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조, 여섯 아들 모두 전사(戰死)?…"진실=사망기록 조작" (그럴싸)[전일야화]

김현숙 기자 2023. 4. 5.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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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김현숙 인턴기자) '듣고 보니 그럴싸' 김병조의 희대 사기극이 밝혀졌다. 

JTBC 예능 프로그램 '듣고 보니 그럴싸' 3회에서는 충정 아파트와 얽힌 희대의 사기극을 라디오 드라마로 재구성했다. 

1962년 5월 공사 중인 호텔 정문 앞에서 남대문 경찰서 노순복과 그의 후배 김종수 형사가 파견 근무를 서고 있었다. 두 사내에게 코리아 호텔 사장인 김병조가 다가가 인사를 나눴다. 

김병조는 자신에게 일자리를 부탁하는 사람들에게 "제가 어떻게 우리 동향 분들을 외면하겠나. 일자리도 찾아드리고 이 호텔에서 벌어들이는 달러도 굶주린 국민들에게 모두 환원하겠다. 김병조 제 이름 석 자를 걸고 약속드린다"고 선언했다. 

장항준 감독은 김병조에 대해 "어찌 보면 우리나라 호렐리어 1세대다. 하지만 실질적 주인공은 따로 있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노순복 형사는 아내에게 방 빼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김병조의 찐친이라고 하는 황인봉을 만나 김병조에 대한 사연을 듣게 되었다. 북한 함경도 정평 출신이라고 밝혀진 김병조는 아내와 사별 후 홀로 6형제를 키웠다고. 

황인봉은 "김병조 사장의 여섯 아들이 모두 자원입대를 신청했다. 거기서 참한 여자를 만나 재혼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6.25로 인해 김병조는 제주도로 향했고, 조만한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던 김병조에게서 의문의 편지가 날아왔다. 

1951년 제주도 이발소에서 도착한 우편물을 확인한 김병조는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세 아들을 잃은 전사 통지서였던 것. 1952년 또다시 전사 통지서가 날라왔고, 결국 6형제 모두 전사했다고 전했다. 

황인봉은 노순복 형사에게 "김병조가 아들을 국가에 바친거다라는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하더라. 그 마음을 나라님이 안 알아주면 누가 알아주냐"라며 이승만 대통령을 언급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9년 6월 6일 현충일날 경복궁 경회루에서 유가족을 위한 다과회를 베풀었다. 장항준 감독은 "두 달 후에 이승만 대통령이 다시 김병조를 서울로 부른다"고 말했고, 이승만 대통령은 김병조를 내국인 최초 건국공로훈장을 수여했다. 

그날 이후, 김병조 주변에는 이 부부를 찾기 위한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고, 이들에게 돈 봉투가 넘쳐났다. 1961년 4월 18일 이후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났고 박정희 국자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등장했다. 

국가에서 김병조에게 서울 한복판에 있는 최신 건물을 무상으로 건넸다. 김종수 형사는 선배인 노순복 형사에게 김병조 사장에 대한 뒷말을 듣게 됐다. 그 말에 노 형사의 머릿속에 의심의 싹을 피우기 시작했다. 

노순복 형사는 계속해서 정평 향우회 사무실을 찾아 정평 향우회장에게서 "그 양반 본래 이름이 병조가 아니고 병좌다. 장충동 박진철을 찾아가 봐"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장충동 박진철은 다름 아닌 일정 때 함경도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순사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악질 중의 악질이라고.

박진철 아내는 김병좌에 대해 남편이 데리고 다니던 정보원이였다는 사실을 듣게 된 김종수 형사는 김병조가 친일 경찰의 밀정이였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김병좌를 알고 있다는 전 씨를 찾으러 간 두 형사는 김병조가 자식들을 버리고 사라졌다는 충격적인 증언을 들었다. 

심지어 아들 6형제를 둔 것이 아니고, 4남매 집안에 병철이까지 3남 1녀라고. 하지만 김병조의 별명은 반공 투사, 호국의 영웅, 호국의 아버지였고 이를 추켜세워준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이를 수사하던 노순복 형사는 박봉을 털어 수사 비용으로 쓰는 바람에 쌀이 떨어져 온 식구들이 밀가루 죽으로 여명했으며 첫째 딸은 등록금을 못 내 제적이 됐다고 밝혀졌다. 김종수 형사는 노 형사에게 6형사의 병적부를 내밀었고 군번 역시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호적등본과 6형제의 병적부에는 혼인신고와 사망기록에서 조작된 정황을 알아냈다. 김병조를 찾아간 노 형사는 당시 전사 통지서를 위조한 '대서 업자'의 증언을 이미 받았던 상황이었고, 김병조는 졸도연기를 펼쳤다.

김병조가 전사 통지서를 위조했던 이유는 당시 가족 중에 전사자가 발생하면 국가에서 쌀을 줬기 때문이라고. 결국 김병조는 법정에 서 징역 1년 6개월의 선고를 받았다. 이에 대해 장 감독은 "생각보다 형량이 적게 나왔다. 먹고 살기 급급해서 했던 것들이 정상 참작을 받은 것도 있고, 이 사건이 일단락 된 지 40년이 흐른 뒤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하며 철강왕 박태준 회장을 언급했다.

박태준 회장이 1961년 박정희 의장의 비서실장을 했고, 2004년에 신문에 회고록을 연재했다고. 박태준 회장이 저지른 단 하나의 실수는 김병조가 박정희를 직접 뵙게 해달라고 생떼를 썼고, 김병조가 원한 풍전 아파트 관리권을 김병조에게 하사하게 됐다고 전해졌다. 

미군이 흔쾌히 양도에 동의한 이유는 전사자, 즉 군인들에 대한 예우가 엄청 났고, 김병조의 6형제를 잃은 사연에 가슴 아파 했다. 이 사기극을 알게 된 박정희 의장은 3번의 재수사를 의뢰했고, 박태준 비서실장과 함께 너무 기가 막혀서 껄껄 웃었다고 전해졌다. 

패널들은 "오히려 너무 충격이 커서 가볍게 촌극처럼 지나간 느낌도 있는 거 같다"는 반응을 했다. 김병조 손에 들어갔던 충정 아파트는 결국 환수 조치를 했고, 2022년 6월 서울시의 철거 결정이 내려졌지만 언제 철거가 될지는 미지수로 남아있다고 전했다. 

사진 = JTBC 방송화면 

김현숙 기자 esther_0107@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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