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씬] 사카모토 류이치 ‘쓰나미 피아노’
아픔을 ‘길’로 만드는 첫걸음은 ‘기억’이다. 이를 잘 보여준 예술가가 최근 작고한 일본 피아니스트 겸 영화음악가인 사카모토 류이치다.
아시아 첫 아카데미 음악상, 그래미상 등을 받은 그는 2017년 도쿄에서 ‘쓰나미 피아노’란 이름의 특별한 피아노를 전시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그가 피해 지역을 방문했다가 한 고등학교 잔해에서 찾아낸 피아노였다. 대지진 이후 원자력 발전소 등 정부 환경 정책을 비판해온 그는 쓰나미로 망가진 피아노에 전 세계 지진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 음으로 변환해 자동 연주하는 프로그램을 연결했다. 피아노를 지진을 노래하는 악기로 되살려내며 “재난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국적과 언어를 초월한 음악의 울림이었다. 이듬해 부산영화제에서 한국 관객에게도 이 피아노의 선율이 전해졌다.
사카모토는 민감한 한·일 역사도 적극적으로 기억하려는 예술가였다.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한·일 합작 애니메이션 ‘안녕, 티라노: 영원히, 함께’ 상영에 맞춰 2018년 부산영화제를 찾았을 때 일제강점기를 그린 ‘미스터 션샤인’(2018)을 좋아하는 드라마로 선뜻 꼽았다. 그의 타계 소식에 ‘방탄소년단’ 슈가 등 한국 창작자들의 추모가 잇따른 데는 이런 초국적 태도로 지난 시간 한·일 문화 교량 역할을 해온 점이 한몫했다.
최근 우리 정치권에선 제주 4·3 사건 등 과거사 아픔을 기억이나 성찰보다 정략적 기회나 도구로 일삼는 태도가 자주 노출됐다. 역사의 화해라는 대명제 앞에 아직도 갈 길이 멀고 멀어 보인다.
나원정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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