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직폭]①괴롭힘 부인하는 가해자 징계… 法 "절차 따져야"
생계를 위해 '지옥'으로 출근하는 근로자들이 있다. 우월한 위치를 악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고통을 주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이다. 이들에게 보람찬 일터이어야 하는 직장은 악몽의 공간이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터질 때마다 비판 여론이 달아오르지만, 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충남에서 국공립 어린이집 교사가 직장에서 따돌림 등을 당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직장에서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이를 금지한다.
하지만 신고 건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2019년 7월부터 지금까지 접수된 누적 신고 건수는 2만3541건이었다. 시행 첫해 6개월간 2130건에서 2020년 5823건, 2021년 7774건, 지난해 7814건을 기록했다.
가해자들이 자신의 괴롭힘 행위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금전적 배상 책임 및 회사의 제재 처분을 거부하면, 괴롭힘 사건이 소송전으로 장기화해 피해자들의 고통이 가중된다. 직장에서 내리는 징계에 가해자가 불복하면 징계 처분의 적법성을 다투는 행정소송으로 이어진다.
행정소송에서 부딪히는 대표적인 쟁점은 징계 처분의 '절차적 정당성'이다. 가해 행위가 인정돼도 제재를 내리는 과정의 절차가 적법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송에서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징계 처분 자체가 취소되면,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직장 내 징계위원회도 같은 사안으론 다시 징계를 내리기 어렵다.
권재성 법률사무소 원탑 대표변호사는 "행정법원은 징계 과정에서 가해자의 방어권이 보장됐는지, 변명할 기회가 있었는지, 불복할 기회가 있는 점을 알려줬는지 등을 토대로 가해자가 받은 직장 내 징계가 절차적으로 적법한지 여부를 가린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사용자가 징계위원회를 열 때는, 징계위원회를 근로규칙 또는 노사협약에 맞게 구성됐는지부터 점검해야 하며, 가해자에게 어떤 사안으로 징계위를 여는지 제때 통보해 해명 기회를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모 대학 A교수는 2019년 갈등을 겪던 조교들에게 사표를 쓰도록 강요하거나, 조교들에 대한 권고사직 협조문을 자신이 임의로 대학교에 제출했다. 대학 당국은 A교수를 조사하고 견책 처분을 했고 그는 "학교의 징계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며 불복 소송을 냈다. 고 주장했다. 징계위원 명단을 알려주지 않았고, 위원에 대한 기피 신청이 가능하다는 점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는 A교수의 청구를 기각했다. 주장과 달리 A교수가 교원징계위원회 회의 이전에 징계위원들을 파악하고 있었고, 기피 신청권 행사를 방해받았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반면, 같은 법원 행정3부는 지난 2월 직장 내 괴롭힘 등을 이유로 해고된 중소기업 직원에 대해 "회사의 부당해고가 맞는다"고 판단했다. 이 직원은 지난해 후배 직원 3명에게 매일 퇴근 후 장시간 전화해 회사를 비난하고, 퇴사를 강요한 사유 등으로 해임됐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를 부당해고로 보고 직원을 구제했다.
이 사건에서는 회사가 중노위 판단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재판부는 "회사는 당사자들을 중재하는 시도를 하지 않았고, 주의나 경고 조치로 잘못을 개선할 기회도 부여하지 않은 채 곧바로 해고 처분했다"는 이유였다.
한편 법원에선 '내부고발자 보호'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 제재'라는 2가지 가치 중 후자를 선택한 행정소송 판결이 나왔다. 중앙부처 공무원 B씨는 지난 2020년 2월 직원들에게 '갑질'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중앙징계위원회에서 '직위 해제'됐다. 같은 부처 하급 공무원이 인사 고충을 제기해서 내부 조사를 거쳐 내린 중징계였다.
B씨는 국민권익위에 "나는 초과근무수당 부정 수급 비리를 공익신고했다가 음해당해 불이익을 받은 것'이라며 징계 효과를 취소해달라고 신청했고, 권익위는 그 효과를 취소시켰다.
그러자 B씨 소속 부처는 원래 내린 징계가 옳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부처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 행정10부는 "'공무원 부패방지라는 공익이 다소 훼손되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에 따른 피해가 더 크면 안 된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B씨가 소속 부처의 부정부패를 해결하는 공익적 활동을 한 것과 상관없이, 평소 근무 중 부하직원들에게 폭언이나 인격모욕 등을 하면 징계 대상이 된다는 설명이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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