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우리에게는 죄가 없잖아요

전은경 2023. 4. 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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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를 키워서인지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눈이 간다.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한 연대활동을 하면서 나를 제일 가슴 아프게 하는 것도 바로 미얀마의 아이들이다.

난민이라는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이들은 사실상 '코마'에 빠져 깨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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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책장] <있지만 없는 아이들>

[전은경]

 <있지만 없는 아이들> 책 표지.
ⓒ 창비
두 아이를 키워서인지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눈이 간다.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한 연대활동을 하면서 나를 제일 가슴 아프게 하는 것도 바로 미얀마의 아이들이다. 가족들을 지키겠다며 제 몸보다 큰 총을 맨 채 휘청거리며 산속을 걷는 소년, 군부의 무차별적 공습을 피해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 무엇보다 눈에 밟힌다.

최근에 본 난민아동 관련 다큐멘터리와 보고서 역시 가슴에 남는다. 다큐멘터리 <체념증후군(Resignation Syndrome)의 기록>에는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씩 잠을 자는 난민 아동들이 나온다. 난민이라는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이들은 사실상 '코마'에 빠져 깨어나지 못한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시리아 난민 450명을 인터뷰한 보고서 <보이지 않는 상처(invisible wounds)>에는 "천국에 가서 따뜻하게 먹고 놀 수 있도록, 죽고 싶다"는 난민 아동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주난민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읽게 된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 미등록 이주아동의 이야기다. 미등록-이주-아동. 작가의 말처럼 사람 앞에 붙은 미등록이란 말은 서늘하고, 이주란 말은 고단하게 들린다. 이 책에는 부모에게 체류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법을 어긴 존재'가 되어버린 아이들의 삶이 담겨있다.

아이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배제와 좌절·불안, 그나마 '공부할 권리'는 있지만 '살아갈 자격'은 없는 모순된 현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과 인종주의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쓰게 만든다. 세상의 환대를 받으면서 차별받지 않고 성장해야 할 아이들이 "너희 나라로 꺼져, 불법체류자가"라는 말을 듣는다. 존재가 '불법'인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카림은 "태어난 건 죄가 없는데 왜 차별당하고 고통받고 꿈도 못 이루고 살아야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돼요"라고 말한다. 카림을 비롯한 다섯 명의 이야기는 한국 미등록 이주아동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집에 아들을 혼자 놔둔 채 문을 잠그고 공장으로 출근한 뒤 창문 넘어 아이를 훔쳐보며 일했다는 이주여성 인화의 이야기, 이주 난민 아동들 곁에서 이들의 작은 목소리를 크게 듣기 위해 애쓰는 이주인권 활동가들의 이야기는 큰 울림을 준다.

무엇보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빚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작가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이주아동의 삶에 가닿기 위해, 신뢰할 만한 어른이 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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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 전은경 정책기획국 활동가.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3년 4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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