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좋아하는 거 말고 나 좋아하는 거 해야" 장항준의 뚝심
[이선필 기자]
▲ 영화 <리바운드>를 연출한 장항준 감독. |
ⓒ 바른손이앤에이 |
기획에서 제작까지 10년이 걸렸다. 고교 농구라는 비인기 종목, 그것도 유망주도 아닌 무명에 가까운 여섯 선수들의 활약을 그린 스포츠영화가 빛을 보게 됐다. 장항준 감독, 그리고 김은희 작가가 연출과 각색에 참여하게 되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셈이다. 5일 개봉한 영화 <리바운드>가 침체된 한국영화의 활력이 될 수 있을까. 일단 시사회 반응과 만듦새만 놓고 보면 긍정적으로 보인다.
프로 2군 출신 공익근무요원이 부산의 한 고등학교 농구부 코치로 부임하고, 오합지졸처럼 보였던 여섯 명 선수들과 함께 2012년 전국 고교농구대회 준우승을 차지하는 이야기. 말대로 영화같은 이야기지만 실화다. 장항준 감독 또한 2018년 무렵 제작사에게 처음 제안받았을 때 "너무 작위적인데? 실제 사건인가" 싶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돛을 올린 영화는 약 5년간의 각색 과정을 거쳐 지금의 결과물이 됐다.
감독과 한 마음이었던 투자자
"기사를 찾아보니 진짜더라. 설레고 피가 끓었달까. 그때 그 선수들은 무슨 심정으로 농구를 했지 생각하게 되더라. 아내 (김은희 작가)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줬고, 딸도 읽어봤다. 딸이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 '아빠가 연출 안해도, 누군가 꼭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아내가 '이거 할 거야? 내가 좀 고쳐보면 안돼?'이랬고, 속으로 '이게 웬 떡이냐! 싶었지(웃음).
이 영화가 넥슨에서 투자한 건데 제작비 전액을 지원했다고 알고 있다. 제게 제안왔을 때 넥슨이 마침 영화 사업 쪽을 준비하던 차였다고 하더라. 공동제작자로 들어가 있는 김영훈 대표 친형이 배우 하정우다. 시나리오를 본 그가 넥슨에 전달해줬고, 그렇게 성사가 됐다. 당시 시나리오 19편 정도를 넥슨이 검토하고 있었는데 <리바운드>가 만장일치로 결정됐다고 들었다. 근데 그쪽에서 '이 영화로 돈 벌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했다더라. 저도 여러 작품을 했지만 투자자에게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한 발 나아가 장항준 감독은 일종의 모험이라면 모험을 했다. 강양현 코치 역의 안재홍 등을 제외하고 주요 선수들 역할 캐스팅에 신인 배우를 대거 기용한 것이다. 규혁 역의 정진운 외에 기범 역의 이신영, 순규 역의 김택, 강호 역의 정건주, 재윤 역의 김민, 진욱 역의 안지호 등의 라인업이 그렇게 탄생할 수 있었다.
"제안받았을 때부터 신인 배우를 셍각했다. 기성 배우는 캐릭터보다 그 사람이 먼저 보여서 신인을 꼭 쓰고 싶었다. 현실을 잘 구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실제 선수들 신장과 몸무게와 가장 비슷한 배우들을 택했다. 옷과 농구화도 같아야 했다. 미술팀과 배우들이 고생했지. 배규혁 선수의 신발은 단종된 모델이었는데 정진운 배우가 인터넷에서 수소문해서 찾아왔더라. 밑창이 떨어져 있는 걸 겨우 수리해서 신게 했다(웃음). 촬영도 실제 배경인 중앙고교에서 했는데 리모델링이 돼 있는 걸 다시 다 뜯어내고 했다. 나중에 원상복구시켜드렸지 당연히."
경기 장면 또한 중요했다. 스포츠 영화 특성상 해당 장면의 박진감이 살아야 하고 무엇보다 캐릭터의 감정선이 잘 표현돼야 했다. 장항준 감독은 CG(컴퓨터 그래픽)를 되도록 쓰지 말자는 원칙을 정했고, 배우들은 수 개월 간 합숙하며 농구 연습을 했다는 후문이다.
"진짜 선수가 아닌 이상 흉내 낼 수밖에 없는데 농구는 흉내 자체가 안되더라. 폼이 무너지면 아무리 CG를 붙여도 이상해지기에 피나는 훈련을 했지. 공격을 한 번 주고받는데 빠르면 7초가 걸린다. 초고속 카메라로 찍는 것에도 한계가 있기에 영화에 쓰든 아니든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 촬영했다. 예를 들어 '안양고와 30신의 20번째 합'이러면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우르르 모여서 준비할 정도였다. 밥 먹듯 연습해도 다 아는 거지. 정말 진짜처럼 찍고 싶었다. 배우들도 신인이라 자기 인생에서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미국 농구 영화와 또 다른 걸 보여주자는 각오가 있었다.
▲ 영화 <리바운드> 관련 이미지. |
ⓒ 넥슨코리아 |
배우들의 열정과 감독의 철학
<리바운드>가 갖는 또다른 미덕은 배우 안재홍의 친숙함을 십분 활용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독립영화 <족구왕> 시절 보여준 사람 좋은 모습을 오랜만에 꺼내 보여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장항준 감독 또한 "친근한 동네 형 같은 그의 모습이 좋다"라며 말을 이었다.
"찌질해보이기도 하고 허점이 보이기도 하는 면을 좋아한다. 그 연기를 누가 대체할 수 있겠나. 실제로 사람이 참 선하기도 하다. 이 영화가 외국 스포츠 영화와 가장 다른 점은 완성형 코치가 선수들을 교화시키고 완성하는 게 아닌 코치조차도 별 볼 일 없다가 함께 성장하는 것에 있다. 전 이렇게 소개한다. 꿈을 포기한 25살 청년과 세상에서 소외당한 여섯 소년들의 여행기라고.
실제 강양현 코치도 순수한 면이 있다. 영화화가 결정되고 안재홍씨와 셋이 친하게 지냈다. 술자리에서 기분이 좋았는지 영화에서 자길 죽여도 된다더라. 그 말에 재홍씨가 '형이 왜 죽냐고 이거 실화라고' 대꾸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순수한 사람이다. 재홍씨가 강 코치 연구를 많이 했지. 말투와 버릇까지(웃음). 현장에서 애드리브도 꽤 많았다. 대본 자체는 건조했는데 현장에서 배우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오면 반영하곤 했다. (중앙고 선생 역의) 이준혁 배우의 잠꼬대 장면도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드라마 <싸인>이나 영화 < 7년의 밤 > 등 그의 연출작을 보면 경계도 없고 범주도 넓어 보인다. 최근엔 예능 출연 또한 활발해서 대중과 친숙한 이미지기도 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이쪽 일을 하면서 가진 이상한 철학이 있다"며 "남이 좋아하는 거 말고 내가 좋아하는 걸 하자는 주의다. 춤을 추더라도 남의 장단에 춤추지 말자가 일종의 좌우명"이라 말했다.
"일단 나라도 즐거워야 남을 즐겁게 할 수 있다. 그게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다. 시장 흐름이나 트렌드는 중요치 않다. 작품 준비 중에 잘 안 되거나 묵히는 건 영화인의 숙명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이번 영화도 본래 다른 걸 준비하다가 엎어져 있던 차에 하게 된 것이고. 사실 어떤 감독님은 특정 장르의 대가처럼 되기도 하는데 전 끈기가 없어서 그런지 한 장르만 파질 못한다. 몇 년 파묻혀 지내다 보면 다른 걸 하고 싶고 그렇다. 왜 식당들도 전문점이 있지만 김밥천국도 있잖나. 전 순두부찌개도 팔고, 김밥도 파는 김밥천국과인 것 같다(웃음)."
영화 속 실존 인물인 천기범 선수가 음주운전 등으로 논란이 되는 등 악재가 있었던 것과 관련, 장항준 감독은 "당황했지만, 영화를 멈출 순 없었다. 특정인 1명이 끌고 가는 영화가 아니기에 정면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어떤 영화든 난관이 없는 경우는 없다. 그의 뚝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인터뷰 말미 <리바운드>와 동시기 개봉하는 <장기자랑> 이야기가 나왔다. 세월호 유가족 극단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장항준 감독 또한 평소 유족 모임을 여러 차례 찾았던 만큼 남다른 마음일 터.
그는 "독립영화들이 지금 너무 안 좋은 상황인데 사실 독립영화가 잘 되고, 저희 같은 중급 예산 영화가 잘 되고 그 다음 블록버스터가 나와야 하는데 자본 편중이 심해져서 마음이 아프다"며 "영화라는 게 단순히 오락일 수도 있지만 문학적, 문화적 가치도 분명 갖고 있는 만큼 어느 한쪽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소신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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