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을 엮어야 노리개 한 개…“매듭은 예술보다 수행이죠”
가업 잇는 문화재 장인
3대째 매듭으로 전통을 잇고 있는 박선경(59) 매듭장 전승교육사와 박형민(61) 매듭장 이수자 남매를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에서 만났다.
매듭장이란 끈목(여러 가닥의 실을 꼬아서 만든 끈)을 이용해 매듭과 술을 만드는 장인을 일컫는 말이다. 장신구로 쓰이는 한복 노리개가 대표적인 매듭 장신구다. 박선경·형민 남매는 3대를 이어온 매듭장 가문 출신이다. 이들의 외조부모는 고 정연수·최은순 매듭장 보유자, 어머니는 정봉섭(85) 매듭장 보유자다.
매듭짓기는 전통 공예 중에서도 유독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매듭 일에 뛰어들어 40년 외길을 걸은 박 전승교육사도 3m 길이의 끈을 짜는데 꼬박 하루 이틀을 쓴다. 이렇게 만들어진 끈을 이용해 잠자리·국화·매화 등 다양한 형태의 매듭을 맺고, 술(여러 가닥의 실)을 늘어뜨리면 완성이다. 길이가 20㎝ 내외인 한복 노리개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열흘에서 보름. 박 전승교육사는 작업 과정을 설명하다 “예술보다 수행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이들 남매는 어머니인 정봉섭 매듭장 보유자가 “손가락뼈에 주사를 맞으면서 작업하는 것을 보며 자랐다”고 했다. 명주실을 꼬아 매듭으로 모양을 만드는 작업은 손가락 마디 마디의 변형을 일으킬 정도로 고되다. 손가락이 갈라져 피가 흐르고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실을 엮느라 손이 부르트기 일쑤고, 관절염과 허리디스크를 고질병으로 달고 산다. 박 이수자는 “손바닥 사이에 여러 가닥의 실을 넣고 비벼서 합치는 연사(撚絲) 작업을 몇 시간 하고 나면 손바닥이 퉁퉁 부어서 다음날 손을 못 쓰게 되는 일도 많다”고 했다.
박 전승교육사는 “과거 매듭 일은 대부분 남자의 몫이었다”고 했다. 매듭을 조일 때는 상당한 아귀힘이 필요하다. 끈목이 두꺼울수록 더 그렇다. 박 이수자는 “매듭을 어설프게 조이면 원하는 모양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작업을 망치게 된다”며 “과거에는 상여나 깃발, 창, 검, 악기 등 온갖 사물을 대형 매듭으로 장식했기 때문에 매듭장 대부분이 남자였다”고 했다.
어렵게 이어온 가업이지만 산 넘어 산이다. 보름을 쏟아 노리개 한 개를 만들 수 있는 매듭 작업은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라서다. 박 전승교육사는 “작업 강도와 기간을 모르는 사람들이 노리개 하나에 100만 원이 넘는다고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기 일쑤”라고 했다.
과거에는 매듭도 분업으로 만들어졌다. 염색장·끈목장·연사장이 밑 작업을 하면 매듭장은 매듭만 지었다. 지금은 매듭장이 혼자서 모든 일을 한다. 작업 속도가 떨어져 주문 제작을 받아 물건을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가업을 지속할 수가 없다.
박 전승교육사는 “전통 공예를 계승하기 위해서는 배우는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밑에 사람을 두고 쓰기가 어렵다”고 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한국에 남아있는 매듭장 전승자는 이들 남매의 어머니인 정봉섭씨와 또 다른 보유자 김혜순씨, 박 전승교육사 세 명뿐이다.
이들은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매듭 체험 교육을 하고 인천공항·경복궁 등에 위치한 전통공예숍에 매듭 액세서리를 납품하며 가업을 잇고 있다. 한복 조끼인 배자, 목걸이, 브로치 등으로 상품군도 늘렸다. 박 전승교육사는 “현대적인 장신구도 만들고 있지만 기본 전통은 흐트러지지 않게 지켜나가겠다”며 “기계로 일부 작업을 대체해 판매 단가를 낮춰 매듭을 대중화하면서 동시에 수작업으로 완성되는 최고의 매듭 공예 기법을 전수하는 것이 숙제”라고 했다.
“매듭의 쓰임새를 늘릴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할 겁니다. 박물관 속에 잠든 유물이 아닌 시대와 소통하는 매듭을 만들 방법은 그뿐이니까요”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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