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호랑이 앞잡이 되지 말라” 日 “국제평화 역할 하라”…외교장관 회담 신경전

신경진 2023. 4. 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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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강(오른쪽)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하야시 요시마사(왼쪽) 일본 외교장관과 2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만나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중국과 일본의 외교장관이 2일 베이징에서 이뤄진 회담에서 동중국해ㆍ대만해협 문제와 오염수 배출 및 일본인 간첩 혐의 구속 등 양국 현안을 논의했다. 친강(秦剛)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교장관은 이날 오찬을 포함해 약 4시간에 걸쳐 진행된 회담에서 대화와 협력을 언급하긴 했지만 민감한 현안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양측의 기싸움은 모두발언부터 시작됐다. 하야시 외무상은 모두발언에서 "중·일 관계에는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동시에 많은 과제와 심각한 현안에 직면해 매우 중요한 국면에 있다"고 말했다. 친 부장은 올해가 중·일 평화 우호조약 체결 45년이라는 점을 거론한 뒤 "역사와 인민에게 부끄럽지 않은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했다. 미·일 공조를 강화하고 있는 일본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됐다.

회담에서 중국은 첨단 반도체 기술의 대중국 수출을 금지하려는 일본에 반발하며 미국과 일본의 틈새 벌리기를 시도했다. 친강(秦剛) 외교부장은 회담에서 “살을 베이는 아픔이 여전한 일본은 호랑이를 위해 앞잡이가 되지 말라(爲虎作倀·위호작창)”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발표했다.

친강 외교부장은 “미국은 일찍이 따돌림 수단으로 잔혹하게 일본의 반도체 산업을 억압했고, 지금은 중국에 낡은 수법을 재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신이 싫은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기소물욕 물시어인)”는 공자의 성어를 인용한 뒤 ‘앞잡이’ 발언을 꺼냈다.

친 부장은 자력 극복도 강조했다. “봉쇄는 단지 중국의 자립자강의 결심을 한층 더 촉발할 뿐”이라고 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9년 12월 이후 3년 3개월 만에 성사된 하야시 장관의 방중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23종의 선진 반도체 제조 장비의 중국 수출 규제를 오는 7월부터 시행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이날 하야시 장관은 이번 조치는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하야시 장관은 회담이 끝난 뒤 기자들을 만나 센카쿠(尖閣, 중국측 명칭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를 포함한 동중국해 정세, 러시아와 연계한 중국의 일본 주변 해역에서의 군사활동 강화, 홍콩과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도 했다. 하야시 장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서도 중국이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해 책임 있는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대만 문제와 관련해 친 부장은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이익이자 중·일 관계의 정치적 기초라는 점을 재확인한 뒤 이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중국에서 근무하던 일본인이 간첩활동 혐의로 최근 구속된 뒤 일본이 석방을 요구한 데 대해 중국은 원칙론으로 대응했다. 중국 측은 “한 명의 일본 국민이 중국에서 간첩 활동에 종사한 안건에 대해 중국은 법에 따라 처리할 것임을 친강이 강조했다”고 발표했다. 반면 하야시 장관은 일본인 구속에 대해 항의하고 조기 석방을 포함한 일본의 엄정한 입장을 강하게 전달했다며 “예측 가능하고 공평한 비즈니스 환경이 확보되는 것, 안전과 동시에 정당한 경제 활동이 보장될 수 있도록 강하게 요청했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2014년 반(反)스파이법 시행 이후 지금까지 일본인 17명을 구속했으며 그 가운데 11명이 풀려났고 5명이 현재 구속 중이며, 한 명이 사망했다.

이날 회담에서 중국은 올해 일본의 주요 7개국(G7) 의장국 활동도 견제했다. 친 부장은 “일본은 G7 회원국이자 더욱이 아시아의 일원”이라며 “회의의 기조와 방향을 정확하게 인도해야 하며,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유리한 일을 많이 하고 국제 사회의 ‘진정한’ 컨센서스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중국이 G7 국가에 경제적 보복 같은 위압행위를 할 경우 공동으로 관세 인상 등을 통해 중국에 대응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날 회담에서는 한·중·일 정상회담 재개를 위한 3국 협력과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도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

오카노 유키코 일본 외무성 대변인은 2일 베이징 일본 대사관에서 외신 브리핑을 갖고 "이날 회담에서 정상과 외교장관 레벨에서의 한·중·일 3국 대화 재개를 논의했다"며 "구체적인 시기는 논의되지 않았고 의장국인 한국이 조율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올해 3국 정상회의 의장국인 한국 정부는 한·일 관계 개선을 계기로 4년 만의 회의 개최를 추진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재외공관장 만찬 자리에서 이같은 의지를 분명히 했고, 중국 역시 지난달 20일 “한·중·일 협력에 일관적으로 적극 참여해 왔다”(왕원빈 외교부 대변인)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하야시 요시마사(왼쪽) 일본 외교장관과 만난 리창 중국 총리(오른쪽). 중국 CCTV 캡처

한편 중국은 반도체 규제와 구속 일본인 문제로 하야시 장관과 격론을 펼치면서도 리창(李強) 총리 접견과 왕이(王毅) 정치국위원 겸 중국공산당 중앙외사공작위원회판공실 주임 만찬을 베풀며 환대했다. 이날 오후 5시 30분부터 30분간 회담이 열린 뒤 70분간 만찬이 이뤄졌다. 외교장관 회담도 외교부 청사가 아닌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진행됐다.

베이징·도쿄=신경진·김현예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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