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 사장님]①"연체는 곧 부도"...이자 내려고 직원 자른 중소기업
연체와 동시에 은행 연체금리 3%P 더 붙어
"부도 안 내려면 임금은 미뤄도 이자는 내야"
경기도 안성에서 디스플레이 제품용 필름을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지난달 직원 30명 중 4명을 내보냈다. 은행 대출을 갚다 못해 내린 결정이었다. "공장 문 연 지 15년 만에 처음으로 작년에 적자가 났어요. 인건비와 원자잿값은 뛰는데 매출은 떨어지고, 이 와중에 이자까지 오른 게 융단폭격이었습니다. 사실 다른 것보다 은행 대출이 가장 무서워요. 한 번이라도 제때 못 갚으면 연체 이자율이 적용돼서 낼 이자가 엄청나게 불어나거든요. 부도 안 내려면 무조건 이자부터 내야 합니다. 요즘 이자 내려고 직원들 월급도 제때 못 주거나 저처럼 아예 직원을 줄이는 회사들이 나타나고 있어요."
"연체는 곧 폐업"
중소기업 운영이 어려워진 대표적인 이유는 네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인건비 상승, 원자재비 상승, 경기 악화, 금리 상승. 하지만 이 중에서도 발등에 떨어진 불은 이자다. 연체가 시작되는 순간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이 연체 기업에 매기는 추가금리는 연 3%포인트다. 최대금리는 15%까지로 상한선을 정해놨다. 2018년까지만 해도 연체 기간에 따라 6~9%포인트까지 가산금리를 부여했었는데 과도하다는 이유로 낮춘 것이 지금 수준이다.
특히 제조업종의 중소기업들이 문제로 손꼽힌다. 창업할 때부터 건물과 기계를 구입하려고 수십억 원에 달하는 시설자금을 은행으로부터 빌린 곳이 대부분이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2~3%였던 금리는 5~6%로 이미 두 배 넘게 올랐다. 여기에 연체 시 3%포인트 금리가 더 붙으면 8~9%에 이르게 된다. 10억원을 빌린 경우라면 연간 이자비용이 작년 3000만원(금리 3%) → 올해 6000만원(금리 6%) → 9000만원(연체 시)이 된다. "연체는 곧 부도"이라는 게 중소기업들의 토로다.
실제 전국의 부도법인수는 늘어났다. 중소벤처기업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분기별 부도법인수는 1분기 37개 → 2분기 34개 → 3분기 30개 → 4분기 48개로 집계됐다. 대출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경기가 악화됐던 연말에 부도법인이 급증한 것이다.
중소기업 연체, 대기업·가계보다 훨씬 악화
못 버티는 중소기업들은 연체의 늪에 속속 빠지고 있다. 최근 떠오른 연체율 위기의 진원지도 중소기업이다. 이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국내은행의 부실채권 현황'을 봐도 알 수 있다. 작년 4분기에 새로 발생한 부실채권 규모를 살펴보면 중소기업이 유독 눈에 띈다. 3분기 1조2000억원에서 4분기엔 1조7000억원으로 5000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기업(5000억원)의 신규 부실채권 규모는 변함이 없었고,, 가계 부분(6000억원→7000억원)에서 1000억원 늘어났다.
은행 대출금 중 연체 기간이 3개월 이상인 부실채권 비율도 사정이 비슷하다. 작년 4분기 기준 중소법인 여신의 부실채권 비율은 0.75%였다. 전분기 말 대비 0.05%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같은 기간 0.01%포인트 하락한 대기업 여신(0.49%)이나 0.01%포인트 상승한 가계여신(0.18%)보다 악화됐다.
2금융권인 상호금융에서도 기업대출 연체율은 가계보다 빨리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업 연체율은 2.23%로 1년 만에 0.47%포인트 올랐다. 반면 가계는 0.91%로 0.09% 상승하는 데 그쳤다.
시중은행의 기업 여신 담당 관계자는 "그만큼 중소기업들의 사정이 대기업이나 가계보다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수치"라며 "올해 1분기 결산이 끝나고 실적 발표를 하면 중소기업의 연체율이 더 상승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대출 문턱이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시중은행 임원은 "과거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들 부도율이 높아지는데, 이렇게 힘들 때 돈 빌리러 오는 기업들은 갈 데까지 간 기업들이라 은행에서도 대출 심사를 깐깐하게 할 수밖에 없다"며 "채권자 입장에선 돈 빌리기 더 어려워졌다고 느낄 테지만 은행도 어려울 때일수록 리스크 관리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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