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직폭]②방관자도 공범… 피해자 두번 울리는 사장들

김대현 2023. 4. 5. 07:5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한 이후 회사가 취한 각 조치를 보면, '근로자에 대한 배려'를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사업주인 피고인의 근로자에 대한 낮은 인식 수준은 언제든 또 다른 가해자를 봐주고, 또 다른 다수의 피해자를 내버려 둘 것이다."

2021년 1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당시 부장판사 양환승)은 괴롭힘 피해자의 육아휴직 복직을 막고 무기한 무급휴직 처분을 한 건축컨설팅 업체 C 대표에게 "가해자들을 징계해달라는 피해자 요청을 거절하며 피고인이 댄 이유들은 어느 하나 합당하다고 할 수 없다. 사용자 내지 사업주에게 기대할 수 있는 조치로 충분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며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한 이후 회사가 취한 각 조치를 보면, '근로자에 대한 배려'를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사업주인 피고인의 근로자에 대한 낮은 인식 수준은 언제든 또 다른 가해자를 봐주고, 또 다른 다수의 피해자를 내버려 둘 것이다."

2021년 4월 청주지법 충주지원 형사1단독(당시 부장판사 임창현) 재판부가 구내식당 위탁운영 업체 A 대표에게 1심 유죄를 선고하며 강조한 말이다. A 대표는 '상사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피해자에게 오히려 불이익을 줬다. 본래 살던 집에서 훨신 먼 곳으로 근무지를 바꿨다. 피해자는 대중교통으로 정시 출근이 불가능했고, 가족을 병간호하는 상황에서 결국 기숙사에 들어가야 했다.

검찰은 벌금 200만원의 선고를 요청했는데,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더 무거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근로자의 위치에서 노동의 의미를 깨우치라"며 120시간 사회봉사를 할 것도 명령했다. 이 사건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근로기준법상 사업주(사용자) 처벌조항에 따라 징역형이 확정된 첫 사례가 됐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엔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가 있다. 근로기준법에 가해자를 직접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은 없다. 최근 법원이 "피고인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피해자의 극단적 선택이라는 결과를 불러왔다"며 징역 8개월을 확정한 김대현 전 부장검사(55·사법연수원 27기)도 후배 검사에 대한 '형법상 폭행죄'로 처벌됐다.

다만 근로기준법은 방관자, 특히 사업주에 대한 처벌 및 제재 규정을 담고 있다. 괴롭힘 행위를 신고한 근로자가 신고를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받은 경우 사업주가 3년 이하 징역형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했다. 사업주가 사건에 대한 조사 및 피해자 보호, 가해자 징계 등 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땐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나간다.

사업주에겐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에 대한 보호의무와 안전배려할 의무가 있는 만큼, 가해자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 전 사업주에게 예방 및 사후관리 책임을 따져야 한다는 게 법의 취지다.

직장 내 괴롭힘 사업주 처벌조항인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이 적용되고 최근 2년간 확정된 4개의 1심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 모두 사업주의 책임을 인정해 유죄를 선고했다.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3건, 벌금형은 1건이었다.

박윤진 노무법인 행복한일연구소 공인노무사는 "기본적으로 괴롭힘 행위는 폭행이나 모욕, 성희롱 등 그 유형이 다양하다. 가해자 처벌을 위해 일괄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으로 묶어버리면, (조사 단계에서) 괴롭힘 행위인지 여부를 더 보수적으로, 협소하게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며 "징계나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 방법으로 사업주로 하여금 사내에서 자율적으로 괴롭힘 문제를 해결하도록 이끄는 방법이 훨씬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A 대표 사건에서도 임 부장판사는 "대법원 판례로 거듭 확인되는 것처럼,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생명과 신체,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할 보호의무 및 안전배려의무가 있다. 최근의 노동 환경에 비춰 볼 때 무형적, 정신적 위험으로부터의 보호, 안전배려까지 이 의무에 포함돼 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간 법원은 사업주가 괴롭힘 피해자에게 부당한 조치를 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 ▲문제제기 당시와 근접한 시기에 불리한 조치를 했는지 ▲조치의 경위·과정 ▲사업주가 내세운 사유가 문제제기 이전부터 존재했는지 ▲피해자가 입은 불이익 정도 ▲종전 관행이나 동종 사안과 비교해 이례적이거나 차별적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왔다.

이에 따라 지난해 9월 대구지법 안동지원 형사1단독 박민규 부장판사는 괴롭힘 발생 사실이 신고된지 한달 만에 피해자를 해고해 버린 청소년수련원 B 원장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2021년 1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당시 부장판사 양환승)은 괴롭힘 피해자의 육아휴직 복직을 막고 무기한 무급휴직 처분을 한 건축컨설팅 업체 C 대표에게 "가해자들을 징계해달라는 피해자 요청을 거절하며 피고인이 댄 이유들은 어느 하나 합당하다고 할 수 없다. 사용자 내지 사업주에게 기대할 수 있는 조치로 충분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며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노동 사건 전문 임동채 법무법인 아이앤에스 파트너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피해자나 신고자에게 사용자가 불이익을 줘 처벌되는 사례는 향후에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따라서 사용자는 피해자 또는 신고자를 보호하는 조치를 철저히 해서 직장 내 괴롭힘이 근절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검찰청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은 중대산업재해로 보기 힘들다"면서도 "괴롭힘이 업무 수행 방식으로 이뤄진 경우, 또는 직무 스트레스 등이 과도해 정상적인 인식 능력 등이 뚜렷하게 낮아진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이 발생한 경우는 중대재해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대한항공 직원연대 회원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의 퇴진과 갑질근절을 촉구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