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정녕 내 남편이 지은 집인가... 너무 완벽했다 [내 남편 목수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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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일영 기자]
▲ 서까래 걸기 1일 차 |
ⓒ 노일영 |
숙취가 심해 머리통이 쪼개질 지경이었다. 방에는 남편이 없었는데, 시간은 오전 10시가 지나 있었다. 흙집 지으러 가자고 남편이 꼭두새벽부터 야단법석을 떨었어야 정상인데,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아, 그렇구나. 어제 서까래를 집어넣을 원통 받침대가 흙집의 중심에 놓이지 않았다고 한 푸닥거리했었구나.' 그러고 보니 동네 아재에게 데리러 오라고 전화했는데, 엉뚱하게 남편이 술집으로 와서 나를 태우고 집으로 온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원통 받침대가 중심에 안 놓였다고 남편이 내게 버럭 고함을 질렀고, 나는 읍내 술집으로 내려가 진탕 술을 마셨다. 서까래를 못 걸고 빌빌대는 상황에서 구해 줬더니만, 남편은 물에 빠진 놈 건져 올리자 보따리 내놓으라는 것처럼 행동했다.
흙벽 위에는 서까래가 단 하나 올라가 있었다. 그 서까래는 15도로 깎인 끝부분이 원통 안에 들어가 있었지만, 고정돼 있진 않았다. 내가 흙벽 밖으로 빠져나온 끝부분을 붙잡아 줘야, 망치로 못을 박아 원통에다 서까래를 고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를 보고 말없이 머리를 계속 긁적였다. '어이구, 저 참을 수 없이 진부한 연기.'
"한 가지만 물을게. 솔직하게 대답해. 어제 중심에서 반지름 오차가 얼마나 났는데?"
"한 곳에서는 1cm가 부족하고, 다른 곳에서는 1cm가 많더라고···."
남편의 겁먹은 목소리는 목구멍으로 잽싸게 기어들어 가고 있었다. '미친! 흙집의 내경이 5.5m인데, 반지름 2.75m에서 1cm 오차를 가지고 그 지랄을 떨었다고? 아주 정밀의 화신이 탄생하셨구만.'
"그래서 받침대를 옮겼어?"
"그건 아니고···. 내가 경솔한 거 잘 알지? 용서해 줘."
서까래를 원통에 모두 고정시키는 데 거의 5일이 소요됐다. 서까래가 24개니까, 하루에 대략 5개를 못으로 박은 것인데,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이런 일을 할 때는 남편 본인의 성격대로 좀 경솔하게 진도를 나가도 되는데, 나무늘보가 못을 박아도 남편보다는 빠를 정도였다.
▲ 서까래 걸기 2일 차, 남편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순서를 정해 서까래를 고정했다. |
ⓒ 노일영 |
남편 자신이야 모르겠지만, 옆에서 작업을 지켜보는 나는 정말 속이 터져 죽을 정도였다. 끝이 15도로 깎인 서까래 16개를 후다닥 못으로 박아 고정시키고, 빈 공간의 각도를 재서 남은 8개의 서까래를 신중하게 깎아 원통에다 집어넣으면 끝나는 일이다.
그런데 남편은 서까래 하나를 들고 1시간 25분을 번민하다가, 결국 5분 동안 굼뜨게 못을 박았다. 1시간 25분 동안 서까래를 지켜보며 고민·고뇌에 빠져 있다가 다른 방법을 선택한 것도 아니다. 처음에 내가 말한 대로 그 방향으로 결국 못을 박을 거면서, 도대체 1시간 25분을 묵상에 잠겨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자냐?"
"아니, 생각 중이야."
"무슨 생각?"
"어떻게 하면 이 서까래들이 원통의 중심에서 제대로 빈틈없이 잘 만날지···."
"무슨 남북 이산가족 상봉 절차를 밟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시간을 끌 필요가 있냐고? 서까래들이 꼭 원통의 중심에서 빈틈없이 딱 맞게 만나야 할 필요가 없잖아. 빨리 만나는 게 중요하지. 빈틈없이 안 만나면 지붕이 무너져?"
"지붕이 무너지는 건 아닌데, 정확하게 만나서 빈틈이 없으면 보기에 좋잖아."
"지금 서까래를 1시간 넘게 노려보며 궁상을 떨고 있는 게 더 보기에 안 좋은데?"
어르고 달래고 화내도, 서까래 앞에 선 남편은 행위와 사고의 빈곤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미운 7살의 언행이 몸에 박힌 남편이 내가 조롱해도 쉽사리 반항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귀농하기 전에 나는 집 근처 공방에서 3개월 과정으로 짜맞춤 소목을 배웠다.
3개월 동안 손대패도 사용하고 도면도 보면서, 장부를 파서 짜맞춤으로 상(床)도 하나 만들었다. 과장을 조금 덧붙이자면, 공방 선생님이 나를 수제자로 삼고 싶어 했다. 어쨌든 귀농한 뒤에도 사회교육기관에서 두 달짜리 과정으로 소목을 배웠는데, 나는 교육생 중에 좀 잘하는 축에 속했다.
▲ 서까래를 거의 절반 걸었을 때. 나는 이렇게 흙벽을 두드리고 있다가, 남편이 잡아 달라고 말하면, 흙벽 밖으로 나가 서까래를 들어 줬다. |
ⓒ 노일영 |
물론 남편이 배운 한옥을 짓는 대목과 내가 배운 가구를 만드는 소목은 다르다. 하지만 암장부와 숫장부를 만들어 결합하는 건 비슷한 부분이 꽤 많다. 하지만 정교함으로 따지자면 소목이 더 신경을 많이 쓴다. 작은 가구에서는 짜맞춘 부분에 빈틈이나 유격이 생기면 곧바로 눈에 띄면서 작업 자체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 그런데 이 남자는 서까래 거는 걸 마치 소목에서 가구를 만드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원통 안에서 서까래의 깎인 면들이 만날 때 빈틈이 좀 생기면 어떤가 말이다. 더구나 책만 읽고 흙집을 만드는 초보자 주제에, 왜 서까래들이 접합하는 면의 정교함을 따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손재주도 없으면서···.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남편이 서까래를 쳐다보며 108 번뇌를 골고루 두루 거치는 동안 나는 쉴 새 없이 나무망치로 흙벽을 두드렸다. 그러다 남편이 서까래를 좀 잡아 달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거의 매번 빈정대며 흙벽 밖에서 서까래의 끝을 들고 있었다. 그러면 남편은 깎인 면을 맞추느라 서까래를 요리조리 돌리며 외쳤다.
"왼쪽으로 조금만 더"
그러면 나는 늘 이렇게 대거리를 했다.
"내 왼쪽, 너 왼쪽?"
서까래 작업을 5일 만에 마친 뒤, 나는 사실 많이 놀랐다. 원통 안에 24개의 서까래가 모였는데, 서까래들의 맞닿은 모든 면이 거의 빈틈이 없었다. 그리고 남편이 말한 대로 보기에 참 좋았다.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디? 당신 눈이 좀 이상한 거 아니야? 완벽해! 너무 멋지다. 수고했고 고생 많았어."
▲ 드디어 24개의 서까래를 모두 걸었다. |
ⓒ 노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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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함양타임즈>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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