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착각했다, 이승만은 이래저래 안된다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화장에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탄생 148주년 기념식에서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2023.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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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는 법적 근거가 4일 보도됐다. 법적 근거를 묻는 강병원 민주당 의원실의 질의에 대해 국가보훈처가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 제74조의4, 국가보훈기본법 제26조, 현충시설의 지정·관리 등에 관한 규정 제12조, 현충시설관리지침 제12조 등을 제시한 사실이 알려졌다(관련기사: 정부의 '이승만 띄우기'... 주호영 "건국의 대통령, 재평가해야" https://omn.kr/239i0).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전직대통령법)' 제5조의2는 "민간단체 등이 전직 대통령을 위한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경우에는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대통령령인 시행령에 따르면, 기념관 건립 지원은 보훈처가 아니라 행정안전부의 몫이다. 오는 6월 국가보훈부로 승격될 보훈처의 위와 같은 답변에 따르면, 이승만기념관 건립은 이 법과는 무관하다.
지난 3월 4일 개정된 국가유공자법 제74조의4 제1항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외의 자로서 현충시설을 건립하려는 자는 현충시설건립계획을 수립하여 국가보훈부장관의 승인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했다.
또 국가보훈기본법 제26조 제2항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희생·공헌자의 공훈과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전시관·조형물의 건립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공공기관 등의 주요 건축물 등에 희생·공헌자의 흉상 등 상징물을 설치하도록 권장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런 규정들을 근거로 기념관을 짓겠다는 것이 보훈처의 답변이다.
전직 대통령 아닌 독립운동가 이승만?
이승만은 1948년부터 12년간 대통령을 지냈다. 이런 인물을 위한 기념관을 지으면서 전직대통령법이 아니라 국가유공자법과 국가보훈기본법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승만이 전직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에 법적 근거를 두고 사업을 추진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1948년 이후의 이승만'이 아닌 '그 이전의 이승만'을 근거로 기념관을 짓겠다는 뜻이 된다.
1948년 이후의 이승만은 대통령이고, 그 이전의 이승만은 독립운동가다. 보훈처의 입장은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명분으로 사업을 하겠다는 의미가 된다.
이 점은 강병원 의원실의 질의 과정에서도 확인됐다. 강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전직 대통령 기념관 주무부처는 행정안전부"라며 "이해가 되지 않아 확인해보니 '대통령 이승만'이 아닌 '독립운동가 이승만'을 근거로 건립한다는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승만은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기 어려운 인물이다. 헌법 전문에 표기된 4·19라는 날짜가 그에 대해 '노!'라고 선언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헌법 서문 첫 줄은 이승만에 대한 대한민국의 사형선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는 시구로 유명한 김수영은 1960년 4월 26일에 쓴 시에서 이승만을 "지긋지긋한 그놈"으로 표현했다. "지긋지긋한 그놈"은 장기집권과 독재, 민간인 학살, 친일청산 저지에 더해 대규모 부정선거까지 자행했다. 그는 여기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국민 세금으로 결제했다. 국민들은 1960년 4·19 혁명으로 그를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렸다.
만약 윤 정부가 전직대통령법에 의거해 기념관 건립을 추진했다면, 이런 사실들이 중점적으로 거론됐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대통령 이승만'이 아닌 '독립운동가 이승만'을 띄우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그런데 이승만의 독립운동가 지위 역시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헌법 전문에는 4·19 외에도 이승만을 배척하는 날짜가 하나 더 있다. 위에 인용된 부분 중에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정부 초대 대통령뿐 아니라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임시대통령도 지냈다. 1919년부터 1925년까지 임시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그는 불성실한 자세 등으로 독립운동진영의 지탄을 한 몸에 받았다.
그 6년간 그가 상하이에 체류한 기간은 6개월밖에 된다. 그는 태평양 건너 미국에 주로 있었다.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에 머문 기간에도 직무에 전념하지 않았다. 툭하면 상하이 밖으로 관광을 떠나곤 했다.
그래서 임시정부는 탄핵 절차를 진행했다. 임시국회인 임시의정원은 1925년 3월 10일 이승만의 기반인 구미위원부를 폐지하고 18일 탄핵안을 통과시킨 뒤, 헌법재판소 격인 이승만심판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23일 탄핵 절차를 종료했다.
이승만심판위원회는 판결문에서 "이승만은 말로는 외교에 의탁하고, 직무지를 이탈한 지 어언 지금 5년에 원양일우에 격재하여 난국 수습과 대업 진행에 하등 성의를 다하지 않을 뿐 아니라"라고 말했다. 먼바다 한쪽에 머문 채 입으로만 독립운동을 하고 직무를 방기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독립운동과 '격조'했던 이승만의 처지를 '원양일우에 격재하여'라는 말로 표현했던 것이다.
또 "허황된 사실을 천조간포(擅造刊布) 하여 정부의 위신을 손상하고 민심은 분산시킴은 물론이어니와 정부의 행정을 저해하고 국고 수입을 방애(妨礙)하였고 의정원의 신성을 모독하고 공결을 부인하였으며 심지어 정부까지 부인한 바 사실이라"라고 선언했다. 독립운동을 돕기는커녕 허황된 사실을 날조·유포하면서 임시정부 행정과 국고 수입을 방해하고 의정원의 공식 결정까지 무시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 뒤 "이와 같이 국정을 방해하고 국헌을 부인하는 자를 하루라도 국가원수의 직에 둠은 대업의 진행을 기약하기 불능하고 국법의 신성을 보존키 어려울 뿐더러 순국제현의 명목(暝目)지 못할 바이오"라며 탄핵을 선포했다. 그의 죄목인 '국정 방해'는 다름아닌 독립운동 방해다. 심판위원회는 그런 이승만을 그냥 두면 순국선열들이 눈을 감지 못할 것이라며 "임시대통령 이승만을 면직함"이라고 땅땅땅 내리쳤다.
헌법 전문에 이승만이 안되는 이유 들어있다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의 법통과 정통성이 3·1운동과 임시정부에 있다고 선언했다. 3·1운동의 열기를 반영해 수립된 임시정부는 이승만을 독립운동 대업의 훼방자로 선포했다. 이는 임시정부를 계승하는 현행 헌법하에서도 이승만이 독립운동 훼방자로 간주됨을 뜻한다. 따라서 독립운동을 이유로 그의 기념관을 세워주는 것은 헌법 전문에 저촉될 소지가 농후하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대통령 직에서는 탄핵되지 않았다. 4·19 혁명 직후인 1960년 5월 29일 일요일 아침에 김포공항에서 하와이로 도주했기 때문에 그를 탄핵할 기회가 없었다. 반면, 대한민국 임시대통령 직에서는 명확히 탄핵을 당했다.
이는 '대통령 이승만'을 위한 기념관을 지어주는 것이 어렵다면 '독립운동가 이승만'을 위한 기념관을 지어주는 것은 더 어려움을 의미한다. 그의 독립운동에 대해 임시정부가 '이것은 독립운동이 아니다'라고 명확히 선포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직대통령법뿐 아니라 국가유공자법·국가보훈기본법을 동원하더라도 이승만기념관 건립이 불가함을 보여준다.
지금 한국 사회는 친일파를 단죄하고 민간인 학살자를 규탄하며 반민주 독재자를 배척하는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다. 친일청산을 방해하고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고 민주공화정 이념을 파괴함은 물론이고 국민 세금을 이용해 부정선거까지 자행한 이승만을 위해 기념관을 세우는 것은 이런 흐름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국가보훈처는 그런 사실을 감안해 대통령 이승만이 아닌 독립운동가 이승만을 근거로 기념관을 건립하려 하지만, 이승만은 독립운동 본부인 임시정부에서도 배척을 당했다.
헌법 전문의 선언으로 인해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높은 법적 지위를 갖고 있다. 그런 임시정부가 이승만에게 "나가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와 국가보훈처는 이승만을 도로 불러들이려 하고 있다. 당위성 측면에서 보나 시대 흐름으로 보나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이승만기념관 추진은 중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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