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이익공유제를 다시 생각한다
최근 조선업계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감지되었다. 조선산업의 5대 기업, 하청기업, 전문가,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조선업 상생협력체’를 발족하고, 조선 5사와 협력업체들이 ‘조선업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에 따라 조선 5사와 협력업체는 납품대금 연동제를 철저히 준수하고, 원가절감과 품질 향상을 위해 성과공유제를 적극 활용하며, 정부는 원하청 기업 간 임금 격차 축소, 숙련도 반영 임금체계 확립, 하청노동자 임금체불 방지 등을 통해 건강한 조선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동반성장에 박차를 가할 것을 천명했다.
배경은 이렇다. 오랫동안(2014~21년) 계속된 조선업의 불황으로 조선 5사와 협력업체 간 이중구조가 과거보다 훨씬 심화돼 작년부터 찾아온 호황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이를 보다 못한 관련 주체들이 모두 모여 조선업에서의 각종 격차 완화와 지속가능 발전 방향을 모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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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조선업계 상생협력 움직임
이참에 이익공유제로 확대됐으면
할리우드·NFL도 도입해서 효과
저성장·양극화 완화에 도움될 것
」
반가운 소식이다. 이와 같은 노력이 다른 업종에도 파급되기 바란다. 그러나 동반성장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납품대금 연동제나 성과공유제를 정착시키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나는 이번 기회에 대기업들이 성과공유제를 뛰어넘어 이익공유제까지 과감하게 채택할 것을 권고한다. 중소기업에 성과공유제는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고 이익공유제야말로 ‘가뭄에 단비’ 같기 때문이다.
최근 바이든 정부는 미국에 투자하는 외국 반도체 기업들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대신 이익이 많이 나면 일정 부분을 미국 정부와 공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언론은 즉각 이익공유는 반자본주의적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이런 비판은 미국을 너무 모르는 소리다. 과거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나 버니 샌더스 모두 이익공유제를 미국의 전 산업에 도입하겠다고 공언했었다. 한국은 이익공유의 세부내용을 협상해야지, 그것 자체를 부정해서는 얻을 것이 없다.
나는 지난 2011년부터 동반성장 단기 정책의 하나로 이익공유제를 제안해왔다. 이익공유제는 어떤 기업이 많은 이익을 올리면 그 일부를 협력기업에 돌려 기술 개발, 해외 진출, 고용 안정을 도우라는 것이다. 물론 이익공유는 시장참여자 간의 합의로 이루어진다. 대기업은 실적이 좋으면 임직원에게 보너스를 준다. 마찬가지로 대기업이 실적이 좋을 때 협력기업과 이익을 공유한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기업생태계가 형성되어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저성장과 양극화 문제가 완화될 것이 틀림없다.
이익공유제는 1920년대 미국에서 영화산업이 태동할 때 처음 도입되어 할리우드 영화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는 데 밑바탕이 되었다.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감독, 배우, 스태프들이 제작 초기에 받았던 개런티에 더해 흥행 결과에 따라 이익을 분배받는 이 제도는 한국 영화계에도 도입되어 영화산업 발전에 기여해왔다.
협력 주체 간에 이익공유 대신 수익공유를 채택하는 경우도 많다. 미식축구리그(NFL)는 1970년부터 구단 간 빈부격차를 해소하려고 TV 중계권 수입 전액과 경기장 입장권 수입의 40%를 사무국이 거둬들이고 상품화와 특허사용계약까지 관리하여 모든 구단에 균등하게 분배해왔다. 그 결과 NFL은 32개 구단 모두 수입이 안정되고 전력이 상향 평준화되어 매년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펼쳐진다. 다양한 형태의 이익공유제 또는 수익공유제는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한국경제가 살아나려면 투자가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투자가 부진하다. 대기업은 돈은 많은데 투자할 데가 마땅치 않고 중소기업은 투자하고 싶어도 돈이 없다. 이때 대기업의 자금을 협력 중소기업에도 흘러가도록 유도한다면 (중소기업의) 투자·생산·고용 증가, (중소기업인의) 소득·소비 증가 등을 통해 경기 침체가 완화되고 장기적 성장의 초석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수는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하고 전체 고용의 83%를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양극화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 만약 지난 12년간 이익공유제를 착실하게 시행했다면 경제성장률이 적지 않게 올라가고 양극화도 상당히 완화되었을 것이다.
대기업의 투자를 위해서는 첨단·핵심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첨단·핵심기술의 상당 부분을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 연구 및 개발(R&D) 지출은 많으나 개발지출이 대부분이고 연구지출은 남의 원천기술을 개선(refinement)하는 데 불과하다는 비판이 많다. ‘개발’에서 혁신적 ‘연구’로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
끝으로 우리나라 대기업의 이익은 납품대금 후려치기 등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에 기인한 부분이 적지 않다. 따라서 불공정거래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도 합리적 이익공유는 필요하다는 상식이 널리 공감되기를 기대한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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