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반도체장비 수출 규제에 中 보복 시사…K-반도체 '가시방석'

박해리 2023. 4. 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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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대중 수출규제에 참여하며 미국의 중국 반도체 굴기 압박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셔터스톡


일본의 첨단 반도체장비 수출 규제 강화 방침에 중국 정부가 보복 조치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중·일 간 갈등으로 확산하자 한국 반도체 업계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5일 외신 등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는 “일본 측이 고집스럽게 중·일 반도체 산업 협력을 인위적으로 저해할 경우 과단성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중국 기업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권익을 해칠 뿐 아니라 일본 기업에도 손실을 입히고 자신(일본)과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을 해친다”고 덧붙였다.

앞선 지난달 31일 일본은 오는 7월부터 첨단 반도체장비 23품목의 대(對)중국 수출을 사실상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첨단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기반 장치, 각종 식각·검사 장치 등이다. 모두 10~14나노미터(㎚·1㎚=10억 분의 1m) 이하 선폭을 가진 첨단 제품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장비다. 일본은 “이번 조치는 특정 국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해외 언론 등에서는 이번 일본의 조치가 중국의 ‘칩 야망’에 타격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반도체장비 수출 제한에 합류하기로 한 일본의 결정은 기술 전쟁에서 강력한 새로운 무기를 제공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칩 전쟁』의 저자이자 경제사학자 크리스 밀러 인터뷰를 인용해 “이런 규제의 목표는 중국 기업이 고급 칩을 제조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기술 개발 속도를 늦추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은 미국·네덜란드와 함께 반도체장비 강국으로 꼽힌다. 도쿄일렉트론(일본)과 ASML(네덜란드),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미국) 등 5대 반도체장비 기업이 세계 시장의 79.5%를 차지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등에 들어갈 최첨단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회사에서 공급하는 장비가 필수적이다. EUV 장비를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는 ASML도 대중 제재에 동참하기로 한 만큼 일본의 이번 참여가 중국엔 더욱 치명적이다.

다만 일본 기업도 출혈을 감수해야 할 처지다. 2021년 일본 반도체장비의 해외 매출액은 2조9705억 엔(약 28조2000억원)으로, 이 가운데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33%(9924억 엔)로 가장 많았다. 도쿄일렉트론은 2021회계연도 매출 중 26%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 회로와 관련된 기기 중에는 대중국 매출 점유율이 90%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도쿄일렉트로닉의 경우 매출이 5~10%포인트 줄어들 전망이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 연합뉴스


스크린홀딩스도 매출의 4분의 1이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중국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인 SMIC의 급성장에 기댄 덕분이다. 노광장비 칩 검사 장비를 생산하는 세계 유일한 업체인 레이저텍은 ASML의 중국 출하 제한으로 타격을 입은 상태다.

국내 반도체 업계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본의 이런 규제 동참에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본산 장비를 현지 공장에 들여놓기 힘들게 됐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오는 10월까지 대중 수출 통제 유예가 적용된 상황이지만 이 조치가 연장되지 않았을 때 들여놓을 수 없는 장비·부품 목록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며 “모두 첨단 칩 생산에 필수적인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전체 낸드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5%를 중국에서 생산 중이다. SK하이닉스는 2021년 인텔로부터 다롄에 있는 낸드플래시 공장도 인수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미국과 일본의 끈끈한 연대가 한국을 더욱 가시방석 위에 올려놓는다는 시각도 있다. 이창한 한국반도체협회 부회장은 “반도체장비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는 네덜란드와 일본, 미국까지 대중 규제에 나서고 있는데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도 “동맹국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결국 한국에도 ‘중국 아닌 미국 측에 서라’는 신호로 해석될 있다”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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