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조건이 학교 자퇴…SM, 사교육 1번지에 만든 학원 정체
“사인 주면 바로바로 출발해. 무릎 위로 정확하게 들고. 무게중심 위로, 시선 정면. 중심 잡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SM유니버스(SMU)' 학원 2층 강의실 한쪽 벽면은 거울로 돼 있었다. 지난달 28일 찾은 이곳에서는 16살 남녀 학생 10명이 강사 지시에 맞춰 워킹 연습 중이었다. 학생들은 여러 개의 핀 조명이 비추는 매끄러운 바닥 위로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들은 세계적 패션쇼 런웨이에 서는 톱모델을 꿈꾸며 지난 3월부터 이 학원에 다니고 있다. 워킹 수업이 끝난 뒤에는 '스피치' 강의가 이어진다. 'K스타'가 되려면 말하기 능력도 필수이기 때문이다.
K스타 ‘사교육’ SMU…올해 첫 신입생 경쟁률 2.5대 1
SMU에 합격하면 학교를 자퇴해야 한다. 법적으로 학원이지만 사실상 학교처럼 운영해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 5일 수업을 한다.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지원할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라 중학생은 자퇴 절차가 복잡하다. 이 때문인지 이번 1기생 대다수는 고1에 해당하는 16세였다. 첫 모집의 입학 경쟁률은 2.5대 1이었다. 외국인 학생은 K문화를 배우려는 학생을 위한 '한류비자'가 만들어지는 대로 뽑을 계획이다. 법무부·문화체육관광부에서 준비 중이다.
매일 3시간씩 ‘국영수’ 필수…“시간낭비 안 해서 좋다”
검정고시가 있지만 자퇴가 학생·학부모에게 쉬운 선택일 리 없다. 하지만 학생들은 ‘시간이 아까워서’ SMU를 택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수강생은 “일반학교에 다닐 땐 항상 지루하고 학교에서 잠만 잤다. 내가 수업시간에 깨어 있을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 이곳에 와서 처음 알았다”고 했다. 또 다른 수강생도 “일반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해 고민하느라 시간만 보냈는데, 이곳에서는 시간낭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코로나19 이전부터 K스타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 설립을 준비해왔다. 당초 대안학교와 같은 학교 설립도 준비했으나 절차가 복잡해서 학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3년제 과정이지만 다른 학원과 마찬가지로 중간에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 SMU 총책임자인 홍종화 교장은 “중도에 그만두는 학생이 있더라도 최소한의 학업 능력은 책임져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검정고시 프로그램을 커리큘럼 안에 넣었다”고 했다.
실제로 아이돌 연습생 중에는 학업을 병행하지 못해 학교를 자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SMU는 대학을 진학하려는 학생은 검정고시 이후 수능 준비도 연계해줄 방침이다. 외국인 학생이라면 미국 검정고시(GED)나 대입 자격 시험(SAT)도 준비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오후 ‘전공시간’…댄스·작곡 맞춤 교육
점심 시간부터는 본격적인 전공 수업이 시작된다. 오전 수업을 마치면 지하 1층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한 쪽에는 체지방을 측정할 수 있는 인바디 기계가 있다. K스타가 되기 위해 체중 조절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후 1시부터 6시까지는 전공별 실습, 심화 수업을 진행한다. 기자가 방문한 날에도 댄스 전공 학생들은 기본 스텝을 반복하고, 보컬·프로듀싱 학생들은 컴퓨터로 작곡 코드를 짜고 있었다. 실습 뿐 아니라 예술사·음악사 등의 이론 수업도 있다. 오후 6시부터는 ‘야간자율학습’시간이다. 오후 9시까지 각자 개인 연습을 할 수 있다.
연습생 아닌 ‘학원생’일 뿐…‘꿈 장사’ 비판도
비판과 우려의 시선도 있다. 학원비는 월 220만~260만원으로 강남 재수종합학원과 비슷한 편이다. 하지만 다른 실용음악학원과 비교하면 수업 시간이 더 길더라도 비싸게 느껴질 수 있다. 서울의 한 실용음악학원 관계자는 “SM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갖고 장사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고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놓친다는 우려도 있다. 자퇴를 해야 하는 만큼, 선택에 따른 기회비용이 지나치게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제대로 된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지 않은 기관이 늘어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이 짊어져야 한다”고 우려했다.
K문화 인기와 더불어 아이돌·연기·모델 지망생은 계속 늘고 있다. 다른 기획사에서도 SMU와 유사한 형태의 교육기관을 운영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홍종화 교장은 “연습생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없는 학생까지도 굳이 받아 교육시키는 곳이 아니다”며 “학업, 인성, 전공 모두 제대로 가르쳐 높은 수준의 대중문화 예술인을 양성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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