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하나님이 주시는 꿈, 즉 희망의 원리가 믿음을 낳게 하는 것….

2023. 4. 4.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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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순복음김포교회 김삼환 목사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 창립 34주년 기념 성령포럼 발표 자료

조용기 목사의 4차원의 영성
20세기 가장 위대한 성령목회자 조용기 목사와 세계적인 해석학자 폴 리쾨르와의 만남

폴 리쾨르(Paul Ricoeur)의 명저 <악의 상징: La Symbolique du mal>에 나타난 악에 대한 해석학적 고찰은 조용기 목사의 사차원의 영성을 파악하는데 아주 유용한 도구이다.

리쾨르는 악에 대한 해석학적 고찰에서 가장 근원적인 첫 번째 악의 단계를 에덴 낙원에 뱀의 형상을 하고 침입해 들어온 사탄에게서 찾고 있다. 이 사탄의 존재자체는 인간의 자유의지로는 막을 수 없는 것이며 이 사탄의 존재자체는 에덴낙원을 오염시키는 근원적인 악이다. 이 악은 온전히 외부적인 악이다.

리쾨르가 해석하는 악의 두 번째 단계는 이러한 외부 세력인 사탄이 인간을 유혹하는 것과 이 유혹에 대응하는 인간내면의 자유의지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악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죄를 범한다. 이 죄가 두 번째 단계 즉 외부자인 사탄과 인간내면의 만남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악이다.

리쾨르가 해석하는 악의 세 번째 단계는 온전히 내면화된 단계로써 인간이 마음속으로 느끼게 되는 죄책감이다. 이 죄책감은 온전히 내면적인 악이다.

리쾨르는 가장 근원적인 악, 즉 인간의 자유의지로는 막을 수 없는 첫 번째 단계의 악이 두 번째 단계의 악인 죄나 세 번째 단계의 악인 죄책감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두 번째 단계의 악인 죄 가운데 구조적이거나 집단적인 죄 혹은 원죄 같은 것은 개개인의 인간의 자유의지로는 막을 수 없고 어찌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며 바로 이 ‘막을 수 없고 어찌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란 바로 첫 번째 단계의 악에서 발견되는 것, 곧 사탄의 에덴낙원으로의 침입자체는 인간의 자유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성질이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리꾀르는 이 가장 근원적이고 외부적인 악이 세 번째 단계의 악, 즉 온전히 내면화된 악인 죄책감에서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인간의 내면은 바울의 고백처럼 한편으로는 선을 행하기 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선을 행하기를 원하면 원할수록 자신이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 노예의지를 보여주는 까닭이다.

자신이 원치도 아니하는 악을 저지르게 하는 이 강제성은 바로 첫 번째 단계의 악에서 발견되는 것 즉 인간의 자유의지로는 막을 수도 없고 어찌할 수도 없는 성질의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악의 가장 근원적인 힘이 첫 번째 단계에서의 외부적인 사탄의 존재에서 발견되는 것이지 악의 두 번째 단계인 인간이 자유의지로 저지르는 죄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므로 악을 근원적으로 도말하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인간이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자 하는 유대교적 율법주의가 아니라 이 외부적인 사탄의 정수리를 깨트리실 외부적인 구원자를 믿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며 이 외부적인 구원자가 바로 창세기에 여인의 후손으로 예언된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이와 같은 리꾀르의 악에 대한 해석학적 고찰의 방법론은 이제 악을 제거하고 구원을 도모하고자 하는 조용기 목사의 사차원의 영성에 관한 해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는 조용기 목사가 4차원의 영성으로 언급한 생각 언어 꿈 믿음 이 네 가지를 온전히 외부적인 것 그리고 그 다음은 외부적인 것과 내면의 만남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 그리고 그 다음은 온전히 내면화된 상태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순서적으로 나뉘게 한다.

우선 조용기 목사의 사차원의 영성 곧 생각 믿음 꿈 말 중에서 가장 외부적인 성격의 것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부어주시는 꿈이다. 이 꿈은 인간의 자유의지로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어주시는 것이다. 꼭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말씀과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받은 아브라함의 경우가 이와 같다,

그 다음으로는 하나님이 주시는 외부적인 말씀이나 꿈이 인간의 내면과 관계하여 형성되는 것으로써의 믿음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순전히 내면적인 것으로써의 생각과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근원적인 힘의 흐름이다. 리꾀르의 경우 힘의 흐름은 가장 외부적인 것에서 시작되었듯이 4차원의 영성에서도 꿈은 다음 단계인 믿음을 형성하고 또 그 다음 단계인 생각과 말을 주장하는 근원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 즉 희망의 원리가 믿음을 낳게 하는 것이지 믿음이 꿈을 낳게 하는 것이 아니며 긍정적인 생각이나 말이 믿음이나 꿈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꿈이나 믿음이 긍정적인 생각을 낳고 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긍정적 생각의 힘을 우선 강조하는 데서 출발하여 그 다음으로 믿음이나 꿈을 말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주장하는 조엘 오스틴 목사의 주장은 존재론에서 심리학으로 이르는 힘의 흐름이 아니라 오히려 심리학에서 존재론으로 이르고자 하는 그 역의 방향을 주장하는 것으로써 기독교 정통신앙과는 배치되며 조용기 목사의 사차원의 영성과도 거리가 먼 것이다.

한편 조용기 목사는 오순절 정통주의자로써 성령세례와 방언을 중요시한다. 방언은 말을 구성하는 낱말의 의미를 알 수 없고 따라서 말과 말사이의 논리적이거나 추론적인 연결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말이다.

또한 쟈크 라깡에 의하면 인간의 무의식은 랑그(langue)로 구성되어 있는바 랑그란 말을 구성하는 낱말의 의미는 알 수 있으나 말과 말 사이의 연결은 무의식이 나타나는 꿈에서 보듯 논리적이거나 추론적인 연결이 아니다.

그리고 의식을 구성하는 말은 파롤(parole)로써 이는 말을 구성하는 낱말의 뜻도 알 수 있고 말과 말 사이의 연결도 논리적이고 추론적인 것이다. 즉 가장 표면적인 언어는 파롤이며 그 밑의 언어는 랑그이며 랑그보다도 더 밑의 언어는 바로 방언이다. 변화시키는 힘은 가장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온다.

정신분석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무의식인바 이는 곧 파롤을 지배하는 것은 랑그란 의미가 되겠다. 만일 인간의 무의식이 병들어 있다면 인간의 의식은 병든 무의식의 지배를 받을 것이니 인간 의식은 스스로 아무리 애를 써도 여기서 헤어 나올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무의식을 다스리는 것은 무엇인가?

즉 랑그를 다스리는 언어는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랑그 밑에 있는 언어 즉 방언인 것이다.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이 건전하게 변화되고 변화된 무의식은 또한 우리의 의식을 건전하게 변화시킨다. 성령이 시키시는 방언으로 기도할 때 얻는 유익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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