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없는 대통령과 법기술자들의 폭주... 심상찮은 국민들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임상훈 기자]
▲ 3월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연금개혁 반대시위에서 한 남성 참가자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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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의 연금개혁 반대 시위 참여 후 경찰에 연행돼 즉결심판에 넘겨진 한 시민의 말이다. 정부의 일방적 독주에 맞서 거리로 나선 프랑스인들 가운데는 평생 시위 한 번 참여해본 적 없는 평범한 시민들이 다수 섞여 있다.
프랑스를 혼돈 속으로 내몰고 있는 연금개혁 문제는 단지 정책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흔히 생각하듯 임금노동자들의 게으름과 이기심이 빚어낸 갈등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연금 문제는 구체적 하나의 예시로 작용했을 뿐, 현재 프랑스가 겪고 있는 정치적 위기가 그 내면에 반영돼 있다.
프랑스의 정치적 위기는 현재 다수의 선진국이 겪고 있는 민주주의 위기와 맥을 같이 한다. 물론 서유럽과 북미 대부분, 그리고 아시아, 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에서 민주주의는 안정적으로 뿌리내려 있다. 제도적 의미에서 보면 그렇다. 그리고 그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는 법치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법치는 민주주의에 대한 사전적(事前的) 가치다. 민주주의는 제도적 규율과 함께 민심의 최대치 수렴이 가능할 때 최상의 가치를 발현한다. 제도적 장치가 갖춰지지 않은 집단 민의는 혼란에 빠지지만, 민심의 수렴이 보장되지 않는 법치는 권위주의로 타락한다. 다수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법치를 앞세운 민주주의의 위기는 여기에 기인하고 있다.
현재의 미국, 프랑스, 일본 등 다수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그 의미에서 민주주의 위기를 맞고 있다. 법을 잘 알고 있는 관료들은 법의 장치를 이용해 권위주의 체제를 공고히 해가고, 그에 동조하는 상당 부분의 유권자들은 그들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가고 있다. 그들은 함께 (제도적) 민주주의의 탈을 쓴 권위주의 체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연금개혁 문제를 둘러싼 프랑스의 위기는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 소수 지지층 위에 서 있는 마크롱 대통령은 역시 소수 극우세력의 발흥에 맞서려는 다수 국민들의 전략적 지지를 배경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요컨대 프랑스 민주주의가 극우라는 위협 앞에서 권위주의에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 2017년 5월 7일(현지시간), 프랑스 중도신당의 에마뉘엘 마크롱(39)이 극우진영의 마린 르펜(48·국민전선)을 꺾고 역대 최연소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날 파리 루브르 박물관 부근 카루젤 광장의 승리 행사에 참석한 마크롱이 연설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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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7일,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 대통령 당선 확정 후 연설에서 한 말이다. 그는 다수의 국민이 자신의 정치 이념에 동의해 표를 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이를 국민들 앞에서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첫 임기 5년 동안 연금개혁을 비롯한 다수의 정치 어젠다를 놓고 국민들과 충돌했다. 선거일 연설과 달리 그는 임기 내내 다수 국민의 저항에 스스로를 굽히지 않았다. '노란조끼운동' 등의 저항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차기 선거의 주인은 또 자신이라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볼모로 잡힌 프랑스 민주주의의 불행은 예상대로 5년 후 또다시 반복된다.
"국민 다수는 나의 이념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극우의 이념을 막기 위해 나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지금 나는 그들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2017년의 발언이 아니다. 2022년 4월 24일 재선이 확정된 후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들 앞에서 판박이 말을 반복했다. 국민들은 믿지 않았고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대선 후 1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는 연금개혁을 놓고 똑같은 정치적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아는 정부와 국민은 이제 서로의 퇴로를 끊은 채 최후의 결전을 치르는 중이다. 물론 법적으로는 연금개혁을 위한 거의 모든 절차가 끝났다. 오는 14일 한국의 헌법재판소에 해당하는 헌법위원회의 위헌 여부 판결만 남겨놓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 저항은 멈추지 않고 있다. 연금개혁은 한 소재일 뿐 정부의 독주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회원 수 기준 두 번째 규모이자 연금개혁 반대의 중심에 있는 노조 '노동총동맹(CGT)'은 최근 사무총장을 교체하면서 일전을 벼르고 있다. 정부의 대화 제의에도 나서면서 파업 투쟁도 병행한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장기전을 예고하고 있다.
▲ 3월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전역에서 제10차 연금개혁 반대시위가 열린 가운데 서부 낭트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자동차 한 대가 불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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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90년대 들어 노령층 증가와 청년층 감소 등 인구구성 비율이 달라지고 전 세계 신자유주의 광풍이 불면서 역대 정부는 연금제도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덜 노동하는 방향에서 더 노동하는 방향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미테랑 개혁 후 정확히 10년 만에 프랑스의 연금제도는 유턴하게 된다.
1993년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는 100%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총 노동시간을 37.5년에서 40년으로 늘린다. 그리고 2012년 프랑수아 피용 총리는 이를 다시 41년으로, 2020년 에두아르 필립 총리는 42년으로, 점차 납입기간을 늘려왔다. 비슷한 시기 법정 은퇴 연령도 62세로 늘어났다.
현재의 프랑스 정부는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총 노동시간, 즉 세금 납입 기간을 42년에서 43년으로, 수령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늘리려 하고 있다. 결국 1980년대 이후 프랑스는 노령연금을 수령하기 위한 납입기간도, 수령 가능 연령도 일관되게 높여가고 있다. 그렇다면 프랑스인들이 분노하는 이유가 단지 과거에 비해 일을 더 하라는 요구 때문일까?
프랑스 국민들은 과거와 달라진 청년 대비 노년 인구의 비율을 알고 있다. 따라서 필요하다면 연금제도 개혁을 해야 한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정부의 개혁에 저항하는 이유는 연금제도 개혁의 진짜 이유가 연금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프랑스를 포함한 많은 국가의 재무 정책에 떠도는 유령, 그것은 연금 재정의 고갈 위험이다. 현재와 같은 연금 체계로는 조만간 곳간이 빌 것이라는 게 그 골자지만, 그와 관련한 어떤 이론도 모두를 납득시키지 못했다. 현재 프랑스의 재정 전문가들과 경제학자들 역시 서로를, 그리고 국민을 이해시키는 보편적 이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 3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동부 아비뇽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풍자한 아티스트 렉토의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다. 아티스트 렉토는 마크롱 대통령이 헌법의 49조3항을 사용해 하원 표결을 건너뛰자 히틀러의 콧수염을 상징하듯 얼굴에 '49.3'을 그려 넣고 위에는 '아니오'(NON)라는 글씨를 새겨 정부의 연금 개혁안 통과를 비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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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방송에 출연한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개혁의 이유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그 사실을 시인했다. 지난 3월 22일 방송에서 그는 연금제도에 구조적 적자가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를 뒷받침할 이론적 근거가 빈약했기 때문일 게다.
대신 그는 연금예산을 절약해야 하는 이유로 팬데믹 기간 행해진 과다한 예산 지출을 말했다. 그리고 환경, 교육 정책 등에 필요한 예산을 나열했다. 타분야의 예산 확보를 위해 국민연금 예산을 전용(轉用)하겠다는 속내를 시인한 것이다.
국민들이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유는 예산 부족을 말하면서도 꾸준히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과세 즉 법인세와 부유세는 줄여왔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고용을 북돋기 위함이라고 강변하지만 이것 역시 경제정책에 떠도는 또 하나의 유령이다. 어떠한 경제 이론도 법인세 인하가 고용을 늘린다는, 모두가 납득하는 입증을 내보이지 못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지지자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유령을 앞세워 자신들의 신념을 거짓 이론으로 포장해 그에 동의하지 않는 다수의 국민들에게 수용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극우 바리케이드를 인질 삼아서. 극우를 막아준 대가로 국민들로부터 백지 위임장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는 듯하다.
급기야 프랑스 정부는 국회(하원) 표결 절차마저도 건너뛰었다. 프랑스 정부는 이 또한 헌법(49조3항)이 보장하는 민주주의 절차라고 항변하지만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는 바로 여기에 있다. 법 기술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법의 음지와 양지를 교묘히 이용해 민심에 반하는 것들을 합리화한다.
이는 프랑스뿐 아닌 많은 다수의 '제도적' 민주주의 국가, '법치' 민주주의 국가들이 당면하고 있는 보편적 민주주의의 위기다. 프랑스 국민들은 앞으로 4년을 더 이 권위주의와 싸워야 한다. 그들에게 행운을 빈다. 본 샹스(Bonne ch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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