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M 양보에 번뜩…피싱범 잡은 ‘암투병 휴직’ 경찰관

은행 ATM기.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뉴시스 자료사진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휴직 중인 경찰관이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수거책을 잡았다.

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충북 청주상당경찰서 소속인 정세원 순경은 지난달 30일 전북 익산시 한 은행에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이용하러 갔다가 수상한 남성을 목격했다. ATM 한 대가 고장 나 나머지 한 대에 고객들이 줄을 서 있는 상황에서 정 순경 앞에 있던 30대 후반의 남성이 자신의 차례가 왔는데도 뒤에 있던 정 순경에게 순서를 양보한 것이었다.

“입금이 오래 걸리니 먼저 하시라”는 남성의 말을 듣자마자 정 순경은 범죄를 직감했다. 보이스피싱을 의심한 정 순경은 “어디에, 얼마나 입금하시는 거냐” “텔레그램으로 지시받고 일하시는 거냐”며 남성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남성은 쭈뼛거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정 순경은 당황해하는 남성에게 자신이 경찰관임을 밝힌 뒤 그의 가방 속을 확인해봤다.

남성의 가방에는 현금 1700만원이 세 개의 봉투에 나뉘어 담겨 있었다. 정 순경의 계속된 질문에 남성은 계속 답변을 피하면서 “나는 잘 모르니 담당 직원이랑 통화해보라”며 정 순경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통화 연결이 된 직원은 “금 거래를 하는 거라 이런저런 돈을 입금하는 것”이라고 얼버무리더니 ‘어느 거래소에서 근무하냐’고 묻자 “나중에 전화하겠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청주상당경찰서 소속 정세원 순경. 연합뉴스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확신이 든 정 순경은 즉시 112에 신고했다. 그는 남성이 도망가지 못하게 계속 추궁하며 붙잡고 있다가 도착한 경찰관들에게 남성을 인계했다. 정 순경의 ‘촉’은 정확했다. 익산경찰서는 이 남성으로부터 1700만원을 회수해 피해자에게 돌려준 뒤 사건을 수사 중이다.

3년차 경찰관인 정 순경은 지난해 10월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휴직한 뒤 고향인 익산에 머물며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 가슴에 케모포트(약물 투여를 위한 기구)를 삽입한 상태여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거나 뛰기 힘든 상태지만, 의심스러운 상황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주저 없이 나서 범죄피해를 막았다.

정 순경은 “1년간 지능범죄수사팀에서 근무했던 덕분에 ‘먼저 하시라’는 말 한마디에 느낌이 왔다”며 “마땅히 경찰관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일 뿐이다. 송금 직전 검거에 성공해 피해자가 돈을 돌려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매체에 전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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