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기 4·6·8시간 재택근무 선택할 수 있다면…
HD현대오일뱅크에 재직 중인 남모(36)씨는 최근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했다. 지인들은 회사를 다니면서 아이까지 키우느라 힘들지 않냐고 묻는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남씨는 “사내 어린이집에 있는 0세반에 아이를 맡기고 일하면서도 틈틈이 보러 갈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며 “아이들의 등·하원 시간이 비슷하고 최장 10시까지 돌봐주니 쫓기듯 업무를 처리하지 않고 새 프로젝트까지 기획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휴직 전보다 오히려 업무 집중도가 더 높아진 것이다.
기업들이 저출산 시대 직장인들의 육아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다양한 출산과 육아 지원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성별에 상관 없이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돌봄 공백을 최소화하도록 육아기 재택근무제 등을 함께 운영한다. 난임 임직원에 대한 치료비 지원 및 휴가 제도도 도입하고 있다. 기업이 출산·양육 친화적 기업문화를 만들면 직원들이 경력 단절 없이 업무 역량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육아휴직을 가장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직장인은 공무원과 은행권 종사자다. 최대 3년까지 쓸 수 있다. IBK기업은행은 2019년 국내 은행권 최초로 육아휴직 기간을 2년에서 3년 이내로 1년 연장했다. 공무원도 현행법에 따라 최장 3년까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임신한 것을 알아채자마자 육아휴직을 써도 눈치를 안 보는 분위기다. 남자 직원들도 쉽게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주요 대기업도 최대 2년까지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법정 휴직 기간 1년에 사내 제도 1년을 추가 보장하는 형태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LG전자, 롯데그룹, CJ그룹,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등이 있다.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 가능하다. 삼성전자는 육아휴직이 가능한 자녀 기준을 법정 기준(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이상인 만 12세 또는 초등학교 6학년 이하까지 확대했다.
육아휴직은 물론 안정적인 임신·출산을 위한 복지도 제공한다. CJ그룹과 SK이노베이션은 임신 위험기(12주 이내 36주 이후)에 하루 2시간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했고 SK하이닉스는 임신 전(全) 기간으로 확대 적용했다. 아울러 SK이노베이션은 임신기 근무 중 태아의 상태를 살필 수 있는 ‘검진 시간 제도’를 운영한다. 28주까지는 4주마다 1회를 출산이 임박한 임신 37주 이후에는 1주마다 1회의 검진 시간을 제공한다.
최근 난임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난임 직원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난임 치료비와 함께 최대 6개월의 난임 휴직 제도를 도입했다. 롯데지주, 롯데면세점, 롯데케미칼 등도 휴가와 시술비를 지원한다. 육아휴직 후 회사에 안정적으로 복귀·정착할 수 있도록 시스템도 촘촘히 구축했다. CJ그룹은 ‘신생아 돌봄 근로시간 단축제’를 활용해 생후 3개월까지 1일 2시간씩 단축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포스코도 ‘경력 단절 없는 육아기 재택근무제’를 도입해 만 8세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가 있는 직원이면 양육 상황에 맞춰 4시간, 6시간, 8시간(전일) 재택근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삼성전자는 복직 임직원의 업무 적응과 성장 비전 등을 지원하는 ‘육아휴직 리보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HD현대그룹은 경기도 판교에 있는 ‘글로벌R&D센터’에 사내 어린이집 ‘드림 보트(Dream Boat)’를 운영한다. 만 0세부터 만 5세까지의 자녀를 둔 임직원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4월 사옥 이전을 앞둔 이마트도 신사옥의 사내 어린이집 규모를 30% 확대하고 정원을 소폭 늘릴 계획이다.
이 같은 제도의 영향으로 대기업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증가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남·녀 직원의 육아휴직 사용은 2020년 3879명에서 2022년 4364명으로 늘었다. 이마트는 육아휴직을 사용한 직원 중 남성 비중이 2020년 대비 약 20%p 상승했다. 롯데는 여성 직원은 100%, 남성은 육아휴직 대상자 중 90%가 사용했다. 대기업이 육아휴직자 등을 고려해 인력을 배치하는 인사 체계를 갖추고 있고 대체 인력 확보가 용이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반면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등에서는 법정 육아휴직도 제때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300명 이상 기업체의 64.5%가 육아휴직을 사용했지만 50~299명 규모에서는 14.2%, 5~49명 규모에서는 16.2%만이 육아휴직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에서 중소 건설업체 관리자로 일했던 안모(34) 씨는 “사장이 경리 업무 대체자를 구하지 못해 임신 기간 동안 내내 앉아서 일했다. 제대로 된 몸조리를 하지 못하면서 꼬리뼈가 무너졌다는 진단을 받고 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정부가 육아휴직 대체인력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고, 보육 지원을 늘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대기업이라 해도 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목소리도 있다. 대기업 관계자는 “육아휴직을 하면 승진이 늦어질 수도 있고 휴직에 따른 경제적 타격도 있어 선택이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도 “1년 이상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지만 기존에 근무하던 곳으로 다시 복귀하지 못할 수 있다. 육아휴직을 쓰면 격오지(隔奧地)에 간다는 우스갯소리는 여전히 나온다”고 했다.
조정한 기자 j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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