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나이키 스타벅스도 아닌데 브랜딩이 필요해?[개척자 비긴즈]

최기영,이영은 2023. 4. 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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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척자 Y’다. 험난한 교회 개척 여정 가운데 늘 기도하며 하나님께 ‘왜(Why)’를 묻고 응답을 구하고 있다. 개척은 그 자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자 지향점이다. 출발선(A)에 선 개척자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Z)를 바라보며 묵묵히 걸음을 내디딜 때 당도할 수 있는 마지막 계단이 알파벳 ‘Y’이기도 하다. 그 여정의 여덟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건물이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이 문장이 가슴에 꽂히면서 교회 개척을 그려나가던 도화지는 밑그림과 바탕색부터 달라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공동체가 마땅히 그려내야 할 모습에 대해서도 변화가 생겼다. 그 모습에 대한 고민이 점점 깊어질 때쯤 또 한 번 머리 속에서 불꽃이 튀었다. 바로 목회와 공동체의 브랜딩에 관한 것이었다.

‘목회가 비즈니스가 되어선 안 되지만 목회자에게 비즈니스 마인드가 없어선 안 된다.’ 교회 공간에 대한 깨달음만큼이나 뼈 때리는 문장이었다. 존재의 목적이 수익 창출인 기업이 교회와 맞닿을 수 있을까. 개척자 Y가 아닌 교역자 Y 시절로 치면 기업과 자본주의는 곧 세상적인 것이었고, 성스럽지 못한 것이었으며 멀리해야 할 존재였다. 유튜브, 넷플릭스를 무턱대고 정죄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깨달음의 순간은 ‘교회 개척 세미나’에서 마케팅 전문가와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면서 찾아왔다. 코카콜라와 제일기획에서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했던 김남호 나인후르츠 대표의 한 마디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았다. “여러분. 브랜드의 목적은 ‘누구를 도울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이게 뭔가 싶었다. 돈이 아니라 도움이라니. 강의가 아니라 간증인가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마케팅 전문가가 강연자로 나선다기에 이질감부터 들었다. 마케팅이 교회 개척과는 상관없는 영역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완벽한 오판이었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맙소사!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복음이 시장 안에 존재하다니!’

공동체 브랜딩, 챌린저, 시장의 흐름, 디자인, 기업의 가치 등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이야기에 순식간에 전도당했다. 내가 생각하는 시장의 순기능은 좋은 물건을 적절한 가격에 팔고 유행을 선도해 가는 것, 고객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 정도였다. 기업이 하는 일은 그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멈춰 있었다. 그야말로 우물 안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경주에서 1위가 되고자 할 때 전부 같은 방향으로 달려야 할까. 강사는 이에 대한 도전을 말하고 있었다.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 달려갈 때 반대로 달리는 무모함이 브랜드의 관점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새로운 브랜드에 매력적인 스토리가 있고 그 기업의 가치가 지구와 사람을 보호하며 약자를 배려하는 이미지로 다가올 때 사람들은 열광한다고 했다.

분명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건물이 커지기를, 성도가 많아지기를, 재정이 풍성해지기를 원해왔던 건 아닐까. 모두가 신앙의 큰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경주마처럼 여겨온 건 아닐까. 그것을 상급이라 생각하고 성경에서 전하고 있지 않은 다른 목적을 가지고 뛰어온 것만 같았다. 그 안에서만 사고가 작동하다 보니 ‘누구에게 전달될 복음인가’를 잊고 있었다. 한 꺼풀씩 벗겨진 채 알몸만 남은 내 모습을 발견한 듯 화끈거렸다. 기성교회가 왜 외면을 당하는지 알고 있었으면서도 개척자인 나는 그 길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복음의 본질을 세속적이라 치부하던 시장에서 발견했다.

시장을 통해 복음을 말하는 강연자에 이어 시장에서 일하며 복음을 전하는 강연자도 무대에 등단했다. 실제로 경기도 부천 제일시장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하며 사역하는 김동은 전도사였다. 매장 이름에서부터 느낌이 팍 꽂혔다. 시장청년. 제일시장에서 20~30대 청년들이 열심히 장사한다고 소문이 난 곳이었다. 얘길 들어보니 그럴만했다.

전도사는 나이트 클럽 웨이터, 술집 종업원으로 일하던 청년들을 과일가게 총각들로 채용했다. 치기 어린 행동으로 삶이 어긋난 방향에 놓일 수 있었던 이들에게 그는 새로운 삶과 공동체를 선물하고 있었다.

그는 ‘이중직’ ‘일하는 목회자’였다. 거창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아무리 ‘이중직’이란 말로 설명하려 해도 세상에선 ‘투잡’ 또는 ‘N잡러’로 통칭한다. 본업에서 생활비를 충당하지 못하니 부업을 통해 가정의 생계를 보태게 되는 것이 투잡이라면 목사, 전도사의 투잡은 좀 다르다. 적은 사례비로 살아가야 하다 보니 알바는 필수이며 알바가 생계를 책임져주는 본업이 되는 게 현실이다.

깔세(보증금 없이 월세를 한꺼번에 내고 계약하는 단기 임차 방식)매장에서 과일 판매를 시작한 전도사는 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20여명의 청년들과 ‘시장청년’이란 브랜드를 만들어 과일을 유통하는 대표가 됐다. 그 과정에서 생계형 이중직과는 분명 다른 결이 엿보였다. 바로 ‘사역형 이중직’이란 영역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일 하는 것은 맞지만 우리가 사역자이기에 모든 계획, 행동, 만남을 사역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마케팅 전문가 강연에 이어 또 한 번 머리를 얻어 맞았다. 나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했다.

새벽에 시장 사람들과 김밥 교제를 하며 기도했던 순간, 정직한 제품으로 손님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모든 것을 주님의 주권 앞에 두려는 마음이 그렇게 귀할 수 없었다. 상품을 홍보하며 판매자가 있는 곳으로 소비자를 오게 만드는 게 일반적인 시장의 구조다. 하지만 전도사는 믿음의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함께 모여서 기도했고 예배를 드렸다. 새벽예배가 교회가 아닌 시장에서, 길 위에서, 매장에서 드려졌던 것이다. 김밥은 시장에 흩어진 영혼을 모이게 하는 마술 피리 같은 도구가 돼줬다.

개척자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또 한 번 발견했다. 직장생활 하는 사람이 교회로, 가정에 있는 사람이 교회로, 사회가 교회로의 움직임이 아닌 나에서 직장으로, 나에서 가정으로, 나에서 사회로 패러다임의 변화가 이루어 질 때 우리 지경이 예배로 변화되는 것. 그것이 사역형 이중직의 핵심이었다.

개척을 준비한다고 하면서 상황에 갇혀 있고, 생각에 갇혀 있었다. 기성교회가 하고 있는 일들 안에서 생각했고, 같은 것을 새로운 것이라고 애써 포장하려 했다. 누구를 위한 교회인가. 이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농사지을 준비도 안 된 나의 모습을 강의를 통해 재확인했다. 아직 초보 농부 축에도 끼지 못하는데 가뭄을 걱정하고 일손을 생각하며 수확을 걱정하다니 어리석었다. (Y will be back!)




최기영 기자 일러스트=이영은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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