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에디터의 글로 만나는 4월의 벚꽃

2023. 4. 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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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벚꽃에 대한 날카로운 기억 혹은 흐드러진 상상.
「 사거리의 벚꽃 」
writer 이예지(〈코스모폴리탄〉 피처 디렉터)
‘A Man Standing’, 서울, 2011

사거리에 서서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오기를. 잊혀진 것들, 혹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들이 유령처럼 차가운 손으로 돌아와 나를 다시 잡아주기를. 눈을 감으면 형형하게 흩날리는 저 벚꽃잎들처럼, 쏟아지는 우박처럼, 쩡쩡한 번개처럼, “여기서 당신을 기다렸어요”라던 어느 꿈속의 말처럼. 잔뜩 헝클어진 머릿속이 욕조 마개를 뺀 것처럼 하나의 이미지로 빨려 들어간다. 단정한 구둣발. 아스팔트 위에 우수수 떨어진 꽃잎을 밟고 돌아서 있던 뒷모습. 돌아볼 듯하지만 돌아서지 않는 그 검고 단호한 형상 속으로.

대학 신입생 시절, 같은 과 동기 M은 농담을 잘했다. 서로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한 우리가 기어코 결혼하게 될 비극적인 날 따위의, 일어나지 않을 미래에 대해 곧잘 우스갯소리를 하고 능청을 떨었다. 하지만 희극적으로 구는 M은 자기 자신의 감정에 대해선 결코 말하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혀 속에 자신의 노랑을 숨겨둔 채, 짐짓 모른 척 노랑을 타자화해 말하길 좋아하는 악취미. 나는 그의 비뚤어진 희극성을 재미있다고 여겼기에, 우리는 합이 맞는 콤비였다. 같은 학회의 사람들은 서로 야무지게 때리는 톰과 제리 같은 우리를 가소로이 보며 늘 말했다. 쯧쯧, 저러다 결혼한다 쟤네! 그러면 M은 늘 장모님은 어찌 잘 계신지 물으며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는데, 이것이 그저 놀이일 뿐이라는 건 내가 제일 잘 알았다. 어쨌거나 우린 좋은 친구였다. 우리는 자주 정치와 문학 이야기를 했고, 공분해 핏대를 세우거나 낮은 목소리로 시를 낭독할 때도 있었다. 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보고 통인동에서 책을 샀다. 여름이면 청계천의 얕은 물살을 보았고, 겨울이면 싸리눈을 맞으며 정릉길을 걸었다. 세월은 흘러갔다.

어느 4월, 각각 다른 매체의 신입 기자이던 우리는 여의도에 있었다. 벚꽃이 만개해 연인들의 홍수 속이었던 그날. 우리는 빠듯한 점심시간 탓에 설렁탕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연인들 속을 헤치며 빠르게 걷고 있었는데, 어쩐지 그날 따라 M의, 언제나 자신의 진의를 숨기고 짐짓 모른 체 말하는 화법이 참을 수 없었다. 내가 비난하자, M은 갑자기 가면을 벗은 듯한 말투로 “근데 네가 내 여자 친구라도 되냐?”라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나는 10년에 가까운 우정을 쉽게 말하는 데 배신감을 느꼈다. “그럼 다 관두던가!” 내 말에 M은 가면을 집어던지는 양 “그래, 나도 이런 건 필요 없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를 사거리에 남겨둔 채 뚜벅뚜벅 뒤돌아 걸어갔다. 그날 아스팔트 위에 수북하게 떨어져 발에 차이던 희붐한 벚꽃잎들.

그날 밤, M은 SNS에 자신은 벚꽃을 원했는데 누군가 매화를 주었을 때, 복숭아꽃을 보고 싶었는데 살구꽃을 보았을 때 느끼는 종류의 당혹과 어긋남, 아픔에 대한 긴 글을 썼고,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비로소 이해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에게 준 건 며느리밥풀꽃 정도의 엉뚱한 당혹감이었다는 거지. 아주 오래전, M이 처음 신경 쓰였던 순간이 불현듯 떠올랐다. 대학생 시절 좋아하던 사람에게 차여 술에 떡이 됐을 때, 나를 둘러메고 숙취 해소제를 사서 내 자취방으로 데려다주면서 “이런 너를 좋아한다면 나는 진짜로 바보겠지”라며 툴툴대던 순간이었다. 못 들은 척했다. 관계에 서툰 내가 만신창이가 돼 돌아올 때마다 팔 벌려 맞아주고, 내 비극을 희극으로 만들어 놀릴 수 있는 건 너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너의 벚꽃은 그때 저물었고 나의 벚꽃은 이제 막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벚꽃의 계절. 나는 여전히 이 사거리에 서 있다. 4월이면 반드시 만개하는 벚꽃. 어김없이 돌아오는 계절, 무료하고 완고하던 얼굴, 희극적이던 말투와 축축한 밤, 환하게 밝힌 마음. 점멸하는 불빛과 흩날리는 백색의 꽃잎들처럼 당신은 나를 잊었겠지만, 반드시 잊었겠지만,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지나 다시 여기로 돌아왔을 때 이 사거리의 벚꽃만큼은 기억할 수 있겠지요.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진줏빛 유령이 우리를 찾아오는 순간. 각자의 기억에 날카롭게 새겨진 벚꽃을 지금, 여기에 호출한다. 이 지면에 가득히 만개하도록.

「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
writer 박상영(소설가)
‘벚과 벚’, 창경궁, 2014

영화감독 K와 나는 20대 때 만난, 오래된 친구 사이다. 사실 영화감독 K를 ‘영화감독’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금 어색한 부분이 없지 않은데, 그가 영화를 ‘감독’하지 않은 지 무려 7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첫 장편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지 7년이 지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시나리오는 아직도 초반에 멈춰 있다). 그렇기 때문에 K를 전직 영화감독이자 현직 영화인 정도로 부르는 게 좀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이미 한 발 지나가버린 유행인 MBTI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K와 나는 한눈에 보기에도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무릇 영화감독이라고 하면 크고 괄괄한 목소리로 현장을 호령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K는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지독한 내향형의 인간이다. 이를테면 K는 음식점에서 주문한 음식이 잘못 나오더라도 묵묵히 그 음식을 먹는 종류의 사람이다. 나 같은 경우 메뉴가 잘못 나왔다고 말하는 것과 동시에 반찬이라도 더 얹어달라고 너스레를 떠는 종류의, 극외향형 인간이다. 그런 K가 수백 명의 스태프를 지휘하는 (전직) 영화감독이고, 말 못 해 죽은 귀신이 붙은 내가 하루 종일 혼자 지내는 작가로 살아가는 건 좀 웃긴 일이긴 하다.

우리의 차이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K는 참 부지런한 살림꾼이다. 꽤 오랫동안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매일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잘 모르는 레시피를 찾아 요리도 한다. 친구들을 불러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먹이는 것도 좋아한다. 언젠가는 생일을 챙기지 않고 혼자 집에 누워 있는 나를 불러다 파스타와 미역국을 해 먹인 적도 있다. 내 경우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가사노동만을 간신히 하고 산다. 옷은 화석처럼 벗은 자리에 뒤집어진 채 굳어 있으며, 설거지가 하기 싫어 좁아터진 집에 식기세척기까지 들였지만, 버튼을 누르기가 귀찮아 컵과 젓가락이 쌓이기 일쑤다. K는 이런 나를 퍽 추잡하고 한심한 사람으로 여긴다.

반면에 ‘직업’ 혹은 ‘창작’이라는 영역에 있어서는 우리 둘의 모습이 완벽히 바뀐다. 앞서 말한 대로 7년 동안 장편 시나리오를 ‘준비’만 하고 있는 K와 달리, 나는 7년의 시간 동안 6권의 책과 장편 드라마 한 편을 썼으며, 사이사이 라디오와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물론 K도 여러 편의 영화 현장에서 스태프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긴 했지만, 6개월 이상 꾸준히 일했던 직장은 없었다). K는 이런 나를 보며 항상 질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도대체 언제 쉴 작정이야? 죽으면?”이라고 말하곤 했다. 내 입장에서는 잡일(이라고 하기에는 일상을 영위하는 중요한 일들이긴 하지만… 아무튼)을 하다 정작 자신의 커리어를 등한시하는 K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우리는 만날 때마다 서로의 가치관이나 라이프스타일을 비방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곤 했다.

K에게서 연락이 뜸해졌던 적이 있었다. 소식을 궁금해하던 도중, K의 친구들이 K의 새 단편영화가 나왔다고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를 한 것이었다. K가 나 몰래 단편영화를 찍고 온 것이었다! 나는 회피형의 K를 붙들고 도대체 왜 비밀로 한 것이냐고 다그쳤다. K는 내 눈을 피하며 조가비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자신의 영화가 너무 쓰레기 같아 보여줄 수가 없었다고. 나는 한숨을 쉬며, 그렇게 부끄러워서 어떻게 숨은 쉬고 사냐고 물었다. K는 자기도 이런 자신이 싫다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영화과 학부 1학년생 같은 (30대 중반의 전직 영화감독, 현직 영화인) K의 모습을 보며 귀엽다고 해야 할지 한심하다고 해야 할지 조금 헷갈렸다. 그것도 벌써 1년 전의 일이다.

*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할 무렵, K는 뭔가 엄청난 결심을 한 듯 내게 말했다.

“형, 나 점을 보러 가야겠어!”

내가 재미 삼아 사주를 보러 다닐 때도(심지어 역술인이 몇몇 수상 결과나 계약의 행방을 맞혔을 때도)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던 K였는데, 갑자기 점이라니 얘가 마음이 쫄리기는 하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른 각지의 용하다는 점집과 무당을 꿰고 있는, 준역술인들에게 전화해 가장 적절한 장소를 찾아냈다. 매콤한 일침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구름처럼 포근한 말로 코팅을 해준다는 고양시의 J도사가 그 사람이었다. 그가 K에게 새 작품을 만들 만한 동기부여를 해줄 것만 같았다.

내 차 조수석에 K를 태운 뒤 나는 평소처럼 유려하고 능숙하게 고양시를 향해 달렸다. 대로변에는 막 벚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나는 푸르른 기운을 만끽하고 싶어 창문을 내린 채 달렸고, K는 마스크를 치켜올리며 “미세먼지 엄청 심해”라고 말했다. 점집을 가는 내내 우리는 벚꽃이 피고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자신의 마음 갈피를 잡지 못해 먼 곳으로 점을 보러 가는 우리의 초라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렇게 찾아간 역술원에서 K는 놀라운 점궤를 받아 들었다. K는 사주에 잔불이 많은데 지금껏 K의 인생에 찾아왔던 기운들이 도와주지 않아, 타 죽을 것처럼 말라비틀어진 형국이라고 했다. 다만 앞으로는 좋은 기운들이 들어와 드디어 주변에 ‘사쿠라’가 만개할 거라고 했다. 그 많고 많은 꽃 중에서 (벚꽃도 아닌) 사쿠라라니. 이상하게 조금 야시시하게 느껴져 웃음이 절로 터져나왔다.

역술인께서는 나를 보고는 “제발 자신을 보러 와달라고 외치는 보석 광산과도 같은 사주”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동안에도 나는 내 인스타그램에 벚꽃 사진을 올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좀 봐줬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나아가 역술인은 나를 보고 일단 한번 뭘 시작하면 죽을힘을 다해 달려들 성격이라고 했다. 화도 잘 내고, 술도 죽도록 마시는 팔자라고…. K가 무릎을 탁 치며 외쳤다.

“진짜 딱 형이잖아.”

“너 잘 쉬지도 못하지? 시간이 남아돌아도 1분도 못 쉴 놈이라고 할머니께서 그러신다!”

그 말을 들은 K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참았다. 나로서는 역술인이 영화 〈트루먼 쇼〉처럼 내 삶에 CCTV를 달아놓은 게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너 앞으로도 그렇게 쉬지도 않고 일하면, 병나서 골로 간다고 하시네! 좀 쉬어!”

K는 더 참을 수가 없었던지, 아주 자지러지게 웃기 시작했다.

집으로 오는 길, 우리는 각자의 휴식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K는 혼자 술을 마시고,친구들과 함께 클럽에 가고,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는 것이 모두 휴식이라고 했다. 내 경우도 비슷하다. 나 역시 K와 비슷한 방식으로 여가 시간을 보내곤 한다. K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가 생각했을 때 형은 쉬는 방법을 아예 모르는 것 같아.”

“나? 아냐. 잠도 많이 자고, 여행도 자주 가잖아.”

“자기 전까지 침대에서 소설 쓰다 자고, 여행 갈 때도 노트북 챙겨 가잖아.”

“응… 그렇긴 하지. 근데 솔직히 현대인들 중에서 화 없고 스트레스 없는 사람 어딨냐. 휴가 가서도 다 업무 전화 받고 그러지 뭐.”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본 적이 있긴 해? 한 번도 그러는 걸 본 적이 없어.”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할 수가 있어? 아무것도 안 하고 쉰다는 건 허상인 거 같아.”

“뭐래! 지가 못 하면 허상인 건가? 그냥 일하지 말고, 뭐 대단한 걸 자꾸 하지 말고 그냥 아무 프로그램이나 틀어놔. 그리고 소파 위에 누워! 온몸을 이완한 채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눈만 뜨고 있어보라고!”

“응? 그게 가능하다고?”

K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그런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넷플릭스를 볼 때도 나는 업무 메일을 확인하거나 친구들에게서 온 메시지에 답을 한다. K가 말하는 그 온전한 휴식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나를 진정으로 쉬게 만들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룩할 수 있을까?

소파와 나만이 남겨진 조용하고 쾌적한 공간. 휴대폰이 없는 그곳에서 나는 원 없이, 그간 미뤄왔던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상상을 한다. 재밌게 밀린 드라마를 보던 중, ‘근데 내 드라마 편성은 어떻게 돼가고 있지? 이번 달까지는 원고를 넘겨야 늦어도 여름에는 출간이 가능할 텐데…’ 나도 모르게 어느새 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나는 온전한 휴식을 상상하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K와 나는 역술원 근처의 공원을 산책했다.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던 꽃봉오리는 가까이서 보니까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봉긋 솟아 있었다. 나는 너무 뜨거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K의 상태가 꼭 이 꽃망울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K가 얼른 꽃을 터뜨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떨치기를 슬쩍 빌어보았다. 순도 100퍼센트는커녕 1퍼센트의 휴식도 취하지 못하는 나에게도 벚꽃을 보며 한가로이 꽃길을 거니는 시간이 주어진 걸 보면, 삶은 살아봐야 아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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