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드라마 금지法 재검토"…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채택

장희준 2023. 4. 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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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불참' 5년 만에 韓 공동제안국 복귀
결의안 21년 연속 채택…이번에도 표결 안해
남측 억류자 6명…국적·이름 빠졌다는 한계

유엔 인권이사회가 김정은 정권의 인권 유린을 규탄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결의안 공동제안국에서 빠졌던 한국 정부가 5년 만에 초안 협의에 다시 참여한 점은 긍정적이라는 평가지만, 북한 당국에 의한 남측 피해자에 대한 내용이 모호하고 또 다시 표결 없이 채택된 결의안이라는 점은 개선이 필요한 과제로 남았다.

5일 아시아경제가 인권조사기록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을 통해 북한인권결의안 전문을 입수·분석한 결과, 결의안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따른 정보권 침해를 새롭게 명시했다. 반면 우리 국군포로에 대한 북한의 인권침해를 여전히 '의혹과 우려' 수준으로 언급하고 북한에 붙잡힌 남측 억류자 6명에 대해선 국적이나 이름조차 표기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조직적 인권침해"…반동사상문화배격법 규탄 추가
유엔 인권이사회는 4일(현지시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사진제공=유엔]

유엔 인권이사회는 4일(현지시간) 제52차 회기 56번째 회의에서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안은 북한에서 벌어지는 조직적인 인권 침해를 규탄하고 있다. 특히 '정보권 침해'를 명확히 지적하면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포함한 법과 관행을 재검토하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한국을 비롯한 외부에서 제작된 콘텐츠 일체를 반동사상문화로 규정해 엄격히 금지한다는 내용으로 2020년 제정돼 작년 8월 개정을 거쳤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대북전단금지법도 정보권을 침해하는 만큼 비판에서 자유로울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쟁포로와 그 후손들이 겪는 인권침해 주장을 명시한 기존 조항에는 '건강이나 억류 상태에 대한 정보 없이 북한에 억류된 타 회원국 국민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는 문구가 새로 들어갔다. 또 외국인에 대한 고문, 즉결 처형, 자의적 구금 등을 우려했던 조항에는 '유족과 관계 기관에 생사·소재를 포함한 모든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고 촉구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북한으로 송환되는 북한 주민들이 강제실종, 자의적 처형, 고문, 부당한 대우 등을 포함한 그 어떤 인권 침해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문구도 새로 포함됐는데, 이는 2019년 탈북어민 강제 북송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또 북한으로 추방되는 탈북민에 대한 강제실종과 자의적 처형, 고문 등 인권침해를 중단하고 이들의 상태와 대우에 대한 정보 제공을 촉구하는 내용도 생겼는데, 북한이 코로나19 이후 봉쇄했던 국경을 개방 경우 중국에 구금된 탈북민이 대거 강제송환될 것을 우려한 지적으로 보인다. '강제송환 금지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지만, 그 대상으로 '중국'을 지목하진 않았다.

결의안은 또 북한이 주민들의 복지와 식량난 해결을 위해 써야 할 자원을 핵·미사일 개발에 전용하는 일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밖에도 ▲구금시설 등에서의 인권침해와 강제노동 ▲사회적 계급 등에 따른 차별과 납치·강제실종 ▲광범위한 사생활 감시와 연좌제·공개처형 등 기존 결의안에서 전면적 해결을 촉구했던 내용이 그대로 담겼다.

南 국군포로·억류자 피해 '불명확'…이름도 없어

김정욱 선교사가 2014년 2월 평양에서 기자회견 형식을 통해 석방을 호소하는 장면. 김 선교사는 2013년 10월 북중 접경 지역에서 국가전복음모죄로 체포된 뒤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파악됐지만, 10년간 자세한 근황이나 생사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한인권결의안은 2003년 유엔 인권위원회(인권이사회 전신)에서 처음 채택된 뒤 올해로 21년 연속 채택됐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대북 유화 기조를 위해 2019년부터 공동제안국에서 빠졌지만, 이번 결의안에 한국 정부가 복귀한 건 유의미한 성과다. 다만, 2016년부터 8년 연속으로 표결 없이 '컨센서스(합의)'로만 채택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이번 결의안 채택 직후 외교부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57개국이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 북한인권결의안이 작년에 이어 컨센서스로 채택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컨센서스는 어느 나라도 표결을 요청하지 않았을 때 결의 방식으로, 모두 찬성표를 던지는 만장일치와 다르다.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면, 실제적 이행에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의안에서 우리 측 피해자에 대한 내용과 인권 유린 실태를 보다 명확히 담고, 해마다 반복되는 문구에 발전이 있으려면 표결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례로 결의안은 국군포로 등에 대한 인권침해를 2021년부터 '의혹' 내지 '우려'라고 표기하고 있다. 강제노동과 고문, 구금, 강제실종, 처형 등 구체적인 규탄이 담겨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특히 김국기 선교사 등 남한 억류자 6명 등을 '타 회원국 국민'으로 언급했을 뿐 국적이나 이름조차 담지 않았다. 2020년 6월 아웅산 수치의 구금을 규탄할 때 그의 이름을 직접 언급한 것과 대비된다. 2017년 로힝야족 탄압을 취재하다 미얀마에 체포된 로이터 기자들도 결의안에서 2년 연속 구체적인 석방 요구를 한 결과, 2019년 5월 실제로 석방이 이행됐다.

12월 총회 상정…"정부, '표현 강화' 적극 노력해야"

유엔은 매년 상반기엔 스위스 제네바의 인권이사회, 하반기엔 미국 뉴욕에 있는 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해 왔다. 통상적인 전례에 비춰볼 때 차기 결의안 내용은 앞선 결의안을 보완하는 작업을 거쳐 만들어진다. 올해 12월 유엔총회에서 채택될 북한인권결의안의 표현이 강화되고 발전되려면 회원국을 상대로 한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요구된다.

북한에 억류 중인 김정욱 선교사의 형 김정삼씨와 대북 인권단체 5곳은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북한인권결의안 내 국군포로와 억류자에 대한 표현을 강화해달라'고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 바 있다. 김국기·최춘길·김정욱·김원호·고현철 등 우리 억류자의 국적과 이름을 분명하게 담고, 이들에 대한 인권침해 우려를 구체적으로 지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법률분석관은 "공동제안국으로 복귀한 건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2014년 당시 오준 주유엔대사의 명연설처럼 '북한 주민이 그저 아무나(anybodies)가 아니라면' 정부는 사전에 인권단체 의견을 수렴하고 결의안 반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EU와 공동으로 주요 제안국이 되거나 컨센서스 대신 표결 채택을 추진할 필요도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북한은 결의안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정치적 음모를 담은 문건'이라고 반발했다. 한대성 주제네바 북한대표부 대사는 "조국의 위신을 깎아내리고 우리 사회를 전복하려는 비현실적 꿈을 실현하려는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놨다. 또 초안 작성에 관여한 서방 국가들을 겨냥해선 "침략과 학살, 인종차별 등 온갖 인권침해를 자행한 나라들"이라고 주장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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