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양곡법 재의요구권 행사… "전혀 도움 안되는 포퓰리즘 법안"(종합)
국회 본회의 통과 13일만에 거부권 행사
3주 연속 국무회의 주재… '1호 법률안 거부권'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 취임 후 ‘1호 법률안 거부권’ 행사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2016년 5월(국회법 개정안) 이후 7년 만이다.
윤 대통령은 특히 막대한 혈세 낭비를 언급하며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이제 국회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다시 의결하려면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3분의 2 이상 찬성이라는 까다로운 문턱을 넘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정부는 이번 법안의 부작용에 대해 국회에 지속적으로 설명했지만 제대로 된 토론 없이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지난달 23일 국회 본회의를 넘어선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 요구안을 의결했다.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13일, 정부에 이송된 지 나흘 만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해당 법안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며 반대 의사를 피력해왔고 정부·여당 역시 개정안 시행시 쌀 생산 과잉 심화, 막대한 재정 소요 등을 지적하며 반대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우리 농정의 목표는 농업을 생산성이 높은 산업으로 발전시켜 농가 소득을 향상시키고 농업과 농촌을 재구조화해 농업인들이 살기 좋은 농촌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개정안에 대해서는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정부의 농정 목표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들여서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는 게 윤 대통령의 판단이다.
윤 대통령은 이어 "쌀 생산이 과잉되면 오히려 궁극적으로 쌀의 시장 가격을 떨어뜨리고 농가 소득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법안 처리 후 40개의 농업인 단체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전면 재논의를 요구했다. 관계부처와 여당도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검토해서 제게 재의 요구권 행사를 건의했다"는 상황도 부연했다.
대통령실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을 대통령이 직접 나서 거부권을 행사한 것에 적지 않은 의미를 두고 있다. 윤 대통령이 3주 연속으로 국무회의를 주재한 건 지난해 5월 취임한 이래 처음이다. 통상 국무회의는 대통령과 총리가 격주로 주재하고 순방 및 주요 사안이 있을 경우에만 2주 연속으로 진행했다.
이 때문에 이번 주 국무회의는 한덕수 총리가 주재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심의·의결하고, 이를 대통령이 재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국민들에게 한일 관계 정상화의 중요성을 설득하고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에 대한 견해도 직접 언급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는 건전 재정과 북한에 대한 경고 메시지까지 내놨다.
윤 대통령이 직접 국무회의를 주재한 것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방일 성과, 근로시간 개편안, 건전 재정 못지않은 중대 사안으로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민생과 관련된 안건이나 주요 메시지가 필요할 경우에는 반드시 본인이 나서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현재 양곡법 개정안과 관련해서는 이미 농민단체 30여곳 이상이 입장을 낸 데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 주무부처 장관의 대통령 보고에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도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통해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밝힌 상태다. 대통령실은 양곡관리법을 시작으로 이어질 방송법 개정안이나 노란봉투법 등과 관련해서도 여론 수렴절차를 거친 후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2016년 5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상임위의 상시 청문회 개최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 7년 만이라는 점도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한 요인으로 꼽힌다. 박 전 대통령도 당시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위해 직접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삼권 분립 원칙을 훼손해 위헌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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