 끈다. 디스플레이 밑에는 LED 살균 모듈 장치가 설치됐다.
특히 이번에는 기존 가솔린 모델과 액화석유가스(LPG) 모델에 2인승 화물밴 ‘QM6 퀘스트’를 추가한 점이 돋보인다. 2열 공간에서부터 트렁크까지 적재 공간으로 구성된 신차다. 기존 모델보다 몸집을 키워 최대 적재량이 300㎏에 달한다. LPG를 연료로 한 경제성도 돋보인다.
르노코리아는 쉐보레 다마스, 라보 등 소형 화물차가 단종되고, 기아 레이나 현대차 캐스퍼 등 경차를 베이스로 만든 밴 모델이 인기를 끄는 점에 주목했다. 밴이 단순한 화물용이 아니라 1~2인 가구 레저용으로 주목받는 점을 감안해 국내 최초로 SUV를 밴으로 만들었다.
가격 경쟁력도 괜찮다. QM6 가솔린 모델 2.0 GDe가 2860만~3715만원, LPG 모델 2.0 LPe는 2910만~3765만원이다. 퀘스트는 2680만~3220만원 수준. QM6 퀘스트의 경우 관련 법규상 LPG 소형 화물차로 분류된다. 경유차를 폐차하고 구매할 경우 조건에 따라 최대 900만원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덕분에 업무용 차량으로 이용하려는 소상공인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 후문이다. 르노코리아 관계자는 “QM6 퀘스트는 공간 구성에 장점이 있는 만큼 소상공인과 레저 용도로 즐기려는 소비자 모두를 만족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제도 만만찮아
후속 모델 흥행이 변수
가성비 신차 덕분에 KG모빌리티, 르노코리아, 한국GM 분위기가 모처럼 좋아졌지만 결코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완성차업계 대세인 친환경차 경쟁력이 떨어져 흥행 열기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한국GM은 올 1~2월 국내 판매량이 2138대에 그쳐 전년 동기 대비 43.6% 급감했다. 지난해 판매량도 3만7237대로 KG모빌리티(6만8666대), 르노코리아(5만2621대)보다 한참 적다. 심지어 수입차 대표 주자인 메르세데스-벤츠 판매량(8만976대)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연간 판매량도 매년 30%대 감소세를 보이면서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한국GM 판매량이 급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GM 대표 모델이었던 경차 스파크, 세단 말리부, SUV 트랙스 등이 차례차례 후속 모델 없이 단종되면서 내수 판매 동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GMC 시에라, 타호, 콜로라도, 트래버스, 이쿼녹스 등 수입 모델 판매량이 현대차, 기아 동급 모델에 밀려 부진을 겪었다. 한국GM 생산 차종은 SUV 트레일블레이저와 CUV 트랙스 크로스오버 그리고 생산은 한국GM이 담당하나 국내에는 판매되지 않는 SUV 뷰익 앙코르 GX 정도만 남았다. 생산 차종 간소화는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글로벌 GM의 전략적 결정이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트랙스 크로스오버가 인기를 끌지만 워낙 경쟁 모델이 많아 판매량이 계속 증가할지는 미지수다. 또 다른 인기 후속 모델을 내놔야 전체적인 판매량 상승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KG모빌리티도 마찬가지다. 토레스 후속 모델 흥행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2015년 당시 선보인 소형 SUV 티볼리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15년 당시 내수 시장 4만5000대, 2016년에는 5만7000대가 팔리며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덕분에 쌍용차는 오랜 기간 적자에서 벗어나 2016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티볼리 대박 이후 흥행을 이어갈 후속 모델을 내놓지 못해 쌍용차는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매출 3조4233억원에 영업손실 1119억원을 기록했다. 2021년 실적(매출 2조4293억원, 영업손실 2613억원)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적자 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결국 토레스 열풍을 이어갈 후속 모델 흥행이 절실한 상황이다. 특히 내연기관차만 고집해서는 완성차업계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만큼 전기차 볼륨 모델 판매량이 중요하다.
절치부심한 쌍용차는 토레스 전기차 모델인 ‘토레스 EVX’를 올 하반기에 내놓고 토레스 흥행 열기를 이어간다는 목표다. 중국 BYD와 전략적 제휴로 가격이 저렴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탑재해 3000만원대로 가격을 낮춘다는 전략이다.
‘SUV 명가’ 위상을 되찾기 위해 스테디셀러인 코란도를 재해석한 전기차 ‘KR10’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다만 이들 차량 스펙이 현대차, 기아 전기차보다 앞설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완성차업계의 걱정 어린 시선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글로벌 시장에 내연차 관련 잉여 시설, 인력이 넘쳐난다. 쌍용차는 외부에 의존하는 전기차 기술을 내재화하고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만드는 등 친환경차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진단한다.
르노코리아자동차 역시 QM6 같은 스테디셀러 모델로 버티지만 뚜렷한 신차 후속 모델이 없다는 점이 변수다. 내년 출시를 목표로 하이브리드 신차를 준비 중인데 경쟁 모델 대비 상품성을 얼마나 갖출지는 미지수다.
중견 완성차 3인방 모두 친환경차 볼륨 모델을 내놓지 못하면 생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 한목소리다. 중견 완성차 업체의 신바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가 관전 포인트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3호 (2023.04.05~2023.04.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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