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억 모으고 지지율 급등…기소된 트럼프, 되레 호재 됐다?
“충격을 받았다” “짜증을 냈다” “의기소침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형사 기소됐다는 소식을 접한 직후 보였다는 다양한 반응들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1일(현지시간) 트럼프의 고문, 변호인 등 측근에 대한 인터뷰를 토대로 “뉴욕 맨해튼 대배심의 기소 결정 이후 트럼프는 다양한 감정과 태도를 반복했다”고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배심이 자신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투표에 들어간 지 몇 시간 뒤인 지난달 30일 오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부인 멜라니아, 보수 성향 라디오 진행자인 마크 레빈 등과 저녁 식사를 했다. WP는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해 “기소 결정이 나온 뒤 트럼프는 행복해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소 소식에 처음엔 충격을 받았지만 곧바로 싸우겠다는 전투태세를 취했다고 한다. 그의 변호인인 조 타코피나 변호사는 지난달 31일 ABC방송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해 “트럼프는 자신의 체포를 예측했지만, 그럼에도 기소 직후 충격을 받은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어 “트럼프는 이내 (충격을) 극복했고, 이제 벨트를 매고 싸워야 한다고 결심했으며 ‘불의’에 전투적으로 대응할 준비를 하면서 전형적인 트럼프의 자세를 취했다”고 덧붙였다. 오랫동안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고문으로 일했던 데이비드 어번도 “트럼프는 트럼프답게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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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4일 맨해튼 법정 자진출두
기소 다음 날인 지난달 31일 팜비치 별장에서 골프를 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주말을 더 보내고 3일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4일 오후 맨해튼 법정에 출두할 예정이다. 판사 앞에 서서 전직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44)에게 ‘성추문 입막음’ 조로 돈을 줬다는 혐의를 통지받고 이에 대해 유무죄 주장을 펴는 ‘기소사실인부(認否)절차’를 밟게 된다. 법원 이동 전 맨해튼 검찰청에서는 지문 채취, 머그샷(범인 식별용 얼굴 사진) 촬영 등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전ㆍ현직 미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기소되면서 미 정치권이 격랑에 휩싸인 가운데 이번 기소는 2024년 미 대선에 중대 변수가 될 거란 관측이 나온다. 일단 트럼프는 대선 때까지 재판을 끌고 가는 ‘지연 전략’을 펼 거란 전망이 많다.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기소와 재판 사이의 절차를 길게 끌고 가면 2024년 대선 캠페인의 한복판으로 밀어넣을 수 있고 트럼프는 공화당 후보 지명에서 1순위 후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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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오르고 기소 하루만에 400만불 모금
실제로 기소 직후 일각의 동정 여론과 함께 지지층이 뭉치면서 트럼프 지지율이 상승세다. 야후-유고브가 지난달 30~31일 공화당 지지자 108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율은 52%를 기록해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21%),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5%),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3%)를 큰 격차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디샌티스 주지사와의 일대일 대결에서도 57% 대 31%로 우위를 보였다. 기소 직전인 지난달 29일 퀴니피액대가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디샌티스의 주지사가 공화당 지지층으로부터 얻은 지지율은 각각 47%, 33%였는데 둘의 격차가 기소 직후 눈에 띄게 커진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이번 기소를 ‘경선의 정치적 금맥’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지지층 결집과 후원금 모금의 호기로 본다는 얘기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지난달 28일 공화당 소속 주지사 6명과 상원의원 26명,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을 비롯한 하원의원 63명, 주 검찰총장 10명의 성명을 담은 이메일을 배포하며 ‘단합된 지지’를 선언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또 지지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우리의 사법 체계가 완전히 무너졌다”며 ‘풀뿌리 기부금 후원’을 요청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지난달 31일 보도자료를 내고 “기소 후 24시간 동안 400만 달러(약 52억 원) 이상을 모금했다”고 알렸다. 한 벌에 47달러(약 6만1000원)인 ‘나는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적힌 티셔츠도 성황리에 팔리고 있다.
“장기적으론 중도층 등돌려 불리”
그럼에도 이번 기소가 장기적으로는 트럼프와 공화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WSJ은 “트럼프 기소가 당내 경선에까지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퇴임 이후 계속되는 사법 리스크에 중도층ㆍ무당파가 거부감을 느끼고 장기적으로는 트럼프에 등을 돌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기소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면한 여러 사법 리스크의 신호탄일 수도 있다. 미 선거 예측 사이트인 파이브서티에이트는 “이번 기소만으로 공화당원들을 트럼프로부터 몰아내기에 충분하지 않더라도 그가 현재 받고 있는 다른 세 가지 수사와 관련해 여전히 그를 위협할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성추문 입막음 의혹 외에도 1ㆍ6 국회의사당 폭동 선동 의혹, 조지아주 선거 개입 의혹, 백악관 기밀문서 유출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WP는 “트럼프의 변호인 중 일부는 이번 기소 건보다 다른 세 건의 사건이 더 강력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여러 건의 기소와 동시에 싸우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성추문 입막음 의혹의 당사자인 스토미 대니얼스는 지난달 31일 영국 일간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기소를 두고 “기념비적이고 서사적”이라며 “자랑스럽다. 정의는 실현된다”고 말했다. 대니얼스는 또 기소 결정 이후 폭력적 위협이 잇따르고 있다고 호소했다. 대니얼스는 “처음에는 (비난 수위가) ‘꽃뱀’ ‘창녀’ ‘매춘부’ ‘거짓말쟁이’ 정도였는데 지금은 ‘죽이겠다’라는 훨씬 폭력적인 협박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광적 지지자들이 처음으로 두렵게 느껴졌다. 트럼프가 스스로 폭력을 선동하고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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