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은 쌀값 정상화 포기" - "강제 매수가 농민 망칠 것"
[류승연 기자]
▲ 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에 관한 대정부질문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 남소연 |
"폐기돼야 마땅한 법(장동혁 국민의힘 의원)"
"사전 생산 조정으로 초과 생산 막자는 것(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관련, 정부·여당과 야당이 4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극한으로 대치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지적하며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데다, 이날 대정부질문에 참석한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어떠한 경우에도 강제격리는 안 된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면서 대정부질문 내내 여야간 고성이 오갔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정부가 수요보다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시장 격리(정부 매입) 하는 내용을 담은 법이다. 기존 양곡관리법 16조 4항에는 쌀값이 급격하게 변할 때 정부가 쌀을 '사들일 수 있다'고 정하고 있는데 이를 '사들인다'는 의무 조항으로 바꾸는 게 주요 골자다. 시장 격리는 매년 쌀 초과 생산량이 수요보다 3~5% 초과하거나, 쌀값이 평년 가격보다 5~8% 이상 하락할 때 발동된다.
한덕수 "양곡관리법, 책임 있는 정부로 선택할 수 없는 정책"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윤 대통령이 재의를 결정한 취지'를 묻는 장동혁 의원의 질문에 "이미 41개 (농민 관련) 단체가 양곡관리법 개정안 제정에 반대하고 있다"며 "15개 지역 농협이 주최하는 간담회도 열었고 농민들과 소통한 결과, 양곡관리법은 진정으로 우리 농민을 위하는 법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답했다.
한 총리는 이어 "남는 쌀을 강제로 매수하게 하는 양곡관리법은 농민을 위하는 것도, 우리의 재정을 위하는 것도 아니"라며 "오히려 남는 쌀을 강제로 사들여 끊임 없이 생산 과잉을 유발하고 가격을 떨어지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쌀 가격을 떨어지게 만드는 정책은 책임있는 정부로선 선택할 수 없는 정책"이라며 "농민을 위해서라면 오히려 소비가 늘어나는 작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선의를 갖고 진행하는 정책이 결국 당사자를 힘들게 만드는 정책 사례들이 왕왕 있다"며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그런 정책 성격을 다분히 가지고 있는 정책"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장 의원은 민주당이 과반 의석 수를 토대로 법을 통과시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는 "민주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 통과는) 여당 의원들에 대한 표결권 침해"라며 "민주주의에 심각하게 위배되고 절차를 무시한 법들이 시행되기 전에 누군가는 이를 제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런 의미에서 (윤 대통령의) 재의 결정은 타당했다"고 평가했다.
"총리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vs "의원님이 듣고 싶은 말만 한다"
이어 신정훈 의원이 대정부질문에 나서면서 극명한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신 의원은 "윤 대통령은 폭락한 쌀 값을 정상화 해달라는 절박한 농심을 짓밟고 끝내 양곡관리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며 "입법권에 대한 중대 도전을 넘어, 쌀값 정상화에 대한 포기 선언"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신 의원은 "(한 총리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남는 쌀 강제 매입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전에 생산량이 조정되는 상황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사후적인 시장 격리는 극히 미미할 것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또 농림축산식품부 자료를 제시하며 "이명박 정부 당시 사전 생산량 조정만으로 과잉 생산을 완전히 해결한 사례가 있다"며 "당시 평균 506억원을 썼는데, (생산량 조정에 성공해) 시장 격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반면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사후적 시장 격리를 하느라 연 평균 5566억이 들었는데 쌀값은 대폭락 했다"며 "이게 (이런 일을 막자는 게)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취지"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 총리는 "보여준 자료는 미리 보지 못해 검토하지 못했지만 연구 기관에 따르면 올해부터 오는 2030년까지 쌀의 초과 생산량은 평균 11.3%에 이를 것으로 안다"며 "양곡관리법 발동 요건인 3~5%를 훨씬 벗어나고 있어 앞으로 단 한 해도 강제 매수 하지 않는 해가 없을 정도"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도 경제 상황을 봐서 필요할 경우엔 격리를 할 수 있다. 작년이 바로 그런 케이스"라며 "떨어지는 쌀 가격을 대규모로 시장 격리시켜 가격을 상승시켰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9월 쌀 값이 45년 만에 최대치로 폭락하자 정부는 초과 생산분보다 더 많은 쌀을 사들였다.
서로의 주장이 격해지면서 신 의원과 한 총리는 이날 말이 자주 겹쳤다. 이를 둘러싼 여야 의원들의 공방도 거세지면서 한때 장내는 마비 상태가 되기도 했다.
그러자 신 의원은 "일국의 총리로서 인격을 존중하고 있는데, 국민들과 국회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결국 (사전 수매, 사후 수매 중)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둘 것인지에 대한 문제"라고 정리했다. 이어 "자기 듣고 싶은 이야기만 계속 들으려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한 총리는 바로 "의원님께서 듣고 싶은 답변만 들으려 하는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이어 "강제 매수제도가 있는 한 선제적인 조정은 절대로 이뤄질 수 없다"며 "국가가 의무적으로 남으면 (쌀을) 사주는데 농사가 어떻게 선제 조정이 되겠냐"며 맞섰다.
한편 민주당은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새 법을 다시 발의하는 등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의사를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그런 만큼 양곡관리법을 둘러싼 정부·여당과 야당간 논쟁은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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