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심장 장태산을 지켜라”...대전·금산 산불 사흘째 사투[르포]

최종권 2023. 4. 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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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산불이 사흘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4일 산불 진화 헬기가 호수에서 물을 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장태산 인근까지 산불 번져, 헬기 19대 투입


4일 오전 대전시 서구 장안동 골짜기. 민가에서 200m 정도 떨어진 산에서 뿌연 연기와 함께 숲이 타들어 가는 모습이 보였다. 장태산휴양림 안쪽에 있는 이 마을엔 주민 40여 가구가 산다. 박권호(67)씨는 “산불이 마을로 번지지 않을까 밤새 불안해서 잠을 못 잤다”며 “오전 6시부터 산 너머에 연기가 보이더니 몇 시간 만에 민가 근처까지 불이 번졌다”고 불안해했다.

그는 “장안동은 금산 방향과 논산 방향 양쪽에서 산불이 다가오고 있어서 고립될 우려가 있다”며 “구청이나 소방에서 아직 대피하라는 안내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주민 하모(51)씨는 장안동에 사는 노부부를 대피시키기 위해 설득하고 있었다.

하씨는 “불이 장태산 쪽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는 말을 듣고 어제 부모님 집에서 잠을 잤다”며 “오후에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주민 10여명은 도로에 나와 산불이 번지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한 주민은 “길을 따라 펜션이 많아서 산불이 확산하면 재산 피해가 클 것”이라고 걱정했다.
대전 산불 사흘째 불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소방차가 물을 뿌리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진화율 82% 속도…주민들 “밤새 불안에 떨어”


지난 2일 낮 12시19분쯤 발생한 대전 서구 산직동 산불은 3일째 진화 작업이 한창이었다. 3일 오후 한때 진화율이 80%대까지 올랐으나 건조한 대기와 강한 바람에 불을 끄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특히 밤사이 장태산휴양림 인근과 저수지 일대의 화선이 늘었고 반대로 진화 완료된 구간이 줄며 진화율이 67%까지 떨어졌다.

산림청과 소방당국은 날이 밝자 헬기 19대, 진화 인력 1968명, 소방차 120대를 투입해 불길을 잡고 있다. 오후 2시 기준 진화율은 82%로 높아졌다. 산불영향 구역은 736㏊로 넓어졌으나, 화선은 4.3㎞로 오전 5시와 비교해 2㎞ 이상 줄었다. 박은식 산림청 국제산림협력관은 “장태산을 중심으로 양쪽 기슭에 화선이 걸쳐있다”며 “민가에 산불이 번지지 않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오후 6시 전까지 주불을 잡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불이 난 곳이 대전 서구와 충남 금산군 복수면 신대리가 맞닿은 곳이다. 아직 인명 피해는 없으나 산직동 소재 민가와 암자 등 건물 3채가 불에 탔다. 인근 마을 주민 650명이 경로당 등으로 대피했다.
대전 산불이 시작한 서구 산직동 한 마을에 건물이 모두 불에 탔다. 프리랜서 김성태


요양원·중증장애 시설 입소자 발동동


현장을 찾은 이장우 대전시장은 “대전시민의 심장과 같은 장태산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장태산휴양림 입구에 들어서자 뿌연 연기가 날리고 있었다. 산림 안쪽 접근이 어려운 소방차는 도로변에 물을 뿌리고, 산불진화 헬기가 장태산 인근을 날아다니며 물을 뿌렸다. 숲 안쪽에 대전시 공무원 100여명이 긴급 투입돼 불을 끄는 모습도 보였다.

장태산에는 국내 대표적인 메타세쿼이아 숲이 있다. 이국적인 경관과 산림욕을 즐기러 많은 사람이 찾는다. 스카이웨이, 전망대, 비탈 놀이 시설 등 메타세쿼이아 숲 체험 시설도 있다. 대전시는 장태산과 인근 노루벌 일대를 국가정원으로지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산불이 난 산직동 인근에는 노인요양시설과 장애인보호시설이 많았다. 전날까지 기성종합복지관 등에 16개 시설 입소자 600여명이 대피하기도 했다. 불이 진화된 곳 주변에 있는 시설 입소자 일부는 복귀했다. 이날 기성종합복지관 1층, 3층에는 아직 돌아가지 못한 중증장애인과 시설 종사자들이 산불이 꺼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시설종사자 김모(44)씨는 “지적·지체 장애를 가진 입소자가 사흘째 복지관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오늘 오후 늦게라도 시설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대전 산불로 인해 기성종합복지관으로 대피한 시설 입소자들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산림청 “일몰전 주불 진화 목표”…민가 2채 전소


산불이 지나간 산직동 일부 마을에는 전소한 건물이 뼈대만 남은 채 있었다. 김용춘(72)씨는 “다행히 우리 집에는 불이 번지지 않았다”며 “산에서 난 불이 20~30분 만에 집 앞에 있는 민가 2채를 몽땅 태웠다”고 말했다.

대전=최종권 기자 choi.jong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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