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상의 코멘터리] '제주 4ㆍ3 사건'의 정치학
1. 제주 4ㆍ3 사건은 75년이 지난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입니다.
추념일을 맞아 여야 정치권의 공방이 날카롭습니다. 국가수사본부장 내정자(정순신 전 검사)의 고등학생 아들이 제주 출신 학급동기를 ‘빨갱이 XX’라고 불렀다는 학폭사건까지 떠오릅니다.
2. 제주 4ㆍ3 만큼 복잡하고 비극적인 사건도 드뭅니다.
그래서 사건을 보는 시각이 극과 극으로 갈립니다. 우파는 ‘빨갱이 무장폭동’이라 주장합니다. 좌파는 ‘독재권력의 민중학살’이라 반박합니다. 거대한 역사적 사건의 어느 한쪽만 보면 이런 극단적 평가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3. 크게 보자면 4ㆍ3은 해방후 격변하는 국제정치의 희생양입니다.
해방직후 한반도는 좌익이 지배했습니다. 좌파가 주도한 인민위원회가 사실상 정부였습니다. 제주도 인민위원회는 특히 강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냉전에 접어든 상황에서 미국은 인민위원회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남한에 우파 단독정부를 구성하고자 총선(1948년 5월 10일)을 강행했습니다.
4. 총선에 반대한 무장봉기가 1948년 4월 3일 새벽 제주 전역에서 일어났습니다.
강경좌파인 남조선노동당 제주도당이 주도했습니다. 파출소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고 ‘반미ㆍ반독재’민중봉기를 선동했습니다. 여기까지만 주목하자면 4ㆍ3은 ‘빨갱이 무장폭동’ 맞습니다.
5.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초강경대응에 나섭니다.
군과 경찰, 그리고 서북(평안도)에서 남하한 우익청년 중심‘서북청년단’까지 토벌대로 투입했습니다. 이후 낮에는 토벌대가, 밤에는 (남로당) 무장대가 섬을 지배하면서 무고한 희생이 반복됐습니다. 특히 토벌대의 중산간 마을 방화와 학살은 잔혹했습니다. 이 대목에 주목하자면 4ㆍ3은 ‘민중학살’입니다.
6. 제주사람들은 4ㆍ3을 얘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직도 아프기 때문일 겁니다. 뭍에서 몰려온 정치인들은 여전히 4ㆍ3을 정치공세의 기회로 활용하는데 열심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슬픈 제주의 봄입니다.
〈칼럼니스트〉
20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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