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든 해변도로,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

진재중 2023. 4. 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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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금진해변에서 정동진항까지 이어지는 헌화로

[진재중 기자]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이 든다. 마치 선상 위에서 맛보는 짜릿함이다. 가끔씩 급커브의 스릴도 느낀다. 바다를 감상하다 자칫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헌화로다.

기암절벽과 함께 꼬불꼬불한 길은 파도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해안도로다. 한쪽은 무너져내릴 듯 아슬아슬한 기암절벽이고, 다른 한쪽은 금방이라도 파도가 길 위로 올라올 듯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바다다.
 
▲ 절벽과 헌화로 심곡항과 헌화로 절벽이 한눈에 들어온다(2023.4.3)
ⓒ 진재중
헌화로는 강원도 강릉 금진해변에서 정동진항까지다. 금진에서 심곡 구간이 먼저 개설되었고 이어서 심곡항에서 정동진 구간이 연장 개설 되었다. 헌화로다운 구간은 금진항에서 심곡항까지다. 해안절벽과 바다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해안도로가 이 구간이다. 파도가 크게 치는 날이면 도로가 침수되어 차량 이동이 통제된다.
   
▲ 헌화로 심곡항에서 금진항까지 해안도로(2023.4.3)
ⓒ 진재중
 
그런데 도로 이름이 왜 헌화로일까? <삼국유사>에 실린 <헌화가>를 들여다 본다.
붉은 바위 끝에(제4구 꽃으로 연결), (부인께서) 암소 잡은 (나의) 손을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시지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 헌화가의 현대어 풀이다.(정연찬)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에 나온 헌화가(獻花歌) 소개는 이렇다.

'<헌화가>와 관계 되는 수로부인은 성덕왕 때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가는 순정공의 부인으로 여러 번 신물에게 붙잡혀 갔었을 정도로 절세의 미녀였고, 그 자태는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였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한 천 길 벼랑 위의 철쭉꽃을 꺾고 또 가사를 지어 바친 노옹은 암소를 끌고 가던 사람이다.'

신라시대 강릉태수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은 절세미인으로 유명했다. 수로부인이 강릉으로 가던 중 바닷가에서 잠시 쉬게 되었다. 그때 절벽에 핀 고운 철쭉꽃을 보고 따다줄 이가 있느냐 물었으나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지나가던 한 노인이 꽃을 따서 수로부인에게 바치며 <헌화가>를 불렀다고 전한다. 그 설화의 배경과 이곳의 풍광이 잘 맞아떨어져 '헌화로'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 기암절벽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헌화로(2023.4.3)
ⓒ 진재중
 
지금도 헌화로는 천 길 벼랑 같다. 오를 엄두를 낼 수 없는 기암괴석이다. 그 낭떠러지 바위 위에 꽃이 피어 있다. 철쭉 대신 진달래다. 암소를 끌고 가던 노웅이 어떻게 그 꽃을 꺾어 왔을까. 
 
▲ 암반위에 핀 꽃 절벽위에 핀 진달래와 소나무(2023.4.3)
ⓒ 진재중
동해안 바닷가 4월이면 바다색이 가장 아름답다. 비췻빛으로 물든 바다색은 영롱함을 더한다. 검은 암반과 어우러진 초록빛을 품어내는 바다색은 잘 그려진 서양화 한 폭을 보는 것 같다. 그 바위에 자생하는 해조류는 또 다른 볼거리다. 미역, 톳, 지누아리, 누덕 나물 등이 한참 무성하게 자랄 때다. 이곳에서 자생하는 자연산 돌김은 임금께 진상하였다고 하는 특산품이다.
  
▲ 바닷속 해조류 암반위에서 자라는 해조류(2023.4.3)
ⓒ 진재중
 
몇 굽이를 돌고 돌다 보면 항포구가 나온다. 심곡항이다. 양쪽으로 산맥이 뻗은 가운데에 놓인 산간오지라서 6.25 전쟁이 난 줄을 몰랐다는 이 마을은 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자그마한 어촌 마을이다.
심곡항은 동해안에서 유일한 조약돌 해변이었다. 조약돌 구르는 소리에 젖어 심신을 달래던 자그마한 항포구였다. 어선 몇 척을 정박하기 위해서 인공 시설을 한 이후 조약돌은 보이지 않고 돌 구르는 소리도 사라졌다.  
 
▲ 심곡항 산정상에서 바라본 마을, 산맥으로 둘러쌓여 아득함을 준다(2023.4.3)
ⓒ 진재중
심곡항에서 남쪽으로는 해안단구를 따라 부채길 있다. 차로는 이동할 수 없고 걸어서 갈 수 있는 해안길이다. 심곡항에서 정동진선쿠루즈 주차장까지다. 강릉 바다부채길은  2300만 년 전, 지각 변동의 여파로 생겨난 국내 유일의 최장 길이 해안 단구 지역이다. 정동진의 '부채끝' 지명과 함께 탐방로가 위치한 지형의 모양이 마치 동해를 향해 부채를 펼쳐 놓은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정동 심곡 바다부채길'로 명명되었다.
  
▲ 부채도로 심곡항에서 정동진항까지 연결된 해안비경
ⓒ 진재중
 
헌화로는 기암절벽에 피어나는 진달래와 비췻빛 해변을 보며 지친 몸을 달랠 수 있는 길이다. 봄꽃들이 고개를 숙이고 나무들이 새싹을 틔울 이 시기에 헌화로에 와 수로부인에게 꽃을 따서 바치며 노래를 선사한 노인을 생각하며 콧노래를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
 
▲ 해안가 기암괴석 심곡해안로 바위
ⓒ 진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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