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추월 시간문제"…K팝 때문? 프랑스가 한국어 빠진 이유
“부산에 간 적이 있나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공립고등학교인 끌로드모네고의 한 교실. 한국인 교사의 질문에 금발 여학생과 갈색 곱슬머리 남학생이 손을 들었다. 두 학생은 “여름에 가봤어요”라고 한국어로 천천히, 또박또박 대답했다.
매주 수요일 오후 4시에 파리 고등학생 40여명이 한국어 수업을 듣기 위해 이 학교를 찾는다. 끌로드모네고는 한국어를 포함해 독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 7개 언어의 정규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파리 시내의 다른 학교에서도 수업을 들으러 올 수 있다.
이날 수업의 주제는 ‘경험에 대해 묻고 답하기’였다. 교실 앞 대형 스크린에 베르사유궁전과 경복궁의 사진을 보여주고 어디냐고 묻자 곳곳에서 “베르사유”, “경복궁”이라는 대답이 들렸다. 교사가 “누가 살았어요?”라고 묻자 학생들은 “왕이 살았어요”라고 말했다.
뒤이어 센강과 한강, 에펠탑과 남산타워의 사진이 나타났다. 학생들은 둘씩 짝지어 센강이나 한강에서 배를 타본 경험을 묻고 답했다. 단순히 언어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두 문화를 비교하며 가르치는 것이 프랑스 외국어교육의 특징이다.
4년만 3배 증가…“日 추월 시간문제”
3학년 학생 리자 타르(18)는 “중학교 2학년(한국 중1) 때부터 케이팝(K-POP) 춤과 한복에 관심이 생겨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며 “한국어로 소통하기까지 3~4년 정도 걸렸다”고 말했다. 타르의 선배인 이만 엔고보(21)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해 파리시테대학교 한국학과에 진학했다.
한국어를 선택한 것이 대학 입시에서도 도움이 됐냐는 질문에 엔고보는 유창한 한국어로 답했다. “제가 한국어를 잘 이해할 수 있어서 면접하는 사람이 관심이 생겼어요.” 엔고보는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서 문화 교류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며 “나중에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한국어의 인기를 견인하는 것은 케이팝이다. 끌로드모네고 교사는 “학생들이 다른 문화에 열려있는 편이다. 케이팝이 프랑스에서도 핫하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8년째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조윤정 교사는 “2017년부터 방탄소년단(BTS)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았다”며 “학생이 아닌 프랑스인들도 한국 문화나 영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시청에서 성인을 위한 수업이 이뤄지고 있고 어학원도 많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공학도들도 한국 유학에 관심”
프랑스 대학 한국학과의 경쟁률은 수십 대 일을 웃돌아 한 자릿수 대인 같은 대학 다른 학과보다 높다. 파리시테대와 국립동양언어문화대학교(INALCO)의 경우 약 20대 1, 보르도몽테뉴대학의 한국어과 경쟁률은 35대 1에 이른다.
국립국제교육원이 주관하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 응시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 응시자는 780명으로 전체 국가 중 19번째, 아시아권이 아닌 국가 중에서는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았다. 조윤정 교사는 “3학년에겐 TOPIK 응시를 권장하고 있다. 적어도 1급은 보게 해서 자신감을 키우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어 전공자 진로도 고민해야”
한국어 정규 수업을 확대하고 현지 맞춤형 교재를 개발해야 하는 등 과제도 남아있다. 한국어 수업을 하는 학교 60곳 중 35곳은 정규과목이 아닌 아틀리에 수업(방과후학교)이다. 윤강우 원장은 “프랑스 임용시험에 한국어 과목이 아직 없다”며 “아틀리에 수업을 늘려서 한국어가 정규과목으로 전환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라고 말했다. 윤 원장은 “한국어의 인기에 비해 취업 자리는 많지 않다. 한국어 전공자들의 진로도 같이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파리=장윤서 기자 chang.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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