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동남아'가 보여준 진짜 여행의 묘미
[이준목 기자]
코로나19의 기나긴 그림자에서 벗어난 대한민국 방송가에서 최근 '여행 예능'이 활기를 띠고 있다. 하지만 너무 뻔한 소재와 겹치는 장소의 선정이 무료하다고 느껴지는 요즘, 여행예능 프로그램 <아주 사적인 동남아> 속 '아저씨 4인방'의 엉성한 여행기가 눈길을 끈다.
▲ tvN 예능 <아주 사적인 동남아> 한 장면. |
ⓒ tvN |
지난 3일, <아주 사적인 동남아>에서는 이선균-장항준-김도현-김남희가 함께하는 본격적인 캄보디아 여행기가 그려졌다. 캄보디아에서의 여행 첫날 밤을 보낸 멤버들은 다음날 아침 곳곳에서 오케스트라처럼 울려퍼지는 닭울음 소리에 잠을 설쳤다.
장항준은 "쟤들은 안 자냐? 한 놈이 계속 선동하는 것 같아"라며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했고, 이선균은 "저 닭들의 달걀을 가지고 기필코 프라이를 해먹어야겠어"라며 복수(?)를 다짐했다.
먼저 기상한 김도현-김남희는 아직 꿈나라를 헤메고 있는 형님들보다 먼저 일어나 스라스렁호수로 아침 산책에 나섰다. 앙코르와트 안에 위치해 있는 동네는 곳곳이 유적지 그 자체였다.
'재벌즈' 형제는 호수를 돌아본 뒤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김도현은 차가운 음료로 안구찜질을 하며 "우리같은 안구돌출형 눈알은 마사지를 해줘야 한다"며 외모 자폭개그를 던졌다. 이에 김남희는 "왜? 우리 얼굴이 요새 유행하는 얼굴이다. 무쌍에 덜 하얀 피부톤에, 연기 잘하고, 인간미 있고"라며 위로했다.
아직 숙소에서 꿈나라에 빠져있던 이선균-장항준의 형님 라인도 간신히 눈을 떴다. 동생들의 연락에 간신히 몸을 일으킨 이선균은 장항준을 깨우며 "동생들은 훨씬 일찍 일어났어. 재벌집 놈들이"라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여전히 잠에 취한 장항준은 "닭보다 더한 놈들"이라며 멘붕에 빠진 모습이었다.
다시 한 자리에 모은 멤버들은 동생들이 구입해 온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멤버들은 대여한 오토바이를 타고 집근처 유적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유일하게 오토바이를 못타는 장항준은 평소의 너스레는 간 곳없이 이선균의 등뒤에 착 달라붙어 공포에 떠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멤버들은 영화 <툼 레이더> 촬영지로도 전세계에 알려진 '타프롬 사원'을 찾아 현지 가이드 봉구씨와 함께 유적지 관람에 나섰다. 캄보디아인이지만 대구에서 3년간 지내며 한국 이름까지 생겼다는 봉구씨는, 능숙한 한국말로 유적지를 안내하며 캄보디아와 타프롬의 역사를 소개했다.
1431년 외세 침략으로 고대 수도인 앙코르가 프놈펜으로 천도될 당시 문헌이 소실되면서 사원은 수백년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19세기 유적지가 재발굴되면서 한 프랑스 탐험가는 앙코르 유적지를 '밀림 속에 지은 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멤버들은 타프롬의 돌탑 위로 자라난 신비의 스펑나무,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는 '통곡의 방' 등을 찾아가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쌓았다. 사원 투어를 마친 멤버들은 김남희가 찾아낸 현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즐겼다.
멤버들은 아저씨답게 모두 여행을 가서도 가족 사진은 찍어줘도 정작 본인 사진은 잘 찍지 않는다는 공통점에 공감했다. 이선균은 결혼 7년차에 아내 전혜진과 둘만의 태국 여행을 다녀왔던 이야기를 전했다. 자녀들에게는 촬영을 다녀온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이선균은. "큰애가 제일 아끼던 애착인형을 주면서 '나 보고 싶을 거잖아'라고 하더라"는 일화를 밝히며 "그랬더니 둘째도 눈치를 보더니 똑같은 행동을 하더라. 너무 미안했다. 우리는 뻥치고 태국가고 있는데, 그때 하마터면 울뻔했다"라고 뭉클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하지만 장항준은 곧바로 "그건 유산 더 받으려고 그런거다"라고 태클을 걸며 감동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오후에 멤버들은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장항준은 자신의 데뷔 과정을 회상하며 "영화연출부 조감독을 시작으로 예능 FD와 작가, 시나리오 작가, 영화 감독을 거쳐 이제 '예능인'이 되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남희가 "젊으실 때는 방송국 분위기가 엄청 엄격하지 않았나? 해맑은 성격 때문에 선배들에게 구박받았을 것 같다"며 궁금증을 보이자 장항준은 고개를 저으며 "나는 모두의 귀여움을 받았다"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당시 애교만이 아니라 실력과 성실함도 겸비했다고 자부한 장항준은 "그때는 일을 시키는 것이든 배우는 것이든, 일하는 자체가 모두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맘에 안드는 선배를 만나면? 이라는 질문에는 "나를 좋아하게 만들면 된다. 나 스스로를 요정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천연덕스럽게 응수했다.
이선균이 2004년 출연한 영화 '알포인트'의 촬영지인 캄폿으로 가기 위한 버스와 열기구 티켓을 예매했다. 이어 멤버들은 현지 맛집을 찾아 개구리,악어, 캥거루, 타조기, 양고기등 12가지 이색 고기 재료를 넣어 먹는 전골 요리를 즐겼다.
이선균 앞에서 벌이는 '이선균 성대모사' 대결도 즉석에서 펼쳐졌다. 김남희는 의외로 당사자도 인정할 만큼 중저음의 보이스톤을 선보이며 이선균의 목소리와 흡사하다는 평을 들었다. 장항준은 자타공인 닮은꼴인 개그맨 김국진의 "여보세요" 성대모사를 재현하여 단 한 문장만으로 폭소를 자아냈다.
숙소로 돌아온 멤버들은 좀더 속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김남희는 JTBC <재벌집 막내아들>이후 인기와 관심이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부담은 안 된다. 그렇다고 너무 좋지도 않다. 그냥 똑같아"라고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이에 장항준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매사 즐기지 않으면 행복이 와도 느끼지 못하고 나중에야 느끼는 것 같다"라고 조언했다.
이선균은 "장항준 형님을 가장 리스펙트하는 부분이 형의 태도다. 항상 해피하고 즐겁다. 그리고 그 기운을 주변에 전파한다"라고 평했다. 이에 장항준은 "마흔을 넘어가며 혼자 다짐한 게 있다. 밖에서 지인에게 친절한 것 이상으로 가족에게 친절하자는 것"이라고 고백했고, 동생들도 크게 공감했다.
장항준은 "돌이켜보면 항상 가장 많이 짜증내는 대상이 가족이더라"고 이야기했다. 김남희는 "인간이 보통 가족에게 짜증을 가장 많이 낸다고 하더라. 가족은 내 사람이기 때문에 내 맘에 안들거나 마음대로 안될 때 바로 화가 나는 것"이라며 공감했다.
장항준은 아내 김은희 작가를 사랑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도 공개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내의 부탁이라면 언제든 "알겠어"라고 답하고 최대한 들어주기 위하여 노력한다고 밝혔다. 아내가 한번씩 "오빠, 진짜 고마워"라고 표현할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항상 밝은 모습을 유지하는 장항준의 힘은 가족으로부터 받는 따뜻한 사랑에 있지 않을까.
▲ tvN 예능 <아주 사적인 동남아> 한 장면. |
ⓒ tvN |
▲ tvN 예능 <아주 사적인 동남아>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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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동남아>는 최근 방송가의 수많은 여행 예능 중에서도 가장 여행다운 여행에 충실한 프로그램이다. 근사한 관광지와 볼거리, 현지 맛집, 미션 수행, 멤버들간의 만담과 케미 등 여행을 즐기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여행의 가장 본질은 힐링이며, 진정한 힐링은 여행하는 사람 스스로가 행복을 느끼는 데 있지 않을까.
1회에서 여행을 앞두고 예능 초보인 김남희가 방송과 여행 사이에서 '무엇을 보여줘야하는지'를 두고 고민하자 장항준은 "시청자는 생각하지 마라. 오로지 나의 행복. 너의 행복만 생각해라"고 조언한다. 언뜻 농담 같지만 알고 보면 이 여행의 본질을 가장 꿰뚫는 정답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선균-장항준-김도현-김남희 4인방은 '이선균의 캄보디아 영화촬영지 추억 여행'이라는 최소한의 콘셉트를 제외하면, 오롯이 여행 그 자체에만 집중한다. 작위적으로 분량을 만들기 위하여 보여주기식 오버액션을 하지도 않고, 여행 예능 서사에서 흔히 등장하는 갈등이나 고생도 없다.
여행의 속도, 분위기, 스케쥴 모두 30-50대 중년 아저씨들의 감수성과 흐름에 맞춰서 평화롭고 잔잔하게 진행된다. 그래서 여행 예능을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여행 자체를 하는 느낌이 든다.
멤버들은 사소하고 실없는 농담에도 웃음꽃이 터지고 티격태격하지만 그 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있다. 여행지의 풍광과 음식을 여유롭게 즐기면서 살아온 인생과 일생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털어놓는다. 배우나 감독으로서가 아닌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멤버들을 통해 "이런게 진짜 친구들의 여행이지"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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