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키운다? 소나무가 무슨 죄냐…침엽수, 미세먼지 줄인다"

강찬수 2023. 4. 4. 15: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설악산 대청봉의 침엽수. 기후변화로 많은 나무가 말라죽고 있다. 강찬수 기자

계속된 건조한 날씨로 전국이 산불 연기로 뒤덮이고, 숲이 흡수했던 온실가스도 다시 하늘로 날아가고 있다.
온실가스가 기후변화를 낳고, 기후변화가 가뭄과 산불로 이어지고….

이러다가는 끝내 기후 재앙을 막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왕산 일대에 발생한 산불이 광범위하게 번지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식목일을 앞두고 공우석(65) 전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를 만났다.

지난 2월 퇴임한 그는 최근 '침엽수의 자연사'(지오북)라는 책을 냈고, 기후변화생태계연구소를 만들어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나무와 숲의 이력서', '바늘잎나무 숲을 거닐며' 등 15권의 저서를 낸 그는 기후변화가 식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소나무 탓 아니라, 사람 잘못"


공우석 전 경희대 교수. 강찬수 기자
기자와 만난 공 소장은 "요즘 산불이 빈발하면서 소나무 숲이 도마 위에 오르는 것 같다"면서 "산불에 취약하기는 해도 숲이 무슨 죄가 있나, 사람 탓이지"라고 말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대표적 침엽수인 소나무는 송진 등 기름 성분이 20%를 차지해 불에 잘 타고, 솔방울이 멀리 날아가 산불을 크게 키우기도 한다. 가벼운 솔방울에 불이 붙으면 바람을 타고 먼 거리까지 날아가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된다.

공 소장은 "아무리 소나무 숲이 많더라도 불씨를 가져다 산불을 내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며 "숲을 탓할 게 아니라 사람이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Q : 우리 산림에서 침엽수림이 차지하는 비중은.
A : "우리 국토의 62.6%가 산지이고, 산지의 38.7%를 침엽수림이 차지한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섞여 자라는 혼합림이 27.8%, 나머지 33.5%가 활엽수림이다. 우리 토종 침엽수는 28종이고 여기에 외래 침엽수가 50종가량 된다. 은행나무도 외래 낙엽 침엽수로 분류된다. 상록 침엽수는 난방으로 미세먼지 오염이 심한 겨울과 이른 봄, 활엽수가 잎을 떨군 시기에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다."

〈침엽수의 자연사〉 책 표지, 공우석 전 교수가 쓴 책이다.

소나무 숲을 많이 조림한 것은 문제 아닌가.
A : "과거 헐벗은 산지에 조림할 때 씨앗과 묘목을 구하기 쉬운 리기다소나무나 일본잎갈나무(낙엽송) 등 외래종 침엽수를 많이 심었다. 활엽수는 상수리나무가 대표적인데, 도토리는 식용으로 사용하기 급급해 묘목이 없었다. 소나무는 건조하고 척박하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잘 자란다. 기름진 토양에서는 활엽수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


극상림까지 150년은 지켜봐야


공우석 전 경희대 교수가 자신이 쓴 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찬수 기자
기후변화 탓에 소나무숲이 줄어든다는 지적이 있다.
A : "소나무는 산자락에 잘 자란다. 벌목과 개발 압력, 소나무 재선충 등 병충해 때문에 줄어들고 있다. 소나무에 온난화는 기회가 될 수도, 위기가 될 수도 있다. 장소에 따라 다르다. 한라산에서는 온난화로 소나무가 자라는 곳이 정상부 쪽으로 확대돼 군락을 이루게 됐다. 기존에 소나무가 자라던 곳에는 활엽수가 자라기도 한다. 아(亞)고산대 침엽수인 가문비나무·분비나무·구상나무 등은 피해를 보게 된다. 산림청에서도 이들 종을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Q :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종은.
A : "아고산대의 키 작은 침엽수, 즉 관목성 침엽수들이 가장 취약하다. 눈잣나무, 눈측백, 눈향나무 등이다. 키가 1m 안팎으로 작고 옆으로 자랐다고 해서 눈(누운)이란 접두어를 붙이지만, 이른 봄 눈 속에서도 자란다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 기온이 상승하면 다른 침엽수, 활엽수, 풀이 자라서 키 작은 침엽수를 덮으면 어린나무가 자랄 수 없는 것은 물론 다 큰 나무도 살 수가 없다. 기후변화로 건조 일수가 느는 것도 문제다. 지구온난화의 대표적 피해종이다. 한반도가 남방한계선이라 식물지리적으로,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종인 만큼 키 큰 침엽수보다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진나 2021년 9월 설악산 대청봉 등산로 인근에서 만난 눈잣나무.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잎이 누렇게 말라가고 있다. 강찬수 기자

온실가스 흡수량을 높이기 위해 숲을 벌목하고 다시 조림해야 한다 주장이 있다.
A : "산림이 가진 기능은 온실가스 흡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자원 함양, 공기 정화, 생태계 서비스와 생물다양성 제공, 사람의 휴양 공간 등 숲이 가진 여러 가지 기능 중 하나다. 탄소 감축을 숲에만 의존하면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 재조림한 단일 수종으로 여러 혜택을 줄 수 있나. 우리나라에서 극상림(極相林, Climax Forest)을 보려면 150년은 지켜봐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온실가스 흡수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다. 외국 자료나 시뮬레이션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온실가스 흡수량은 늘리려면 도시 자투리땅에도 나무를 심고, 가로수도 더 많이 심어야 한다"


삼국시대 주목이 아직도 생존


지리산 침엽수 집단고사. [녹색연합]
오래전 과거에도 한반도에 소나무가 많았나.
A : "황해도 사리원이나 전북 진안 등에서 나온 솔방울·솔잎 화석을 보면, 중생대 백악기 무렵부터 소나무 숲이 한반도에 있었다. 종은 알 수 없지만, 소나무 속(屬) 식물이었는데, 공룡 시대부터 한반도에 소나무가 자랐다고 볼 수 있다. 자생종 침엽수 중에는 강원도 정선 두위봉(1466m)에는 약 1400년 된 주목이, 외래 침엽수 가운데는 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가 1100살 정도로 가장 나이가 많다."

Q : 소나무가 우리 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 같다.
A : "유럽이 참나무(Oak) 문화권이라면, 한국은 '소나무 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다. 조상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부정을 타지 않게 한다며 금줄에 고추·숯과 함께 솔가지를 매달았다. 아들이면 소나무를, 딸이면 오동나무를 심었다. 소나무 숲에서 놀고,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다가, 죽으면 소나무 관에 들어간다고 할 만큼 한국인은 평생 소나무와 더불어 살아왔다. 소나무는 땔감이 되기도 하고, 춘궁기에는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기도 했다. 가을에 송편을 찔 때도 솔가지를 썼다. 소나무 숲에서 송이도 얻었다."

공우석 전 경희대 교수. 강찬수 기자

앞으로의 계획은.
A : "지리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개마고원 등 북한의 산림 생태계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 당장은 자료가 부족해도 책으로 묶어놓으면 다음 사람이 작업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자료를 모아 책으로 내고 싶다. 남북한의 동식물 명칭이 달라지면서 이제는 학명으로 확인해야 할 정도가 됐다. 몇 년에 한 번씩이라도 전문가가 만나 용어를 통일하려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통일 전이라도 북한 조림을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