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대체로 군소리 없이 따르는 존재
[박균호 기자]
14권의 책을 낸 나는 여러 편집자를 거쳤다. 사소한 불평을 자주 늘어놓고 타인의 지적에 유독 민감한 내가 언제나 굽신거리며 시키는 대로 군소리 없이 따르는 존재가 있으니 그가 바로 편집자다.
내가 한 일을 지적하며 다시 하라고 시키면 내 잘못을 제쳐두고 우선 화부터 낼 준비를 하지만, 편집자가 짧은 머리말을 네 번째 다시 쓰라고 해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편집자가 무슨 일을 시키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나에게 편집자는 작가 위의 작가다.
나에게 편집자는 글쓰기 선생님이며 어머니 같은 존재다. 그만큼 작가는 편집자로부터 훈육(?)도 받지만 보살핌도 받기 마련이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많은 저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라고 믿는다.
어머니라는 단어가 여러 가지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편집자는 작가에게 다양한 역할을 선사하는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존재다. 굳이 한 마디로 규정하자면 '영원한 내 편'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출판사가 10만개에 육박한다던데 의외로 이 바닥이 좁아서 두어 다리만 거치면 '모두 다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고우리 편집자가 쓴 <편집자의 사생활>을 만나기 불과 며칠 전까지 나는 모 출판사에 나온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을 아껴가면서 읽었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의 편집자가 고우리 선생이었다.
▲ <편집자의 사생활> 표지 |
ⓒ 미디어샘 |
그러나 <편집자의 사생활>을 읽다 보니 편집자가 '읽을 줄만 아는 것'은 아니라는 확신하게 된다. 고우리 선생의 글을 읽다 보면 주변 배경에 대한 묘사가 세밀하며 생동감이 넘치는 에밀 졸라의 글이 떠오른다.
편집자라고 출판에 대한 거시적인 문제를 고상하게 풀어나가지 않고 마치 드라마 대본처럼 구어체가 넘치지만, 맥락이 잘 이어지고 독자들이 마치 글쓴이와 함께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호기심을 가질 만한 출판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아울러 양념처럼 들어 있는 '업무 일지' 코너는 내가 너무 재미나게 읽었던 '열린책들' 홍지웅 사장이 쓴 출판 이야기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의 '좀 더 재미난 현실판'으로 읽힌다.
그런데 웬걸? 퇴사하고 나서부터 SNS를 무지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열심히 하게 '됐다'. 무슨 전략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심심했다.
첫 번째 회사에서는 물론이고 두 번째 회사에서고 세 번째 회사에서고 연봉'협상'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연봉이란 언제나 '정해지는' 것이지 '협상'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올해 당신 연봉은 얼마일세. 아, 네, 감사합니다. 넙죽!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생각한 유일한 아쉬움. 나는 왜 고우리 편집자에게 출간 제의를 받지 못했는가! 새삼 장 그리니에의 <섬>에 헌정한 알베르 카뮈의 추천사가 생각난다. 고우리라는 유능하고 눈 밝은 편집자와 함께 작업했고 작업을 할 이름 모를 작가들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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