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후 늘 선거서 패배? 잘 소통하면 그럴 일 없어"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프랑스 사태는 의회패싱도 원인
은퇴연령 연장,고령근로 늘려야
스페인 탈정치협약 눈여겨볼만
"사회보장 개혁(연금 포함)이 항상 정치 실패로 이어지는 것만 아닙니다. 리더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설득하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올바른 결정이라면 정치 실패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라울 루기아-프릭 국제사회보장협회(ISSA) 사회보장개발부 이사는 지난달 2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 기자단에게 이렇게 말했다. ISSA는 1927년 국제노동기구(ILO) 후원으로 설립된 국제기구이며 한국을 비롯해 161개국이 회원국이다. 라울 이사의 이 말은 "연금개혁에 항상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최근 한국 국회 연금특위 자문위원회가 빈손으로 활동을 마감했다. 최고의 연금 전문가 16명이 머리를 맞댔으나 자기주장만 하다 끝났다. 2018년 4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때도 그랬다. 5년이 지났지만, 전문성 대신 '당파성'만 드러냈다. 이런 시점에서 ISSA의 도움말이 필요할 것 같아서 라울 이사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프랑스가 연금개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견고한 연금을 갖춘 선진국에서도 어떤 문제에 있어서 심각한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사례이다. 지금 상황은 연금개혁 이슈만으로 확산한 게 아니다. 절반은 연금개혁 탓이고, 나머지는 정치세력 간의 갈등 탓이다. 특히 연금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두고 의회의 투표를 거치지 않은 게 문제가 돼 젊은 세대의 큰 분노를 불러온 게 아니냐고 생각한다. 연금개혁 자체는 타당한 면이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대화를 충분히 하지 않은 것 같다."
-모두 합의하는 개혁이 가능한가.
"100% 합의는 어렵다. 다만 사회적 대화가 합의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주요 이해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보는 게 꼭 필요하다. 대화 없이 결정하면 자기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계층은 무시당한다고 여기게 된다."
-연금개혁의 방향은 무엇인가.
"지속가능성, 연금액의 적절성 둘 다 중요하다. 지속가능성 보장하려면 현재 기금이 충분하지 않은 점을 따져야 한다. 다만 이것만 중시하면 특정 그룹이 빈곤으로 빠지게 되고, 그리되면 현금을 지급해야 해서 사회경제적 비용을 초래하게 된다."
-지속가능성을 높일 대안이 있나.
"은퇴 연령을 높여 오래 일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기여기간(보험료 납입기간)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 또 은퇴 후 지속해서 일하려는 고령 노동자의 고용을 모색해야 한다. 이들이 사회보험에 기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연금 가입자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플랫폼 노동 같은 새로운 분야, 새로운 노동자를 연금에 편입하면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적정 노후소득 보장의 대안은 뭔가.
"은퇴자의 주된 지출이 뭔지 따져보자. 의료 지출의 자기 부담을 줄여주면 가처분소득이 늘어난다. 주거비도 따져봐야 한다. 의료 서비스에 제대로 접근할 수 없다면 연금액을 늘리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연금개혁을 하면 선거에 지던데.
"국민이 '꼭 필요한 개혁이구나'라고 인식하게 되면 인기 상실로 이어지지 않는다. 사회보험 개혁으로 인해 특정 그룹의 부담이 늘어난다면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 보상하겠다고 충분히 이해시키면 정치적으로 나쁜 결과가 오지 않을 수 있다."
-정치에 실패하지 않은 나라가 있나.
"1990년대 스페인의 톨레도협약이다. 주요 정당들이 사회보장을 정치적 경쟁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고 합의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보장을 선거에 이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연금문제는 정당이나 행정부가 아니라 전문적 기구(예를 들어 한국의 국민연금공단)가 전담하기로 했다. 다른 문제로 싸우지만, 사회보장을 두고선 싸우지 않았다. 스페인의 사회보장제도가 견고해졌다. 포퓰리스트적인 의사 결정을 하면 (악영향이 바로 나타나지 않고) 시간이 지난 뒤 나타난다."
■ “소득대체율 올려도 연금 약자에 효과 미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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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설 연금유니온 집행위원장
현행 연금개혁의 방향을 비판하는 청년·프리랜서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래세대·일하는시민의 연금유니온이 지난 3일 출범했다. 4일 김설(29·청년유니온 위원장·사진) 집행위원장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Q : 어떤 단체인가.
A : “청년·프리랜서·노인·여성 등 복지와 연금의 사각지대에 놓인 연금 약자를 옹호하는 청년유니온·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프리랜서협회·내가만드는복지국가 등 6개 단체가 참여한다. 지금 연금개혁이 현세대와 노동시장 중심세력의 시각에서 진행되는데, 미래세대와 연금 약자 입장을 반영하도록 촉구할 예정이다.”
Q : 보험료(9%)를 올리자던데.
A : “2030년까지 12%로, 2040년까지 15%로 올려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의료비·기초연금 등은 미래세대가 부담해야 하지만 국민연금은 현재 세대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
Q : 소득대체율은 어떻게 하나.
A : “지금의 40%를 유지해야지 올려서는 안 된다. 올려봤자 연금 약자에게 돌아오는 효과가 미미하다. 이게 양대 노총과 차별화되는 핵심 요소이다. 우리는 출산·군복무·실업 크레디트(가입기간을 추가로 인정하는 제도)를 확대하고, 육아·직업교육 등의 크레디트를 신설해야 한다고 본다. 저소득 근로자이면 누구나 보험료를 지원하고, 저소득 지역가입자도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의무 가입 연령(59세)도 올려야 한다. 이렇게 해서 실질적으로 소득대체율(연금액)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Q : 기초연금 등은 어떻게 하나.
A : “일률적으로 인상하지 말고 저소득 노인에 더 지급하는 방식으로 차등화하고 나중에는 최저소득보장제도로 전환하자. 기초·국민·퇴직연금 등을 조합해 계층별 다층연금체계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Q : 국회 연금특위가 성과를 못 내고 있다.
A :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듯하다. 시민의 반응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민간자문위원회가 단일안이 힘들면 복수안이라도 내야 했는데, 리더십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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