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나쁜 사람 앞잡이 되지 말라”…중-일 외무회담 치열한 신경전

[미-중 패권 전쟁]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반도체 전략 등
미-중 전략 경쟁 심화 속 민감 현안 논의

친강 중국 외교부장(오른쪽)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2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친강 중국 외교부장(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2일 만나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와 반도체 전략 등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등 보도를 보면, 친 부장과 하야시 외무상은 이날 베이징에서 4시간 동안 회담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며 양국 현안을 논의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와 일본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중단, 대만해협, 양국 영유권 분쟁 지역인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를 포함한 동중국해 정세,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한·중·일 협력과 한반도 정세도 논의됐다.

친 부장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는 것은 인류의 건강과 안전에 관한 중대한 문제이며, 일본 쪽은 책임 있게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앞서 집단 따돌림 수법으로 일본의 반도체 산업을 잔혹하게 압박했는데, 지금은 중국에 이 수법을 다시 쓰고 있다”며 ‘나쁜 사람의 앞잡이가 돼 나쁜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의 성어 ‘위호작창’을 언급하며 미국과 일본의 공조를 겨냥했다. 일본은 최근 중국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에 나서는 등 미국의 대중국 과학·기술 압박에 동참하고 있다. 친 부장은 “봉쇄는 중국의 자립자강 결심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며 “모순과 의견 차이에 직면해 파벌을 만들고 압력을 가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서로의 차이를 심화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하야시 외무상은 지난달 베이징에서 방첩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일본 제약회사 직원인 50대 남성의 조기 석방을 요구했다. 중국이 2014년 방첩법을 시행한 뒤 구속된 일본인은 최소 17명에 이르고, 일본 쪽은 현재 중국이 구속 중인 일본인 5명 전원의 석방을 요구했다. <신화통신>은 친 부장이 “간첩 활동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일본 시민에 대해 중국 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일본 쪽은 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 계획을 설명하고, 홍콩과 신장 웨이우얼(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상황에 대한 우려도 전달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양국은 이날 향후 대화 의지도 확인했다. 하야시 외무상은 회담 머리발언에서 “일-중 관계에는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동시에 많은 과제와 심각한 현안에 직면해 매우 중요한 국면에 있다”며 양국이 모든 레벨에서 솔직한 대화를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친 부장은 올해가 중-일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한 지 45년 되는 해라며 “선인들은 탁월한 식견을 갖고 양국 관계의 평화 우호 협력이라는 큰 방향성을 확립했다. 역사와 인민에게 부끄럽지 않은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미-중 전략 경쟁이 거세지는 가운데, 중국과 미국 편에 선 일본의 외교 책임자가 직접 만나 양국의 입장 차이와 향후 대화 의지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양국은 지난달 31일 우발적인 군사 충돌을 피하기 위해 방위당국 간 전용 회선(핫라인)을 설치하는 데 합의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