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모여, 잠실체육관 빌려서..." 어느 엄마의 꿈
[노서영, 박세은 기자]
지난 3월 7일, 서울시는 언론을 통해 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4월 1일부터 5일까지 공동으로 운영한 뒤 정식 추모공간 논의를 이어가자고 제안했다.
서울시가 사전협의 없이 분향소 공동운영안을 내놓은 지 열흘이 되던 3월 17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의 청년특보팀은 국회의원회관 용혜인 의원실에서 이태원 참사 유족 조미은씨를 만났다.
조미은씨는 배우였던 고 이지한씨의 어머니로,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고 한 달 조금 안 된 11월 22일 KBS뉴스에 출연해 유족의 심경을 밝혔다. 이태원 참사 유족으로 공중파 뉴스 출연은 최초였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조미은씨가 바란 철두철미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은 이뤄지지 못했고 유족을 향한 혐오표현도 멈춰지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를 지우려는 시도들에 맞서,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의 중요성과 참사 피해자의 권리를 알리기 위해 인터뷰를 청했다.
▲ 용혜인의원실 회의실에서 만난 조미은씨(희생자 이지한씨의 어머니) |
ⓒ 기본소득정책연구소 |
- 노서영 : 안녕하세요, 저희는 추모할 권리를 주제로 국회 토론회를 준비 중인 용혜인 의원실 청년특보팀입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넘었어요. 유족 분들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제가 보통 뉴스만 보는데 TV 채널을 돌리다가 웃긴 멘트를 보고 살짝 웃은 적이 있어요. 그 직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내가 지금 왜 웃고 있지? 제정신인가?' 5개월이 다 됐는데 저 영정사진이 진실이라는 걸 체감하지 못하고 있어요. 또 부모님들이 대체로 잘 못 드시거든요. 그러다가 어떤 음식을 먹으면서 문득 '이 음식이 이런 맛이구나' 느낄 때에도 굉장히 제 자신이 싫어져요. 부모로서 할 일을 다 못하고 있다고 느끼죠.
근데 어떤 이는 '저 사람들 밥도 먹네. 웃기도 하네' 이렇게 보죠. 제가 참사 후에 매주 지한이 밥상을 집에 차렸는데 마트를 못 가고 인터넷에서 재료를 주문했거든요. 지한이가 평소 먹고 싶어 했던 거를 걔가 가고 나서 시킨 거예요. 근데 배송 온 거를 아파트 주민이 보면 '저 사람들 애가 갔는데 잘 먹나 보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처럼 느껴요.
그런데 유가족들이 모이는 그 초라한 천막에서는요. 웃어도 되고 울어도 되고, 아무 얘기를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해도 되고, 뭐가 맛이 괜찮더라, 우리 아들이 먹던 건데 가고 나서 대신 먹어보니까 걔가 이걸 먹은 이유가 있더라, 이렇게 얘기하면서 치유가 되더라고요. 잠시나마 기억을 잊고 눈물을 잊고. 단 몇 시간의 치유인 거예요."
▲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인터뷰어 박세은 청년특보 |
ⓒ 기본소득정책연구소 |
- 박세은 : 유가족으로서 가장 먼저 언론에 출연하기를 결심하셨어요. 부당한 비난의 화살도 많이 쏟아졌는데 힘드셨을 것 같아요.
"아무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KBS 스튜디오에 나갔는지, 까마득한 옛날 얘기 같아요. 악성 댓글이 1000개 이상 달렸어요. 나라를 구했냐, 시체 팔아서 제2의 세월호 사건처럼 돈 뜯어 먹으려고 하냐 등등. 가장 참을 수 없던 말이 '텔런트 시체팔이 엄마'였어요.
녹사평역 분향소에서 제 바로 앞에서 누가 그 말을 퍼부었을 때, 구급차를 타고 집에 가서 8일 동안 못 일어났어요. 하루에 진통제 세 알씩, 스물네 알의 진통제를 먹고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요. 약을 먹고 몇 시간 지나면 다시 몸이 아프기를 8일을 반복하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TV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건, 제 아이에게 찾아온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고, 모든 국민에게 이 부당함을 알려야겠다는 일념 하나였어요."
▲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네 사람의 모습 |
ⓒ 기본소득정책연구소 |
- 노서영 : 그렇게 해서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국정조사에서 유가족의 참여가 제대로 보장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거의 모든 자리에 직접 참관했는데 국정조사를 어떻게 보셨는지요?
"국정조사에서 아쉬운 건 전문가 공청회와 유가족 공청회를 먼저 한 다음 청문회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에요. 여당 위원 7명이 한 가지 문제(의사 출신인 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닥터카'를 타고 현장에 간 일)만 반복해 제기하면서 시간을 끈 것에 대해 항의했지만 통하지 않았어요.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은 하나같이 몰랐다, 듣지 못했다, 보고를 못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알고 싶은 건 그날의 진실인데 위정자들 변명만 듣는 시간이 돼 굉장히 아쉬워요.
▲ 조미은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인터뷰어 양지혜 비서관 |
ⓒ 기본소득정책연구소 |
"서울시의 협박은 공권력을 동반하죠"
- 노서영 : 지난 3월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서울광장 분향소의 종료시점을 4월 초로 정해 언론을 통해 제안했는데요. 녹사평역 지하 4층보다는 진전된 내용의 안이라고 하지만, 그 안을 내밀며 계속 분향소 철거를 압박했습니다.
"'기억'은 다음 참사를 막는 첫 번째 관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기억해서 잊지 않아야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방할 수 있으니까요. 시청 앞 분향소에서 저희 부모들이 할 수 있는 일은 159명의 아름다운 사진을 매일같이 닦는 것밖에 없어요.
분향소 천장은 바람에 날아갈까 비가 샐까 케이블타이로 꽝꽝 묶어놨어요.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 볼품없는 분향소를 철거하겠다고 수차례 계고장을 보냈죠. 참사 다음날 눈물 흘리며 무한책임을 느낀다며 유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요. 기자들 앞에서 눈물을 닦는 걸 봤는데요. 그걸 악어의 눈물이라고 하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녹사평역에 있을 땐 '신자유연대'한테 공격을 많이 당했어요. 근데 신자유연대가 '빵칼' 같은 존재라면 시청 앞에 온 후로 서울시의 협박은 '식칼' 같았습니다. 신자유연대는 철거하러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저희 유가족들의 마음을 해치는 공격을 했죠.
그런데 시청에 와보니 계고장이 날아오고 경찰 수백 명이 둘러싸고 가벽이 설치되고 몸싸움이 일어나요. 서울시의 협박은 공권력을 동반하죠. 우리가 불법으로 천막을 쳤다며 법 조항을 들어가며 엄포를 놓아요. 제가 혐오발언을 듣고 8일간 못 일어나다가 어쨌든 다시 일어났는데, 서울시가 하는 언론플레이는 변호사를 대동해 맞대응을 해야 하는, 식칼 같은 위협인 거예요.
혹자는 최근 서울시가 제안한 '코오롱빌딩 1층'이 전보다 나은 제안이라고 해요. 하지만 그 뒤에는 4월 1일부터 5일까지라는 (분향소를 철거하라는) 칼이 숨어 있었잖아요. 저희가 시청 앞에 온 지 (인터뷰일 기준) 한 달 조금 넘었어요. 더 많은 시민과 만나서 이태원 참사를 더 알려야죠."
- 노서영 : 분향소 지킴이 프로그램도 운영하시는 것으로 아는데, 시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알려주시겠어요?
"글을 써주세요. 바른 말을 해주세요. 매일 저녁 7시, 토요일에는 6시 반에 하는 추모문화제에 오셔서, 우리 앞에서 쓰신 글을 읽어 주세요. 잘못한 자들에게 따끔하게 글로 질타해주세요. 시를 썼다면 시를, 노래가 있다면 노래를 불러주세요. 그것이 저희들을 도와주시는 가장 큰 힘입니다.
또 기자 여러분께도 부탁하고 싶어요. 분향소 앞에 정말 많은 기자들이 있는데 보도가 안 나와요. 기자라는 직업을 왜 선택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주세요.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면 대통령에게도 당당하게 잘못된 점을 말하는 기자들이 많기를, 힘없는 유가족들을 위해 바른 말을 하는 기자들이 늘어나기를 소망합니다."
▲ 마지막 질문에 답하고 있는 조미은씨의 모습 |
ⓒ 기본소득정책연구소 |
- 노서영 : 마지막 질문입니다. 용혜인 의원실에서 4월 중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청년특보팀에서는 5월 중 국회 토론회를 개최하려고 해요.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연대하려는 청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제가 지금 55세인데 10년이 가면 65세가 될 거고 일본 아카시시(市) 참사처럼 이 일이 오래 간다면 75세가 될 거예요. 시간이 흐를수록 힘이 빠지고 진상규명은 갈수록 어려워질 거예요. 그럴 때 오래 이 일을 기억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해봤어요.
우리 일을, 이 울분을 대신해서 기억해주고 행동해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청년들이겠구나. 남은 내 아이가 동생의 일을 기억하고 오빠의 일을 기억해야 하는데, 부모들 숫자에 비해 아이들 숫자가 훨씬 적거든요. 그럼 그들이 10년, 20년, 30년 후에 또 다른 참사를 막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다른 젊은이들과 꾸준히 만나야 이 참사가 오래 기억될 수 있어요. 기본소득당에서 하는 것과 같이 청년들과 하는 프로젝트는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가장 긴 추모의 방법 같아요.
언젠가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전국의 젊은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어떨까 그려보기도 했어요. 잠실체육관을 빌려서 추모 콘서트도 하고 발언도 하고요. 대통령과 사퇴하지 않고 있는 책임자들에게 보란 듯이, 10년 안에, 5년 안에 젊은이들이 한 번 모였으면 좋겠어요. 나도 같이, 유가족들도 같이, 젊은이들과 함께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추모를) 공동의 과제로 생각하고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이 될 것 같아요."
- 양지혜 : 그 순간에 저도 한 명이 돼 서로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얘기하고 싶은 건 '아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거예요. 밥 먹으러 갔다가 못 돌아왔으니까. 9년 동안 꿈을 위해 먹고 싶은 걸 제대로 먹지 못했거든요. 먹다 남은 다이어트 식품이 냉동실에 꽉 차 있는데 그걸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르겠고, 버릴 수도 없고, 그냥 간직하고 있어요. 그런 평범한 엄마입니다. 너무 마음이 아파요."
- 노서영 : 더 이상 유가족만 남겨두지 않도록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참사의 진실이 규명되고 피해자의 권리가 보장되도록 저희도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꼭 기억해주세요."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10.29 진실버스'를 타고 열흘 간 전국을 돌고 있는 4월 3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목표치인 5만 명 서명 받기를 완료했다. 서울시가 분향소 공동 운영 기한으로 내걸었던 4월 5일에는 시청 앞 분향소에서 이태원 참사 159일 시민추모대회와 행진이 열릴 예정이다. '식칼'과도 같은 서울시의 협박에 유족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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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인터뷰는 기본소득정책연구소의 계간지 <인커밍> 2023년 봄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필자는 노서영 기본소득당 기획조정실 부실장, 양지혜 기획국장, 박세은 청년특별보좌역으로, 모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의 청년특보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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