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예수처럼 입성했다"…법원 출석 전, 뉴욕 폭풍전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법원 출두를 하루 앞둔 3일(현지시간) 밤 뉴욕 맨해튼 트럼프타워 앞은 늦은 시간까지 인파로 북적였다.
초유의 전직 미국 대통령 기소 관련 소식을 타전하는 각국 취재진 카메라가 길 건너편 인도를 가득 메웠고, 여기저기서 스마트폰 거치대를 들고 실황 중계하는 유튜버들의 목소리가 엇갈렸다. 어느새 관광 코스가 된 트럼프타워 주변 바리케이드 앞에선 행인들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이들이 한데 뒤섞이며 빚어내는 혼란스러운 풍경이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직전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와의 과거 성관계 입막음을 위해 돈을 건네고 회사 회계장부를 조작한 혐의로 지난달 30일 기소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소인부(認否) 절차를 밟기 위해 하루 전날인 3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을 떠나 뉴욕으로 이동했다. 기소인부 절차는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기소 내용을 고지하고, 피고인으로부터 공소사실에 대한 인정 또는 부인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날 낮 자택을 출발해 자신의 이름이 대문자로 크게 적힌 전용기에 탑승한 트럼프는 플로리다주 팜비치 국제공항을 이륙한 지 약 2시간 30분 뒤인 오후 3시 38분쯤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도착했다.
이후 오후 4시 15분쯤 푸른색 정장에 빨간색 넥타이 차림의 트럼프 전 대통령이 뉴욕 맨해튼의 대표적 번화가 5번가에 위치한 트럼프타워 앞에 나타나자 일부 지지자들은 ‘우리는 트럼프를 사랑한다’는 구호를 외치고 ‘트럼프가 대선에서 이겼다’ 등이 적힌 피켓을 흔들며 지지 시위를 벌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한 뒤 트럼프타워로 들어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택을 나서 비행기에 오르는 장면부터 차를 타고 이동하는 행렬까지 미 CNN과 폭스뉴스 등 대부분 방송사가 동선을 생중계하는 등 그의 뉴욕행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지난달 21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체포설을 흘리며 지지자들에게 ‘저항’을 촉구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3일 뉴욕으로 떠나면서는 “마녀사냥이다. 한때 위대했던 미국이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비판 글을 올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출발한 마러라고에서 공항으로 가는 길목에는 새벽부터 지지자들이 모여 깃발을 흔들었고, 뉴욕 트럼프타워 근처에선 지지자들이 ‘트럼프 2024년 대통령’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쳐 그를 환영했다.
자신을 공화당 지지자라고 소개한 앤더슨 오스틴은 “전 대통령을 기소하는 것은 헌법을 무시하는 행위”라며 검찰과 조 바이든 정부를 비난했다. 그러면서 “고난주간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처럼 트럼프도 뉴욕으로 들어왔다”며 이번 기소를 트럼프에 대한 부당한 박해로 보는 인식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날 트럼프타워 앞에는 '트럼프를 체포하라' '트럼프를 영원히 가두라'는 손팻말을 흔드는 트럼프 반대자들의 목소리도 컸다. 민주당 지지자인 게리 세이즈는 "의회 폭동을 일으켰던 트럼프가 또 지지자들에게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며 "트럼프를 영원히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타워로부터 차로 25분 정도 떨어진 맨해튼 형사법원에도 건물 전체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되고 경찰이 경비 태세를 강화하면서 긴장감이 돌았다. 기소인부 절차가 진행될 형사법원에서 2021년 1·6 의사당 난입 때와 같은 트럼프 강성 지지자들의 폭력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4일 트럼프타워에서 형사법원까지 약 6.4㎞ 거리를 국토안보부 산하 비밀경호국 자동차 행렬의 호송을 받으며 이동할 예정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뉴욕경찰(NYPD)이 3만5000명에 달하는 소속 경찰관들에게 출동 대기 명령을 내리고 특히 법원과 뉴욕 주요 시설의 경비를 강화했다고 보도했다.
대표적인 친트럼프 정치인인 극우 성향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공화·조지아)이 4일 예정된 트럼프 기소 항의 시위에 참석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긴장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거짓 정보와 증오의 메시지를 퍼뜨리는 것으로 잘 알려진 마조리 테일러 그린과 같은 사람이 이 도시에 온다"면서 "여기 있는 동안 최대한 예의 바르게 굴라"고 경고했다.
뉴욕=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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