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을 대하는 마음이 이렇게나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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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혜 기자]
아침저녁은 다소 쌀쌀한 공기가 맴돌지만 한낮에 내리쬐는 햇살은 따듯하다. 날씨만 봐도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옷이 얇아졌다. 곳곳에서 카메라 소리가 연신 들려온다. 꽃을 찍거나 꽃 옆에 선 누군가를 찍어준다.
동네 아이란 아이들이 모두 나온 듯한 거리에서 아이들을 쉽게 마주한다. 친정아버지는 동창 모임을 가기 위해 아침 서둘러 출발했지만 주말 나들이객으로 차가 막혀 오후 늦게 도착하셨다고 했다. 인간 지표를 통해 다시 한번 봄기운을 느꼈다.
엄마는 늘 꽃을 보면 지나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어 내게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딸! 이 꽃 참 예쁘지 않니?' 매년 같은 꽃이지만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이라며 찍어 보낼 때마다 나는 건조하게 답했다. '하여간 꽃 좋아하셔.' 꽃을 찍는 엄마의 마음을 알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봄의 계절을 물씬 느낀다.
흑과 백만 있을 것 같던 세상이 노란 개나리, 분홍 진달래 물결로 채색되었다. 특히 만개한 벚꽃은 사람들의 미소를 활짝 띠게 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여기저기 벚꽃을 심어논 덕분에 이제는 주변에서 벚꽃을 쉽게 볼 수 있다.
▲ 나뭇가지에 핀 벚꽃 나뭇 가지에 핀 벚꽃 |
ⓒ 강은혜 |
지난 주말, 나도 올해의 벚꽃을 보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마실을 나갔다. 벚꽃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생명처럼 다가왔다. 오늘의 날씨, 지금 이 꽃, 올해 계절을 내일, 내년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할 수도 있기에.
드라마 <더 글로리> 어느 회차에서 빌라 주인 할머니(손숙)가 어린 문동은(송혜교)에게 이런 대사를 친다. '물이 차다. 그치. 우리 봄에 죽자.' 자살을 하려는 사람 옆에 자살을 시도하는 또 다른 사람을 보고 구하려는 장면, 죽으려던 순간에도 계절을 느끼며 다음을 기약하는 장면. 서로를 위해 내민 손으로 봄까지 살 수 있는 생명을 주었다. 그렇게 견뎌내다 보면 마침내 봄이 온다. 그런데 봄이 오면 더더욱 죽을 수가 없다. 싱그러운 봄이 오면 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눈물이 흘렀다.
임신 중 유방암 3기 말 판정을 받은 후 지난 2년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출산 직후 항암 치료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가혹했다. 몸조리는 고사하고 제발 살 수만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임신으로 인해 몸무게가 불었고 항암으로 머리카락은 한 올 남김없이 빠졌다. 원래도 미인은 될 수 없었지만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미(美)의 기준은 대체 무엇이었는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해가 넘어가고 계절은 바뀌었지만 내겐 추운 겨울로 남아있던 시간이다. 내내 겨울일 것만 같았던 작년의 봄이 떠올랐다. 우연히 벚꽃을 봤었다. 유방암 수술을 무사히 끝내고 방사선 치료를 위해 병원을 들락날락하던 그때가 바로 벚꽃 시즌이었다.
치료 대기 시간이 길어져 병원 뒤편을 거닐다 벚꽃길을 보게 된 것이다. 사람들의 미소, 흩날리는 꽃비가 나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는 것이라는 걸 깨우쳤지만 그래도 봄을 보니 살고 싶었다. 작년의 벚꽃은 남편과 병원에서 함께 보며 말했었다. '우리 내년에는 딸아이 손잡고 함께 보자.'
▲ SNS에 인증하기 바빴던 벚꽃 사진. |
ⓒ 최은경 |
예전엔 SNS에 보여주기 위한 벚꽃 인증을 하기 바빴다. 옷을 한껏 차려입고 외모를 단장했다. 벚꽃은 나를 더 돋보이게 하거나 나의 젊음을 더 예쁘게 남겨두기 위한 들러리일 뿐이었다. 사진을 찍어주는 상대에게 주문도 한다. '다리 길게! 알지? 아래서 비스듬한 각도로 찍어줘.' 그러고 주변을 둘러보면 남성들은 하나같이 구부정한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봄이며 벚꽃이며 중요치가 않았으므로 엄마가 꽃을 사랑하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미(美)의 기준이 온전히 타인에게 머물러 있었다. 남에게 예뻐 보이기, 그것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벚꽃의 꽃말은 종류에 따라 그 의미가 조금씩 다르지만 서양에서는 정신적인 아름다움, 내면의 미(美)라 불린다. 뻔한 이야기지만 이제는 벚꽃의 꽃말처럼 그 무엇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먼저인 삶을 산다. 예전의 외모로 돌아갈 수 없으니 어떤 면에서 보면 자신없어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벚꽃을 보는 나의 내면만큼은 어느 때보다 진실하다. 올해의 벚꽃은 아이의 손을 잡고 구경한다. 작년에는 느끼기 힘들었던 감정이 솟구쳤다. 굳이 먼 길 찾지 않아도, 집 근처에 활짝 핀 벚꽃만 구경해도 가슴이 콩닥콩닥 설렜다. 봄의 생명력으로 화창하게 핀 벚꽃에게 주문을 걸었다. 내년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봄을 맞이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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