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홍영애를 위한 변명
엄마는 위대하지만 모든 엄마가 그런 건 아니다. 드라마 ‘더 글로리’가 보여줬듯.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이라고? 맞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므로.
연진이 엄마 홍영애, 동은이 엄마 정미희가 ‘더 글로리’ 안에서만 존재할까. 아니라는 데 한 표. 모성(母性)의 스펙트럼은 사실 넓다. 사회에 의해 모성애라는 이의 제기 어려운 강력한 이미지로 뿌리내렸을 뿐. ‘더 글로리’의 미덕은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 종교나 모성 같은 지배적 가치에 대한 물음을 세련되고 다양하게 담아냈다는 데 있지 않을까.
사실 모성에 대한 질문은 세계 곳곳에서 감지된다. 우선, 개인적으로 지난해 최고 소설 중 하나로 꼽는 『절연』(문학동네). 정세랑 작가가 동시대 동년배 아시아 작가들과 함께 낸 소설집은 ‘인연 끊기’를 주제로 삼았다. 일본 작가 무라타 사야카의 작품 ‘무(無)’는 “아무리 기다려도 모성은 흘러들어오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여성이 모든 걸 던지는 과정을 담담히 그린다. 싱가포르 작가 알피안 사아트의 ‘아내’엔 이런 구절도 있다. “부모가 희생했던 것은 부모로서의 존엄이었다.”
인류는 팬데믹을 거치며 다양한 절연을 경험했다. 그 중에서도 강력한 신화였던 모성에 대해서도 다양한 질문이 나오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2021년 미국 여성의 52%가 싱글이었다. 사상 가장 높은 숫자다. 누구의 아내이자 엄마임을 거부하는 자발적 싱글이 늘었단 얘기다.
가장 강력한 근거는 대한민국 출산율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합계 출산율은 0.8명. 대도시일수록 낮다. 서울이 0.62, 부산은 0.72로 끝에서 1, 2위. 육아 수당 100만원 받는다고 앞 자리가 1로 바뀔 것 같진 않다. 사회가 만든 모성이라는 굴레를 조용히, 하지만 확실히 거부할 정도로 여성들은 제 목소리를 찾았고 경제적 자유도 획득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모성은 여성을 노예로 만드는 가장 세련된 방법”이라고 1949년 『제2의 성』에 썼다.
부모라는 업(業)은 거룩하다. 그러나 그 업은 사회적 시선 때문에 무거운 족쇄가 됐다. 밥을 싸주지 않고 사주는 부모도 있다는 것, 아이를 낳고 말고를 남이 궁금해할 필요 없다는 것, 집밥이 무조건 위대한 건 아니며, 집안 일의 외주화는 효율성을 위한 선택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모성에 대한 만들어진 신화를 거둘 때다. 반드시 써야 하는 굴레도 아니다. 결국 원하는 선택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울의 합계출산율이 0으로 수렴하는 건 시간문제다.
전수진 투데이·피플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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