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4월 5일, 그날 이 나라에 온 손님은?

장창일 2023. 4. 4. 22: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교총 대표회장단 이영훈·권순웅 목사, 이철 기감 감독회장
138년 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입국했던 ‘제물포항’ 일대 순례
인천항 앞 한 호텔 옥상에서 내려다본 월미도 전경. 1885년 이 바다를 통해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왔다.

복음이 온 바다에 가다(上)

복음은 1885년 제물포항(현 인천항)을 통해 우리에게 왔다.

138년 전 4월 5일 부활절에 호레스 언더우드(1859~1916) 선교사를 비롯해 헨리 아펜젤러(1858~1902) 선교사 부부 등 세 명이 인천에 첫발을 디디며 개신교 선교 역사의 막이 오른 것이다.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 이영훈 목사)이 3일부터 양일간 인천과 강화도의 개신교 성지를 순례하면서 19세기 말부터 파종된 복음의 흔적을 밟았다. 이번 순례에는 일간지 종교담당 기자 13명도 함께 했다.

순례의 출발지는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이었다. 인천항 제8부두 옆에 1986년 세워진 17m 높이의 기념탑은 교회 종 모양처럼 생겼다. 우뚝 솟은 탑은 이 땅을 처음 찾은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의 청동상을 품고 있었다.

이영훈(가운데) 한교총 대표회장과 이철(왼쪽) 기감 감독회장, 권순웅 한교총 공동대표회장이 3일 인천 중구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 앞에서 손을 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영훈 대표회장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고 3년이 지난 뒤 기념탑 근처의 제물포항을 통해 언더우드·아펜젤러 선교사가 입국하며 본격적인 개신교 선교 역사가 쓰여지기 시작됐다”면서 “이 기념탑이 복음의 씨앗이 이 땅에 처음 뿌려진 걸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만큼 많은 이들이 방문해 복음의 시작을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순례단은 우리나라 최초 감리교회인 내리교회(김흥규 목사)로 발길을 옮겼다. 1885년 7월 아펜젤러 선교사가 세운 교회는 한국의 어머니 교회 중 한 곳으로 불린다. 교회는 개항 이후 우리나라의 복잡했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신홍식 목사가 일제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뒤 1922년 이 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해 5년 동안 사역하며 ‘인천내리교회역사’를 썼다. 1903년 하와이로 떠났던 102명의 첫 이민단 중 무려 50명이 이 교회 교인이기도 했다. 이들 중 홍승하 성도는 하와이에 미주 첫 한인교회인 호놀룰루연합감리교회를 설립했다.

이 교회 2대 담임인 존스 목사는 1892년 교회 안에 영화학당을 세워 당시에는 없던 여학생 교육을 했다. 1954년 헨델의 메시아를 초연한 곳도 바로 이 곳이다. 교회가 걸어온 긴 여정은 이 교회 안에 있는 역사관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최영호 내리교회 부목사가 3일 아펜젤러 선교사 등 교회와 감리교 선교에 기여한 신앙 선배들의 흉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내리교회에서 나온 일행은 교회와 나란히 이어진 비탈길을 올라 고풍스러운 모습의 내동성공회성당(장기용 주교)에 도착했다. 대한성공회 초대 주교인 찰스 존 코프 주교가 1890년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성공회 성당이다. 하지만 첫 성당은 6·25전쟁 중 폭격으로 소실됐다.

화강암을 쌓아 올려 중세풍으로 지은 현재의 예배당은 성공회 의료선교사들이 활동하던 성누가병원 자리에 1956년 새로 지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외향만 보면 서울 중구의 서울주교좌성당과도 비슷하다.

인천 중구에 있는 내동성공회성당 모습.

성누가병원 의료선교사들은 1904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러일전쟁 당시 부상을 입은 러시아 병사들을 치료했다. 러시아 정부는 2004년 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감사패를 내동성당에 보냈고 교인들은 이를 교회 벽에 붙였다. 이국적인 모습의 성당은 영화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영화 ‘수리남’에도 등장했다.

이날 순례단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인천 최초의 장로교회인 인천제일교회(손신철 목사)다. 장로교 최초라는 타이틀이 있지만 1946년 설립된 교회는 사실 지역에서는 후발주자인 셈이다.

감리교와 성공회 성당과 비교해 늦게 설립된 건 1909년 우리나라에서 사역하던 미국 남·북장로교, 남·북감리교, 영국성공회 등 6개 교단 선교사들이 맺은 ‘선교지 분할 정책’ 때문이었다.

젊은 선교사들이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선교하는 걸 피하기 위해 ‘지역과 교단’을 연결지어 서로의 선교지를 침범하지 말자는 약속이었다. 이에 따라 인천과 강화도는 감리교와 성공회의 선교지로 정해졌다.

손신철(가운데) 인천제일교회 담임목사가 3일 한교총 순례단에게 교회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그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소련군 아래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서북지역 장로교인들이 남쪽으로 대거 내려온 뒤 인천에 정착했고 이들을 위한 장로교회가 필요해진 것이었다. 인천제일교회가 인천에 터를 잡은 이유다.

인천 장로교인의 요람과도 같은 이 교회는 그동안 인성초등학교와 인성여자중·고등학교를 명문 학교로 키우며 다음세대 양육에도 앞장서고 있다.

손신철 목사는 “감리교회와 성공회 성당이 뿌리 내린 지역에 우리 교회를 시작으로 여러 장로교회들이 생겨 지금까지 활발히 사역하고 있다”면서 “특별히 우리 교회는 복음 전파뿐 아니라 다음세대를 기르는 일에 열심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천=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