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데믹 한달]②美·유럽 초기 '파산 전이' 방역에 총력
편집자주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에서 시작돼 유럽 크레디스위스(CS)를 무너뜨리고 도이체방크까지 뒤흔든 글로벌 뱅크데믹(은행+팬데믹)이 발생한 지 한 달을 앞두고 있다. 세 은행은 마치 전염병이 퍼지듯 급작스러운 위기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놓였다는 공통 분모가 있지만, 위기의 근본 원인이나 책임에 있어서는 저마다 다른 면모를 보였다. 고금리 속 안전자산의 배신이 뱅크데믹의 근본적 원인으로 꼽히지만 내부통제 미흡, 비이성적 공포의 확산, 모바일 뱅킹을 통한 초고속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도 사태를 키웠다. 다만 실시간 뱅크런, 시장의 비이성적 공포 등 특징적인 현상이 공통적으로 발생하면서 급속도로 은행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전염병이 번지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인상을 남겼다. 각국의 신속한 대응 속에 현재 위기의 전이는 멈춘 듯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 ‘월가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4일(현지시간) 공개된 연례 주주서한을 통해 최근 은행권 위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향후 몇 년간 경제 전반에 여파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다.
뱅크데믹을 맞은 각국 정부는 사태의 진단부터 대응까지 이전 위기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움직였다. 미국은 발빠른 상황 파악과 대처로 은행권 내 위기 확산을 일단락했고 민간 자본을 활용해 ‘대마불사(大馬不死 )’ 논란의 여지도 차단했다. 미국을 거쳐 뱅크데믹이 훑고 간 스위스·독일 등 유럽에서도 각자만의 방식으로 위기의 전이를 막는데 성공했다. 이는 과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다른 기업의 연쇄 파산으로 번질 가능성을 미 정부와 금융당국이 예측하지 못했던 것과 대비된다.
美, 신속한 대책과 민간의 지원
뱅크데믹에 대한 각국의 대응은 매우 신속하게 이뤄졌고 연쇄 위기를 막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미 정부는 자산규모 1090억달러(약 277조원) 미국 16위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의 핵심이 SVB만의 문제인 것인지 광범위한 은행 시스템의 문제인지 초기에 신속하게 인지했고, 조기 진압에 총력전을 펼쳤다. 15년 전 리먼 파산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라는 부실 자산에서 비롯됐되면, 이번 사태는 고금리에 취약한 자산구조가 원인이기에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점에 집중했다.
미 당국은 예금 전액 보증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사태 발생 사흘 만에 신속하게 발표했다. 고금리로 인한 차입 리스크,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기 침체 불안 속에서 터져 나온 악재에 따른 공포심 확산 등이 금융 시스템 전체 위기로 비화할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특히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SVB 사태가 터지자, 미 연방준비제도(Fed), 재무부 등과 주말 사이 긴급회동을 가졌다. 이를 통해 예금액 전체를 보존하고 은행권에 추가 유동성을 공급하는 과감한 대책을 내놨고,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확산을 조기 진압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리먼의 파산 신청 등 금융 불안 정국에서, 가나 대통령과의 기자회견 등 기존 일정을 소화하는 등 여유있는 모습을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공적 자금 지원 없이 대형 민간은행을 압박해 대마불사를 비판하는 여론에서 비껴났다는 점도 돋보였다. 미 정부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을 통해 대형은행들이 SVB를 지원하는 것에 동의하도록 설득했다. 이를 통해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총 1280억달러(약167조원) 규모 SVB의 예금 보호를 위한 비용 230억달러를 이들 은행의 예금 보험 수수료를 올리는 식으로 메웠다. SVB는 결국 퍼스트 시티즌스 은행에 인수되는 방식으로 정리됐다.
반면, 2008년 금융위기에는 이와 다른 대응이 이뤄졌다. 부시 행정부는 리먼 회생을 위해 공적 자금 투입이 불가하다는 방침을 천명했고, 같은 해 9월14일 리먼은 곧바로 뉴욕 남부지법 파산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정권 교체기를 앞둔 당시 구권력과 신권력 사이에는 구제금융 여부를 두고 소모적 논쟁을 이어가면서 혼란만 키웠다.
이후 2009년 출범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뒤늦게 금융위기를 진화하기 위해 막대한 구제금융을 쏟아냈다. 이를 통해 금융 시스템의 연쇄 붕괴는 뒤늦게 진압됐다. 하지만 도덕적 해이 탓에 위기에 빠져도 대마불사라는 이유로 혈세가 투입됐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었고, 이들의 분노는 정부를 향했다. 사태의 원흉인 월가 은행들은 정부에 의해 구제됐지만, 평범한 금융 소비자들은 연쇄 위기로 일자리와 집, 저축한 돈을 모두 잃는 사례가 속출했다.
유럽도 조기 진압으로 전이 방역
유럽으로 번진 크레디스위스(CS)의 유동성 위기는 경쟁 은행이었던 UBS와의 합병을 통해 넘겼다. 스위스 정부의 중재로 스위스 1위 UBS가 30억스위스프랑에 CS를 인수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시가총액 80억달러 규모의 CS의 파산이 세계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파를 차단하고 스위스 은행시스템 안정성에 대한 신뢰를 되찾기 위해 당국은 아시아 증시가 열리기 전 단 이틀 만에 초고속으로 합병을 성사시켰다. 이 과정에서 주주 승인 절차도 생략하고 양사 통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동성이나 재무 보증도 제공키로 하는 등 전례없는 지원책도 불사했다.
스위스에 이어 독일로 퍼진 위기설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진압에 나섰다. 도이체방크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최대치로 치솟자 숄츠 총리는 "도이체방크는 CS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이례적으로 민간은행을 직접 비호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역시 "유로존 은행들은 자본과 유동성이 튼튼하고 회복력이 있다"고 지원사격에 나섰다. 도이체방크가 재무적으로 건전하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사태는 조기 진압됐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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