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 대가' 김은희 작가의 시작은 멜로였다
[양형석 기자]
지난 2005년 박찬욱 감독과 <친절한 금자씨>의 각본을 공동집필하며 데뷔한 정서경 작가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박쥐>,<아가씨>,<헤어질 결심>까지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모든 장편영화의 각본작업을 함께 했다. 하지만 정서경 작가는 2018년 이보영 주연의 <마더>를 시작으로 작년 김고은과 남지현, 박지후가 출연한 <작은 아씨들>의 각본을 쓰면서 최근 드라마로 활동범위를 넓히고 있다.
오는 5일 개봉하는 장항준 감독의 신작 영화 <리바운드>는 <수리남>의 권성휘 작가와 <시그널>,<킹덤>의 김은희 작가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김은희 작가는 <싸인>과 <유령>,<시그널>,<킹덤> 등 여러 인기 드라마의 각본을 쓴 '장르물의 대가'로 유며하지만 영화 시나리오는 거의 쓴 적이 없다. 김은희 작가는 현재도 오는 6월 방송 예정인 김태리 주연의 SBS 드라마 <악귀>와 <시그널> 시즌2의 각본작업에 여념이 없다.
▲ <그해 여름>은 '장르물 전문' 김은희 작가가 처음으로 썼던 시나리오 데뷔작이다. |
ⓒ (주)쇼박스 |
영화 시나리오로 데뷔했던 장르 드라마 대가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김은희 작가는 졸업 후 예능작가로 활동하다가 1998년 <박봉곤 가출사건>의 시나리오를 썼던 장항준 감독(그 시절엔 작가로 불렸다)과 결혼했다. 결혼 초기만 해도 작가로서 큰 꿈이 없었던 김은희 작가는 작가로 활동하며 감독 데뷔를 준비하던 남편이 수기로 쓴 시나리오를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을 하다가 점점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김은희 작가의 공식 데뷔작은 2002년 <품행제로>를 만들었던 조근식 감독의 차기작 <그 해 여름>이었다. 하지만 <그 해 여름>은 절정의 인기를 달리던 이병헌과 떠오르던 신예배우 수애가 출연했음에도 전국 33만 관객에 그쳤고 김은희 작가는 자신이 멜로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010년 <위기일발 풍년빌라>를 통해 드라마 작가로 데뷔한 김은희 작가는 2011년 <싸인>의 각본을 쓰며 지상파에 진출했다.
<싸인>은 법의학을 소재로 한 쉽지 않은 장르물이었음에도 25%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고 김은희 작가가 '장르물 전문작가'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김은희 작가는 <싸인> 후에도 <유령>, <쓰리 데이즈>처럼 한국 드라마에선 보기 드물었던 전문적인 분야의 장르물을 많이 시도했다. 물론 김은희 작가가 썼던 모든 작품들이 언제나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보장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장르물'이라는 한 우물을 판 김은희 작가는 2016년 tvN드라마 <시그널>을 통해 극찬을 받으며 작가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그리고 2019년과 2020년에 두 시즌에 걸쳐 방송된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을 통해 '조선 좀비물'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킹덤> 이후 '멜로에 김은숙 작가가 있다면 장르물엔 김은희 작가가 있다'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김은희 작가의 위상은 대단히 높아졌다.
2021년 전지현과 주지훈 주연의 <지리산>은 평가나 흥행에서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지만 <지리산>의 결과가 김은희 작가의 입지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스스로 평범한 드라마 집필에는 재능이 없다고 했던 김은희 작가는 오는 5일 개봉하는 실화 바탕의 스포츠 영화 <리바운드>의 각본작업에 참여했다. 만약 17년 만에 영화 시나리오를 쓴 <리바운드>마저 흥행에 성공한다면 김은희 작가의 작품세계는 또 한 번 크게 넓어질 것이다.
▲ <그해 여름>은 영화의 흥행과 별개로 수애의 '리즈시절'을 볼 수 있는 귀한(?)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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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할 무명시절 없이 2001년 드라마 <맛있는 청혼>으로 데뷔한 손예진은 곧바로 영화 <취화선>과 <연애소설>,<클래식>,<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를 통해 젊은 스타배우로 떠올랐다. 하지만 손예진의 팬들은 2003년 손예진이 출연했던 드라마 <여름향기>를 잊지 못한다. 비록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켰던 전작 <겨울연가>에 비해 시청률이 썩 높은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손예진의 '리즈시절' 미모를 마음껏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그 해 여름> 역시 흥행성적과 별개로 수애의 동양적이고 단아한 매력을 실컷 감상할 수 있는 작품으로 수애의 팬들에게 평판이 높은 작품이다. 드라마 <러브레터>와 <해신>,영화 <가족>,<나의 결혼 원정기>를 통해 주목 받던 수애는 <그해 여름>에서 시대의 상처 속에 가족을 잃었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수내리의 도서관 사서 정인을 연기했다. 실제로 수애는 영화 속에서 예쁜 외모와 함께 정인의 깊은 감수성을 잘 표현했다.
이병헌의 전작은 김지운 감독의 누아르 영화 <달콤한 인생>이었다. 물론 이병헌은 2001년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대학생 연기를 한 적이 있지만 30대 중반의 나이에 대학생 연기는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해 여름>에서는 정인이 물고기가 돌로 변해 돌에서 종소리가 났다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석영에게 들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석영은 엔딩장면에서 정인과 함께 왔던 산에 찾아가 그녀를 떠올리며 눈물 짓는다. 이 장면은 석영과 정인의 취조실 대면장면과 함께 <그해 여름>을 대표하는 '눈물벨'이다. 영화에 나오는 만어사는 경남 밀양에 실제로 존재하는 절로 영화에서 정인이 설명하는 전설은 만어사에서 실제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의 민규동 감독과 <만추>의 김태용 감독,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임찬상 감독과 함께 영화 아카데미 13기 출신인 조근식 감독은 2002년 류승범 주연의 <품행제로>를 연출하며 주목 받았다. <그 해 여름>으로 춘사영화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조근식 감독은 2016년 <엽기적인 그녀2>를 연출했지만 전국 7만 관객에 그쳤고 현재는 독립영화의 총괄 및 제작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 '동안'과는 거리가 있었던 오달수(왼쪽)는 불혹은 앞둔 나이에 <그해 여름>에서 대학생 역할을 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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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에서 오달수는 대학생 역을 맡았다. 물론 오달수가 연기한 균수는 수내리 이장(정석용 분)으로부터 학생들을 데리고 온 교수로 오해 받을 정도로 노안이라는 설정이지만 여러 작품에서 중년 연기를 많이 하는 오달수가 대학생 역을 맡으면서 관객들은 영화에 집중하기가 더욱 어려웠다는 평이다.
1999년 MBC 공채 28기 탤런트로 데뷔한 이세은은 2002년 <야인시대>에서 청년 김두한(안재모 분)을 사모하는 <야인시대> 세계관 최고미녀 나미꼬를 연기하면서 유명세를 떨쳤다. <야인시대> 후 <대장금>,<굳세어라 금순아> 등에 출연한 이세은은 <그해 여름>에서 윤석영 교수의 제자로 졸업 후 방송국 작가가 된 이수진을 연기했다. 하지만 영화의 시점 대부분이 1960년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영화에서 이세은의 비중과 역할은 크지 않다.
천만 영화 세 편을 포함해 작년에도 <공조2:인터내셔날>로 698만, <올빼미>로 332만 관객을 동원했던 스타배우 유해진도 <그해 여름>에 특별출연했다. <그해 여름>은 유해진에게 개봉시기를 기준으로 2006년9월에 개봉했던 <타짜>의 다음 작품이었다. 하지만 쉴 새 없이 수다를 떨면서 관객들을 즐겁게 했던 <타짜>의 고광렬과 달리 <그해 여름>에서는 까칠한 성격의 방송국 PD 역으로 <타짜>의 고광렬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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