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형사재판 피고인석에서 무죄 주장…“엄청난 선거 개입”

전웅빈 2023. 4. 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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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헌정사상 처음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형사법원 피고인석에 앉아 기소인부 절차를 진행했다. 그는 포르노 배우와의 성추문 의혹을 입막음하려고 돈을 건네면서 기업 문서를 조작하는 등 모두 34건의 중범죄 혐의로 기소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관련 내용을 전면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지문을 찍고 이름을 대는 신원 확인 절차를 마친 뒤 곧바로 재판정으로 이동, 변호인들과 함께 피고인석에 앉았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이 보도했다. 검찰은 범인 식별용 얼굴 사진인 머그샷 촬영은 취소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후 50여 분간 진행된 기소인부 절차 때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혐의를 부인하는 발언 외에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검찰 측이 혐의 내용을 하나씩 읽으며 유죄를 주장할 때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외신은 전했다. 재판을 맡은 후안 머천 판사가 피고인의 권리를 읽어주며 “이해했느냐”고 질문했을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은 “네”라고만 짧게 답했다.

검찰은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이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성관계를 폭로하지 않는 대가로 13만 달러를 주면서 기업 문서를 조작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마이클 코언 당시 트럼프 측 변호인이 대니얼스 등에 돈을 지급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후 월별로 지불금을 코언에게 상환했는데, 이는 지불금 위장이자 세금 기록 위장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당시 선거 무결성을 훼손하기 위해 사업 기록을 위조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공소사실을 공개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과 불륜 관계였던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모델 캐런 맥두걸, 자신에게 혼외자가 있다고 주장한 트럼프 타워 도어맨에게 각각 15만 달러와 3만 달러씩을 주면서 입막음을 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친구인 데이비드 페커는 자신이 소유한 잡지 AMI를 통해 혼외자에 관한 이야기를 독점 보도할 수 있는 권리를 도어맨으로부터 사들였다. AMI는 트럼프월드의 청소부와 트럼프 사이에 자식이 있다는 도어맨 주장이 거짓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계약을 해지하려 했지만, 코언은 페커에게 ‘대선 때까지는 도어맨을 풀어주면 안 된다’고 지시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검찰은 페커를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과 불륜 관계였던 맥두걸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돈을 지급하고 입막음을 했다고 지적했다.

앨빈 브래그 맨해튼 지방검찰청장은 기소인부절차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열고 “트럼프는 2016년 대선 기간 불리한 정보를 유권자들에게 숨기는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 이를 감추기 위해 기업 문건을 반복적으로 위조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다만 코언을 통해 대니얼스에게 지급한 13만 달러와 관련한 문건 위조만 범죄 사실로 다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업 문서 위조와 관련된 34건의 혐의로 기소됐는데, 검찰은 이들 모두를 E급 중범죄로 의율했다. 이는 중범죄 중 가장 낮은 등급이지만 최대 징역 4년형에 처할 수 있다. 뉴욕주에서는 기업문서 조작 행위가 경범죄에 해당하지만 다른 범죄를 저지르거나, 이를 위장하기 위한 행위일 때는 중범죄로 기소할 수 있다.

브래그 지검장은 “불법적인 수단으로 선거 후보를 띄우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은 뉴욕주 선거법을 위반한 범죄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검찰은 트럼프 전 대통령 혐의에 선거법 위반 등 내용은 적시하지 않았다.

검찰 측은 이날 혐의 공개에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올린 ‘죽음과 파괴’ 등의 메시지를 머천 판사에게 제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검찰을 위협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기 위한 것이다. 트럼프 측은 항의했지만, 머천 판사는 “사회적 혼란이나 폭력을 일으킬만한 발언을 자제하라”고 촉구했다. 머천 판사는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사건과 관련한 함구령은 내리지 않았다.

머천 판사는 오는 12월 4일 다음 재판을 열어 양측 의견을 듣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재판 개시 시점을 내년 1월로 잡아달라고 요구했지만, 트럼프 측은 내년 봄 이후를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플로리다주 자택 마러라고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며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혀 생각지 못했다. 내가 저지른 유일한 범죄는 우리나라를 파괴하려는 자들로부터 용감하게 지켜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기소에 대해 ‘여태 본적이 없는 규모의 엄청난 선거 개입’이라고 주장했다.

뉴욕=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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