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장군처럼 돌아온 트럼프 "내 유일한 범죄는 미국 지킨 것뿐"
"우리나라에서 여태껏 본 적 없는 엄청난 규모의 선거 개입입니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형사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기소 절차를 마치고 플로리다 마러라고 자택에서 연설하며 이같이 말했다. 흡사 개선 장군처럼 돌아와 자신이 정치적 박해를 받고 있단 점을 강조하며 지지자를 결집하는 모습이었다. 극심한 분열을 맞은 미국 정치권의 혼란은 점점 커지는 양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기소인부(認否)절차를 마치고 마러라고 자택으로 돌아와 오후 8시 15분쯤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지자들은 천천히 들어서는 트럼프를 향해 "USA"를 외치며 사진을 찍고 환호를 보냈다.
연단에 올라선 트럼프는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다"고 운을 띄운 후, "내가 저지른 유일한 범죄는 우리나라를 파괴하려는 자들로부터 두려움 없이 우리나라를 지킨 것뿐"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수사가 "본 적 없는 엄청난 선거 개입"이라며 기소를 결정한 앨빈 브래그 맨해튼지검장을 두고 "급진 좌파"라고 비난했다.
이번 기소가 정치적 박해라는 기존의 입장을 재차 강조한 트럼프는 "미국은 지금 엉망진창"이라며 조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와 경제 정책 등을 낱낱이 비판했다. "중국과 러시아, 이란, 북한이 위협적으로 뭉쳤는데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면서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의 주장은 기존과 비슷했다"며 "트럼프 대선캠프는 아마도 이 연설을 '대선 광고 타임'이라 생각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2024년 대선에서 바이든과 트럼프가 다시 맞대결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백악관은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트럼프 기소와 관련된 질문이 계속 나오자 "진행 중인 사건이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또 "이 일은 바이든 대통령의 (관심의) 초점이 되는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날 백악관에서 인공지능(AI) 관련 회의를 주재한 바이든 대통령 역시 회의장에서 기자들에게 관련 질문을 받았지만 답하지 않았다. 바이든은 지난달 30일 트럼프에 대한 기소 결정이 난 직후부터 "언급할 게 없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가 이번 기소의 중심에 바이든이 있다고 공격하는 상황에서 이에 휘말리는 일을 최대한 피하려는 모습이다.
공화당 "법을 무기화" vs 민주당 "정당한 절차" 분열 가중
사상 초유의 전직 대통령 기소 관련 절차가 진행된 이날, 미 정치권에선 공화당과 민주당이 크게 대립하며 격랑이 일었다.
중진 의원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이번 기소는 천박하며, 이 정치적 박해는 미국에 어두운 날이 될 것"이라고 토로했고, 마크 루비오 상원의원은 "되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에 비판적인 밋 롬니 상원의원 또한 "뉴욕 검찰이 정치적 이유로 혐의를 중범죄까지 확대했다"며 "검사의 과잉 행동은 사법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손상시켰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민주당은 '정당한 법적 절차'란 점을 강조하되 트럼프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삼가며 '정치적 박해'란 공화당 측 프레임에 얽히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척 슈머 원내대표는 이날 성명을 내고 "미국 사법 시스템의 절차에서 외부 영향이나 위협이 설 자리는 없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이밖에 "누구도 법 위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애덤 시프 하원의원)는 등의 입장들이 발표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 성추문 입막음을 위해 포르노 배우에게 돈을 건네고 회사 문서를 조작했단 의혹과 관련해 총 34건의 혐의로 기소됐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모두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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