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원전' 두고 美와 소송 장기화…"협의중"에도 우려 커져
'한국형 원전' 수출을 두고 미국과의 소송전이 길어지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소송 해결을 위한 협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체코·폴란드 등으로의 수출 전선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미 갈등의 씨앗은 체코 정부가 두코바니 지역에 추진하는 1200MW 이하급 원전 1기 사업(약 8조원)이다. 내년 사업자 선정을 앞둔 가운데, 한수원과 미국 웨스팅하우스, 프랑스 EDF 간의 수주 3파전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한수원의 입찰서 제출 직전인 지난해 10월 웨스팅하우스가 미국 법원에 한국형 원전(APR1400)의 독자 수출을 막아 달라는 지식재산권 소송을 제기했다.
APR1400에 자사 기술이 쓰인 만큼 웨스팅하우스와 미국 에너지부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경쟁자'인 한수원 견제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원전 개발 초기엔 웨스팅하우스 도움을 받았지만, 현재 한국형 원전은 핵심기술의 자립을 이뤄 허가가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반년째 이어지는 소송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형 원전 수출 시 미국의 수출 통제 규정을 준수해야 하는지 등을 두고 이견이 큰 탓이다. 4일(현지시간)엔 한수원·웨스팅하우스가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 제출한 서류 내용 일부도 공개됐다.
원전 업계에 따르면 한수원은 지난해 12월 미국 에너지부에 체코 원전 사업 입찰서 정보를 제출했다. 이후 지난 1월 미 에너지부는 한수원에 "(원전 기술) 수출 신고는 미국 기업이 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냈다. 그 외엔 별다른 설명이 없었다.
이를 두고 미국 정부가 한수원의 독자 수출에 제동을 걸면서 체코 사업 수주 등에 먹구름이 낀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 에너지부의 의견이 한국형 원전을 수출할 때 웨스팅하우스 허가를 거쳐 신고를 하라는 압박으로 해석되서다. 하지만 한수원은 원론적인 절차를 언급한 것으로, 체코·폴란드 등 향후 원전 수출길엔 차질이 없다는 입장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기술 사용에 따른 이익 보상이 아니라 안보상 민감한 수출 통제와 연관된 문제로 보인다"며 "미국 정부 입장이 애매해 향후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수원은 웨스팅하우스와 소송 해결을 위한 협의·조정을 계속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에도 서로 입장을 논의할 준비가 됐고, 상호 만족할 해법을 도출할 거라 믿는다는 내용의 서한을 웨스팅하우스에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의 판단이 불분명한 만큼 끝까지 가기보단 중재·합의를 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소송이 장기화하면 한·미뿐 아니라 러시아·중국·프랑스 등이 버티는 원전 시장에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내부에서도 고심이 적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소송 건은 당연히 조기 해결하길 원하지만, 자칫 의욕만 앞서면 상대방이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는 구조다. 그래서 빠르게 해결하겠다는 말도, 긴 호흡으로 가겠다는 말도 못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일부 손해를 보더라도 '원전 협력 파트너' 미국과 빠른 합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설계 기술 중심인 웨스팅하우스는 시공 능력이 떨어지는 만큼 손을 잡아야 서로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관계가 계속 벌어지면 향후 제2, 제3의 소송이 이어질 거란 우려도 있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웨스팅하우스와 갈등이 지속하면 국제 정세상 약자인 우리가 더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지분을 나누고 협업 구조로 수출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미국 역시 한국의 우수한 공급망을 배제하면 아무리 수주를 많이 해도 적기에 완공할 수 없다"면서 "최대한 빨리 소송을 마무리하고, 이번 달 윤석열 대통령 방미를 계기로 양국 원자력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원전업계 관계자도 "두 나라가 서로 자기네 원자로만 고집하고 있지만 공동협력·진출에 나서면 수출 '윈윈'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세종=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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