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 눈 감고, 색깔론까지... 보수신문-경제지의 4.3 보도
[민주언론시민연합]
▲ 한덕수 국무총리와 참석자들이 3일 오전 제주시 명림로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2023.4.3 |
ⓒ 연합뉴스 |
75주년을 맞은 4.3 희생자 추념식이 '견뎌냈으니, 딛고 섰노라'는 주제로 4월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불참으로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신 추념사를 읽었으며, 여당 지도부는 일부 참석하고 야당 지도부들은 총출동해 극명한 대비를 보였습니다.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의 상징인 4.3 희생자 추념식에 역사를 왜곡하는 현수막이 걸리고, 서북청년단이 난입해 이념 논쟁으로 번지고 있는데요. 과거를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려는 움직임이 4.3항쟁에도 시도되고 있습니다. 4.3희생자 추념식 언론 보도를 살펴봤습니다.
'격 낮은 기념일', 대통령 '불참' 감싼 조선일보
2022년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처음 4.3 추념식을 찾았던 윤석열 대통령 및 국민의힘 당대표와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올해 추념식엔 불참했습니다. MBC <대통령 '불참'...이례적 추념사>(4월 3일 신수아 기자)는 "추념사는 한덕수 총리가 대독했는데, 제주 지역 발전을 약속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추념사로는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추념사는 "2분가량으로 매우 짧았고, 추모는 '국가의 의무'라"고 반복했지만, 희생자 지원 같은 "구체적 방안은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는데요. JTBC <대통령도 여당 대표도 '불참'>(4월 3일 채승기 기자)도 "일정 때문이라지만 보수 지지층 다지기"라며 "이념적으로 민감한 4.3 이슈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행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고 보도했습니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에 이념적 해석을 덧붙여가며 정치권이 불참하는 것도 문제지만, 언론에는 윤 대통령의 불참을 감싸는 보도가 등장했습니다. 조선일보 <5월엔 5.18, 6월엔 민주항쟁...여야 '달력 정치'에 달마다 지뢰밭>(4월 4일 원선우·김승재·김상윤 기자)은 "매년 특정 일을 계기로 똑같은 공방을 무한 반복하는 한국식 저질 '달력 정치'의 한 단면"이라고 비난하며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보면 한국에서 가장 격(格)이 높은" 5대 국경일에서도 대통령의 참석이 달라지는데 "'4.3 희생자 추념일'은 이보다 격이 낮은 '기념일'에 해당"해 "대통령 참석은 의무 사항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같은 논리로 보자면, 3월 24일 '서해 수호의 날' 역시 기념일로 대통령 참석은 의무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낭독하며 울먹였고, 조선일보 <윤 "북도발 절대 잊어선 안돼">(3월 25일 김동하 기자)는 이를 1면에 주요하게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 기사 <이 대표는 불참...정치권 "야, 선거 없으면 기념식 패싱">(3월 25일 박국희 기자)에서 야당의 불참을 비판했는데요.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은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던 조선일보는 '서해 수호의 날'의 야당 불참은 비판하며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은 의무인지 아닌지를 따질 것이 아니라 참석 자체로 '아픔의 치유와 사회 통합'의 의미가 있기에 중요한데요.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썼듯 기념식을 '편가르기 도구로 과거사를 전락'시키고 있는 것은 조선일보 스스로가 아닌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4.3 왜곡세력에 입 닫은 TV조선·채널A·MBN
4.3항쟁은 수많은 희생자를 남긴 아픈 역사로 미 군정기부터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까지 7년여에 걸쳐 반란 세력을 진압한다는 목적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대대적으로 희생됐습니다. 올해 추념식에는 20여 년 만에 처음 극우단체들이 나타나 4.3 역사를 왜곡하며 희생자와 유족에게 상처를 남겼는데요.
▲ 제주 4·3 왜곡 세력을 보도한 KBS(4/3) |
ⓒ KBS |
SBS는 팩트체크보도 <"제주 4.3 사건은 공산 폭동" 또 꿈틀…사실은?>(4월 3일 이경원 기자)에서 제주 4.3사건은 "6년간 1만 명 가까운 무고한 양민이 좌익으로 몰려 학살된" 사건으로 "공산 폭동이라는 말은 양민 학살 문제를 덮는 것은 물론 피해자를 폭동 주체로 만드는 표현으로 읽혔"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김일성이 지휘권을 가진 남로당 중앙당이 기획, 지시했다는 '중앙당 기획설'"은 정보기관에서 조작한 것으로 "고 백선엽 장군 등 당시 군 지도부, 권위 있는 4.3 학자들도 남로당 중앙당 개입은 없었다고 증언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주장하고 있는 김일성 개입설은 "직접 증거라기보다는 김씨 일가가 4.3을 정치적 선전에 이용한 사례에 가깝"다고 짚었는데요. SBS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반론은 명확한 사실을 근거로 책임감 있게 제기"해야 한다며 역사 왜곡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 극우단체의 제주 4·3 역사왜곡 방송사 저녁 종합뉴스(4/3)와 신문 지면(4/4) 보도여부 |
ⓒ 민주언론시민연합 |
보수신문·경제지, 극우단체 패륜행위 보도 없어
신문에서도 극우단체의 4.3 추념식 방해 행위를 보도하는 모습이 엇갈렸는데요. 보수신문과 경제지는 극우단체의 패륜적 행위를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와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에서 '서북청년단' 난입과 '4.3 공산 폭동' 현수막 설치를 언급한 기사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반면, 한국일보 <75년 전 토벌대 '악명'...추념식까지 어지럽힌 서북청년단>(4월 4일 김영헌 기자)은 "서북청년단은 70여 년 전 4.3 당시 '토벌대'로 불리며 수많은 제주도민 학살에 관여"하며 악명을 떨친 단체로 과거 서북청년단 등을 동원한 군정경찰의 토벌 작전이 제주에서 일어났다고 짚었습니다.
한겨레 <사설/대통령부터 줄줄이 4.3 불참, 극우 의식 거리두기하나>(4월 4일)도 추념식에 "4.3 당시 양민학살에 앞장섰던 '서북청년단' 이름을 딴 극우단체까지 나타났"다며 "정부·여당이 4.3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잘 알기에 이들도 이런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유족들의 반발에도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4.3을 공산주의 폭동이라고 폄훼한 김광동씨"를 "아랑곳 않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에 임명했"으며,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4.3 유가족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이승만의 공을 기리자"는 주장을 계속하는데 '국가의 책임과 치유', '유가족들의 명예회복'이란 대통령의 약속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냐고 되물었습니다.
조선일보·한국경제, '남로당 무장폭동이 시작' 색깔론 주장
한국경제는 "북한과 남로당에 의한 폭동이라는 본질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며 희생자를 기리는 것과 동시에 정부 탄생을 막으려 한 남로당의 폭동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설/"잊혀지고 싶다"던 문재인, 제주서 다시 편가르기 나서나>(4월 4일)에서 "4.3사건에 대해 이념적 잣대를 확증편향적으로 들이대면서 사회를 분열시키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며 오히려 제주를 찾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 4·3 역사 페이지 갈무리 |
ⓒ 제주4·3평화재단 |
그러나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 및 보수언론이 주장하고 있는 북한과 남로당 제주도당으로 인해 4.3이 촉발됐다는 주장은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기술된 사건의 정의와 배치됩니다.
4.3특별법에서 4.3사건은 경찰의 3.1절 발포사건을 발단으로 남로당 반란과 극우단체의 민간인 과잉진압으로 확산됐다고 기술됐습니다.
<제주4.3평화재단>도 4.3은 1947년 3.1절 행사에서 경찰 발포로 주민 6명이 사망한 사건을 시작으로 민·관 합동 총파업이 시작되자, 서북청년단이 제주에 들어와 '빨갱이 사냥'을 한다는 구실로 테러를 일삼아 민심을 자극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로당 제주도당은 한반도 분단 위기 속에 5.19단독선거에 반대투쟁하고, 군정경찰과 서북청년단에 저항하며 무장봉기를 일으켰는데요.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반란 행위는 불순세력의 음모로 판단돼 미군과 군정경찰의 강경 토벌작전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 무고한 도민들이 집단 희생된 것입니다.
한국일보 <사설/제주 4·3 75주년, 상처 덧내는 여당>(4월 4일)은 "4.3 피해자와 유족들은 오랜 세월 '빨갱이' 시선이 두려워 피해 사실을 드러내고 말하지도 못했"는데 "다시 제주 곳곳에 '4.3은 공산폭동'이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며 "극우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여당 지도부가 일조해서야 되겠나"고 일갈했는데요. 보수언론은 북한과 남로당을 강조하며 색깔을 덧씌우기 이전에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4.3 희생자들의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역사를 바로 알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제주 4·3 역사 왜곡 발언이 나온 세미나를 보도한 JTBC(4/3) |
ⓒ JTBC |
같은 세미나를 보도한 오마이뉴스 <지금 윤 정권에서 무슨 일 일어나고 있나...이상한 세미나>(3월 31일 김종성 기자)에 따르면 현장에 참석한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박인환 변호사는 "4.3을 공산주의 폭동으로 규정했"으며 더 나아가 "공산세력의 대한민국 건국 방해 활동이 그 본질이고, 안타까운 희생자의 발생은 부수적·우발적이라는 점에 대하여는 논란의 여지가 없음"이라고 발표문에 기술해 "4.3 때의 민간인 학살을 두둔하기까지 했"습니다.
또 다른 참석자인 전민정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 대표는 희생자·유족 명예회복을 위한 법률이 "반국가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 뒤 "4.3 바이러스가 화해와 상생이라는 위선의 옷을 입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시스템에 침투하여 헌법 이념을 파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진정한 희생자에 대한 2차 가해"라는 무책임한 막말을 늘어놓았습니다.
왜곡을 지적하지 않으면, 역사가 된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북한이 5.18민주화운동에 개입했다는 왜곡된 주장이 사라지지 않고,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며 일본군 성노예와 일본에 의한 강제노동은 없었다며 역사를 지우려는 친일 세력의 목소리가 여전합니다. 제주 4.3은 1947년 미군정 시기 3.1절 기념식에 미군정 기마경찰이 어린이를 치고도 후속 조처를 취하지 않자 도민들의 항의하면서 발단됐고, 무장대와 토벌대의 무력충돌로 10세 이하 어린이부터 70세 이상 노인까지 무자비하게 학살된 사건입니다.
경향신문 <전국 대학생들 추모 동참 "기억하고 행동하겠다">(4월 4일 전지현 기자)는 전국 39개 대학 총학생회·역사동아리가 각 대학에 추모 현수막을 게시하며 4.3을 추모한 소식을 전했는데요. 학생들은 "4.3에 대한 색깔론과 역사 왜곡을 비판"했으며, 고준혁 제주대 총학생회 4.3연대국 부장은 "4.3은 좌우가 아니라 인권 유린의 측면에서 봐야 할 문제"라고 강조습니다. 보수신문과 경제지는 이념에 사로잡혀 역사를 왜곡하고 사실상 허위사실 유포에 가담하는 행태를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년 4월 3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9>(평일)/<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7>(평일)/<뉴스센터>(주말),
2023년 4월 4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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