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공기 먹기? 경박스럽다" 이재명도 때린 오합지졸 여당 [현장에서]
5일 오전 국회 본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와 면담을 마치고 나오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2030년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영국의 협조를 구하는 자리였지만 취재진의 관심은 딴 데 있었다. 이날 오전 조수진 최고위원이 라디오에 출연해 발언한 “밥 한 공기 다 비우기 (운동)”에 관한 의견을 묻는 질문이 쏟아졌다.
조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첫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과 관련해 ‘공기밥 다 비우기’라는 아이디어를 이날 오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언급해 논란에 휩싸인 상황이었다. 김 대표는 “그게 무슨 대책이 될 수 있겠느냐”고 선을 그으면서도 조 최고위원이 이끄는 당 민생특위(일명 ‘민생119’)가 희화화되고 있다는 지적엔 “지금 활동을 시작했는데 희화화될 것이 뭐가 있겠냐”고 옹호했다. 하지만 뒤이어 기자들이 “김재원·조수진 최고위원의 (문제 발언이) 연달아 나오는데 한 말씀 해달라”고 하자 김 대표는 허탈하게 웃으며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조 최고위원은 '공기밥 비우기'에 대해 “몇몇 아이디어를 소개한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집권여당 지도부이자 민생특위 위원장이 갖는 무게감은 적지 않다. 양곡관리법 개정은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다. 야당은 거부권 행사를 막기 위해 지난 3일 현역 의원 두 명이 국회 앞에서 삭발식까지 했다. 그런 상황에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한 조 최고위원이 대안을 묻는 질문에 “여성들이 다이어트를 하느라 밥을 잘 안 먹는다. 밥이 칼로리가 낮다”는 말을 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이걸 갖고 대안 경쟁을 할 수 있겠느냐. 갈수록 태산”이라고 비꼬았다.
이런 풍경은 요즘 국민의힘의 일상이 됐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논란이 큰 발언을 하면 기자들이 김 대표를 따라가 입장을 묻고, 김 대표는 겸연쩍은 미소와 함께 자리를 뜨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지난달 12일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예배에 참석해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5·18 정신 헌법 수록을 “반대한다”고 했고, 같은 달 25일엔 미국에서 “전광훈이 우파를 통일했다”고 했으며, 지난 4일엔 제주 4·3 추념식을 “국경일보다 격이 낮은 추모일”이라고 했다. 최고위원 최다 득표자인데 당선 한 달도 안 돼 세 번의 설화(舌禍)에 휩싸였다.
당의 중심부뿐 아니라 주변도 시끄럽다. 한때 윤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졌던 신평 변호사가 “윤석열 정부는 지금 과도하게 10분의 3을 이루는 자기 지지층을 향한 구애에 치중한다. 윤 대통령이 대구의 서문시장을 네 번이나 방문한 것은 그 상징적 예”라고 지적하자 대선 때 윤 대통령 수행실장을 했던, 대표적인 '친윤' 이용 의원은 “그 누구도 부여하지 않은 ‘멘토’ 호칭을 앞세워 사견을 훈계하듯 발설한다. 사심을 품고 철새처럼 행동한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이 의원의 이런 반응을 두곤 당내에서도 "완장질이 심하다"란 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당 회의가 열릴 때마다 각종 비리 혐의에 연루돼 피의자 신분이 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비판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 이 대표도 5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쌀값 대책으로 국민의힘이 ‘밥 한 공기 다 먹기 운동’을 내놓은 것이 정말이냐”고 한 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기는 한데 신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너무 경박스럽다. 여당 지도부는 신중하고 진지해지라”고 했다. ‘이재명 규탄’ 빼고는 별다른 콘텐트가 없는 국민의힘 입장에선 얼굴이 화끈거리는 조언이 아닐 수 없다. 출범 한 달이 채 안 된 김기현호의 현주소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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