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혜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시·푸틴 ‘빈손 만남’에도… 中 방러 성과 학습 열풍, 왜?

권지혜 2023. 4. 5.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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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지난달 21일 모스크바를 방문, 크렘린궁에서 열린 만찬 행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건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20~22일 러시아를 국빈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중국에선 시 주석 방러 성과 학습 열풍이 불고 있다. 러시아와 접한 동북 지역 뿐 아니라 베이징 등 주요 도시에서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 의의를 선전하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헤이룽장성을 비롯해 각 지방정부는 러시아와의 새로운 협력 사업 발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6월 이후 약 3년 7개월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러시아행은 시기적 정치적으로 여러 의미가 있었다. 시 주석은 국가주석 3연임을 공식 확정한 지 열흘 만에 가장 먼저 러시아로 가 푸틴 대통령과 반미 공조를 다졌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중재자를 자처하며 이번 방문을 ‘평화의 여정’으로 포장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러시아를 편 든다는 비판 속에 강행한 일정이다. 그러나 회담 성적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러시아의 대중 의존도가 커졌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 말고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 핵심 현안에서 실질적인 성과가 없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4일 헤이룽장성 지시시 인민정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시 외사판공실은 지난달 24일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 정신 학습회’를 개최했다. 시 주석이 러시아 매체에 실은 기고문과 러시아 도착 후 발표한 서면 연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 및 회담에서 채택된 두 가지 공동성명의 내용을 숙지하는 자리였다. 중·러는 당시 ‘신시대 포괄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심화에 관한 공동성명’과 ‘2030년 경제협력 중점방향 발전계획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학습회 참석자들은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은 개방적이고 번영하는 세계 건설을 촉진하며 양국 발전의 전망을 보여준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어 “이를 현실에 적용해 중·러간 지방 교류 협력 사업을 모색하고 대외 개방의 질적 발전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헤이룽장성뿐 아니라 베이징에서도 시 주석의 외교 성과를 강조하는 학습회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국제사회에 냉전식 사고와 집단 정치가 만연한 상황에서 시 주석은 강대국 지도자로서의 비상한 전략과 정치적 지혜, 카리스마를 보여줬다”고 찬양했다.

시 주석의 방러 직후 러시아산 수산물 통관 절차가 간소화되는 등의 변화도 나타났다. 동북망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헤이룽장성 쑤이펀허 통상구는 최근 러시아산 수산물에 대한 통관 증명서 발급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24일 러시아산 연어 20.7t이 하루 만에 관련 절차를 마치고 중국에 반입됐다. 그전까지는 러시아 당국이 발급한 어획증을 첨부해 국가원양어업협회에 통관 신청을 해야 했고 처리되기까지 7~10일이 걸리던 일이다. 현지 매체는 “러시아산 수산물 반입 절차와 시간이 단축돼 러시아와의 교역 확대 및 헤이룽장성의 수산물 가공업 발전이 기대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학습 열풍은 평화의 여정이라는 선전과 달리 실제로는 이렇다할 성과가 없었음을 방증한다는 시각도 있다. 시 주석으로선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비판과 견제 속에 푸틴 대통령을 만났는데 정작 가장 관심을 모았던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선 진전이 없었다. 오히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각국의 영토 보전을 지지한다며 대만과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 주고받듯 공조를 약속했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평화는 더 멀어졌고 신냉전 구도가 한층 공고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베이징 소식통은 “시 주석이 지금 이 시점에 왜 러시아를 방문했는지 국민들에게 일일이 설명해야 할 만큼 정세나 상황 논리가 빈약하다는 의미”라며 “전쟁 장기화로 궁지에 몰린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도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낼 의지와 준비 모두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 중앙에서 기층조직을 동원해 시 주석의 방러 성과를 학습하도록 하고 지방정부도 후속 조치에 적극 나서고 있는 모습은 시 주석에 대한 절대 충성 분위기가 매우 확고함을 보여준다는 평가도 있다.

집권 3기 지도부를 확정한 시 주석은 코로나19 봉쇄 3년간 중단했던 정상 외교를 몰아치듯 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하루에만 보아오포럼 참석 차 중국을 방문한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말레이시아의 안와르 이브라힘, 싱가포르의 리셴룽 총리를 각각 베이징 인민대회당으로 초청해 정상회담을 했다.

시 주석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019년 11월 6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공동 기자회견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오는 5~7일에는 시 주석 초청으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방문한다. 같은 기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중국을 찾아 시 주석과 우크라이나 전쟁, 중·EU 포괄적 투자보호협정(CAI) 처리 등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EU는 시 주석과 마크롱 대통령,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3자 회동도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시 주석으로선 푸틴 대통령을 만난 지 보름여 만에 러시아와 각을 세우고 있는 유럽의 핵심 인사들을 만나는 셈이다. 시 주석은 또한번 우크라이나 전쟁의 정치적 해결과 중국의 중재 역할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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